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나의 취향, 나의 시선, 나의 오리지낼리티

글 입력 2018.03.0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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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가진 인간


대학에 갓 입학한 스무 살 무렵, 내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어른’은 바로 선배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는 고작 몇 학번 차이나는 선배들이 왜 그렇게 딴 세상 사람처럼 느껴졌는지, 어른이란 저런 모습일까, 하고 막연한 동경을 품었던 것 같다. 특히 멋져 보였던 사람들은 자기만의 ‘취향’을 가진 선배들이었다. 새내기 때 나는 딱히 이렇다 할 취향이 없다는 게 콤플렉스였다.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없었던 소도시에서 평생을 보냈던 것이나, 성격 자체가 무던하고 두루뭉술해서 그저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하면 좋은 게 좋은 거구나 하고 넘겨버렸던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대학에 와서, 그리고 문화적 기회가 넘쳐나는 서울에 와서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는 이 감독 영화가 이러이러해서 좋더라.” “나는 그 작가 좀 별로야.” “나 요즘 이런 장르의 음악에 푹 빠졌어.”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위축되곤 했다. 누군가 내게 “넌 어떤 장르를 좋아해?”라고 물어보는 게 겁났던 것 같다. 그 당시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은 결국 ‘취향을 가진 인간’이었고, 그 이후의 몇 년 동안은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뭔지’를 찾아나가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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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면 취향을 형성하는 것은 우선 시간과, 지식/정보력과 교류하는 사람들, 그리고 경험이 아닐까 싶다. 좋고 싫음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충분한 표본이 필요할 것이고, ‘내가 이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년의 시간동안 그것을 지켜보며 소위 ‘덕후’처럼 그 분야에 대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취향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것을 단순히 ‘직감적인 끌림’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취향을 형성하는 시발점일 뿐 전부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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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곳 서울에서 몇 년을 보내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다양한 전시회나 공연, 책, 영화 등을 접했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다니다보니 마치 도자기 물레를 돌리며 진흙을 떼어내고 붙이고 모양을 잡는 것처럼 조금씩 ‘나도 취향이란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분야가 생긴 것 같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전시, 좋아하는 문체, 좀 별로인 글 스타일, 좋아하는 디자인, 싫어하는 여행 스타일, 그런 것들이 조금은 생겨났다. 음악이나 공연예술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접할 기회가 적어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의 수준이지만. 그러나 취향이라는 걸 가지게 되면서 생겨난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있다. 호불호가 생긴다는 건 멋진 일이지만, 그만큼 스스로 벽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불호(不好)’의 영역을 아예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결국은 나의 취향의 폭을 제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묻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취향과 취향이 아닌 것 사이 균형을 잡는 게 바로 ‘어른’이지 않을까,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문화는 소통이다
 
내가 문화예술 분야로 진로를 생각하게 된 것도, 사실은 이 취향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나 다름없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취향을 고민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게 좋은 예술인지, 어떤 게 좋은 문화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나는 꽤 오래 전부터 좋은 문화 예술이란 어떤 것인지 판단할 때 크게 ‘대중성’과 ‘예술성’이라는 잣대를 사용했다. 둘 중 하나의 기준만을 충족시켜도 훌륭하지만, 진짜 위대한 작품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균형 있게 갖춘 것이 되어야만 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며, 때로는 운도 받쳐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통감한다. 특히 대중성이라는 것은 정말로 예측 불가능한 것이어서, 동시대의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대중들이 어느 정도의 문화적인 수준이나 지식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예술성을 갖춘 좋은 작품이 때로는 묻혀버리거나 몇 세기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게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 첫 발걸음으로 아트인사이트에 몸담게 된 것 또한 아트인사이트가 추구하는 ‘문화는 소통이다’라는 모토와 나의 목표가 잘 맞아떨어져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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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 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나에게는 숙명처럼 느껴지는 ‘글쓰기’를 통해 그 역할을 이루어나가게 될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다. 지금처럼 문화예술 플랫폼에서 에디터로 일을 하거나,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아예 잡지나 사이트와 같은 플랫폼을 만들어버리거나(!), 강연을 하거나 책을 내거나… 여러 가지 중간과정들이 떠오르지만 결국에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좋은 작품들이 더 빛을 발하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목표로 수렴한다. 언젠가는 나 스스로 그런 작품을 창작하고 싶다는 꿈도 있지만 그건 지금으로서는 엄두가 안 나는 꿈이다… 아무튼 이 분야에서 나는 프로가 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오리지낼리티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취향, 나의 시선, 나의 오리지낼리티
 
창조, 예술가, 오리지낼리티라는 주제가 유난히 머릿속에 맴도는 요즘이다. 읽고 있던 책(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도 그렇고, 최근에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돌아왔던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뜬금없이 웬 올림픽이냐면, 그곳에서 경기를 관람하면서 본 ‘스포츠 정신’이 예술가의 창조 정신과 닮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TV로 경기를 관람할 때에는 누가 몇 위를 하고 메달을 차지했는지가 가장 먼저 눈에 보였는데, 직접 경기를 관람하다보면 그런 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선수로서 메달의 여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경기가 끝난 직후 가장 환한 미소를 짓는 사람은 본인이 세운 목표를 최선을 다해 이뤄낸 선수들이었다. 그들이 점수나 순위가 결정되기도 전에 그렇게 후련하고도 시원한 미소를 지은 이유는 본인이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쳤기 때문일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권위 있는 상, 주류의 인정을 받는 것도 가치 있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만의 스타일로 본인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글을 좋아할 것이고 또 어떤 부류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포츠 경기와 소설 창작은 분명 다른 성격의 것이지만, ‘자기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고 목표를 이루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공유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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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페이스북에선가, 예술가가 꼭 자신의 상처를 쥐어짜서 창작을 해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라는 식의 글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걸 보면서도, 내가 지금껏 그려왔던 ‘예술가’의 이미지와 나를 비교하면서 내가 거기에 들어맞나 안 맞나를 고민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 건 시간 낭비일 뿐이다. ‘전형’보다는 ‘실존’에 주목한다면, 모두가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을 넓은 의미의 예술가라 규정한다면, 오늘날 예술가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취향의 문제도, “나만의 오리지낼리티를 확립해야 한다”는 말도 사실 같은 이야기의 변주일 뿐이다. 나는 나의 시선으로 문화예술을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함으로써 그것의 가치를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시선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공감하고 나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뜨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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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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