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삶을 선택하다, 리틀 포레스트 [영화]

영화관에서의 힐링
글 입력 2018.03.0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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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에 <리틀 포레스트> 영화가 개봉했다. 일본 판을 이미 재미있게 본 적이 있어서 기대를 가득 안고 있었다. 바로 예매를 하고 극장으로 달려갔다. 머리도 복잡하기도 하고,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도 그랬다. 임순례 감독은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휴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는 1시간 40분 동안 맘 편히 쉬다가 왔다.

 주인공 혜원은 도시에 사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시험을 준비했지만 그녀만 불합격을 하게 된다. 그로 인해 자신의 고향으로 잠시 떠나오게 되고 그곳에서 옛날 친구들과 살아가는 이야기가 전반적인 내용이다.

 왜 왔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녀는 그저 배가 고파서 돌아왔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혜원의 삶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작은 원룸의 냉장고에는 말라비틀어진 음식과 과일들,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혜원의 모습은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마음도, 뱃속도 텅 비어 보였다.

 시험도 연애도 제 뜻대로 되지 않는 혜원에게 소꿉친구 재하는 도망치면 무엇이 달라지느냐 하며 꾸중을 준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에 부딪히다 보면 사람은 지치기 마련이다. 그녀는 그냥 휴식이 필요해 보였고 비로소 모든 것을 도시에 두고 내려왔을 때 편안해 보였다. 여유가 생기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충분할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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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사하는 재하와 시골로 돌아온 혜원, 어린 딸을 두고 떠나버린 혜원의 엄마. 각각 사연은 다양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아무래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혼나던 재하는 일을 때려치우고 농사를 선택했다. 적어도 농사는 정직하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에겐 농사일이 재밌었고 잘 맞았다. 혜원의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떠났다. 떠나버린 엄마에 대해 잘살고 있는지, 어디서 지내는지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지만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잘살고 있다고.

 어디론가 가버렸지만 그 역시 엄마가 원하는 삶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비난할 수 없었다. 오히려 엄마를 응원하고 싶었다. 엄마와 혜원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것이다. 남들이 정한 것이 아닌, 오로지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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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직접 밭도 가꾸고 요리도 해서 먹는다. 술이 필요한 날은 막걸리도 담아서 친구들과 나눠 먹는다. 작은 방에 앉아서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 정겨웠다. 여름에는 매미소리를 음악으로 삼고,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수년을 같이 해온 친구들인데 요즘엔 얼굴 보기조차 힘들어졌다. 멀리 있으니 시간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영화 속 그들처럼 작은 다락에 앉아 사는 이야기라도 나누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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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의 풍경과 음식들은 언제 봐도 맘이 좋다. 여름의 시냇가 소리, 눈이 쌓였을 때 걸으면 나는 뽀드득 소리, 산속의 고라니 울음소리, 다 좋았다. 꽃을 곁들인 파스타도 , 아삭한 토마토도 말이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것들이 있다. 어릴 때 비가 오면 우산도 없이 한참을 돌아다니곤 했다. 비가 고인 웅덩이에 발을 구르면 나는 첨벙첨벙 소리가 좋았다. 비가 오면 달팽이들이 자주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달팽이들을 모으려고 동네 몇 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지금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영화에 달팽이가 나와서 반가웠다. 그런 조용하고도 차분한 시골 분위기가 그리웠고 영화는 나에게 그것을 선물해주었다.

*

 영화에는 사계절이 모두 나오지만 나에겐 이 영화가 봄으로 기억된다. 겨울에도 춥지 않고 여름에도 덥지 않은 그런 느낌말이다. 그냥 따듯한 영화로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것 같다. 지친 일상에 치여 어딘가로 도피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한번 추천해본다. 기존에 누아르, 범죄 물에 익숙해 진부해진 한국 영화의 틀에서 벗어난 작품이라 더 반갑게 느껴졌다. 무거운 마음과 머리가 짧은 시간 내 가벼워질 것이다. 어쩌면 삶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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