[오피니언] 연극 '더 헬멧'의 실험적인 연출에 대하여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3.1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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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연극이 두 개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나의 연극이 총 네 개의 공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바로 최근 폐막한 연극 ‘더 헬멧’의 이야기이다. 굉장히 신박한 연출이라 듣자마자 굉장히 호기심이 생겼다. 어떠한 방식일지 아무리 머릿속으로 상상해도 정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서 공연이 폐막하기 며칠 전 가까스로 표를 구해서 공연을 보러 갔다.

연극 ‘더 헬멧’은 ‘하얀 헬멧’이라는 소재를 ‘룸 알레포’와 ‘룸 서울’로 나누어서 주제를 구현한다. 먼저 ‘룸 알레포’는 시리아 내전에서 목숨이 위험한 사람들을 구하는 ‘화이트 헬멧’의 이야기이고, ‘룸 서울’은 1987년과 1991년 민주화운동 데모가 일어나는 서울에서 대학생들을 폭력으로 억압하는 ‘백골단’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이야기는 한 공연장 안에서 ‘Big Room(이하 빅룸)’과 ‘Small Room(이하 스몰룸)’이라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정리하자면, 연극 ‘더 헬멧’은 ‘룸 알레포-빅룸, 룸 알레포-스몰룸, 룸 서울-빅룸, 룸 서울-스몰룸’, 총 4개의 공연이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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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더헬멧 - 룸알레포


공연이 상연되는 아트원씨어터 3관에 가면 검은 벽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갈림길이 보인다. 그 앞에서 검표원이 관객의 자리에 따라 “왼쪽으로 입장해주세요.” 혹은 “오른쪽으로 입장해주세요.”라고 말해준다. 처음 객석에 입장했을 때는 공연장 가운데에 위치한 유리벽이 양끝으로 갈라져 있어, 스몰룸의 관객들과 빅룸의 관객들이 서로 마주 볼 수 있다. 공연이 시작되고나서도 가운데 벽은 움직이지 않는다. 배우들이 스몰룸과 빅룸을 모두 뛰어다니며 정열적으로 연기를 하고, 극은 발단을 넘어 전개까지 흘러간다.

극이 진행되면서 긴장감이 높아질 때,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무대 양 끝에 위치했던 유리벽을 당겨서 공연장의 가운데를 막는다. 이를 통해 하나였던 공간은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된다. 그 순간부터 스몰룸의 관객들은 스몰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만 볼 수 있고, 빅룸의 관객들은 빅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만을 볼 수 있다. 그러다 각각의 이야기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배우들이 그 벽을 허문다. 유리벽이 열리자 스몰룸의 ‘절정’과 빅룸의 ‘절정’이 합쳐지고, 관객들의 긴장은 ‘초절정’의 상태에 이른다. 무대를 둘러싼 네 방향의 시선 속에서 집중도는 더욱 커지고 그대로 극은 결말까지 텐션을 잃지 않고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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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 헬멧’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굉장히 뚜렷하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연극이다. 그러나 연출적인 부분이야말로 ‘더 헬멧’의 가장 큰 특징인 것 같다. ‘더 헬멧-룸 알레포’는 한 배우가 공연장 중앙에 위치한 책상에 혼자 앉아서 연기를 하며 시작된다. 이때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관객들의 시선이 전부 무대의 중앙으로 꽂히는데, 이를 통해 조성된 압박감과 긴장감이 너무 좋았고 관객 모두가 집중하는 그 극장 안의 공기에 잔뜩 설렐 수 있었다.

또 ‘룸 서울’에서 공간이 나뉘어지고 나서는 빅룸이 서울 어느 서점 지하가 되고, 그리고 스몰룸은 그 서점 안에 숨겨져 있는 은신처가 된다. 이때 ‘더 헬멧’의 유리벽은 ‘숨어 있는 사람들을 잡아야 하고, 숨어서 들키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 사이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또한 유리벽은 원래는 반대편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극의 몇몇 부분에서 조명이 비추어지면 유리벽의 일부분이 투명해져 반대편이 보인다. 이는 반대편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극에서 긴장감을 더욱 심화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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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더헬멧 - 룸서울


탄탄한 극본뿐만 아니라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에 멋진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고, 많은 관객들은 이에 열광하였다. 앞으로도 연출적으로 많은 시도들이 한국 공연계에도 더욱 들어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고, 다음 번에 ‘더 헬멧’이 재상연되면 이번에 못 본 관객들 또한 이러한 멋진 연출을 봐줬으면 하는 또 다른 바람이다.


[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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