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리틀 포레스트 >, 나의 작은 숲은 질문하지 않네 [영화]

글 입력 2018.03.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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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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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찾아 떠났다가 길을 찾아 돌아오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구성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인생의 로드트립 영화다. 우리는 어려운 벽과 마주했을 때 선택을 한다. 내 안에 집중해서 나에게 맞는 것을 찾든가, 혹은 다수의 의견에 비추어 좋다고 하는, 보편적인 기준치가 높은 것을 찾든가. 대체로 불안함과 피로함은 우리를 후자의 선택으로 이끌기 마련이다. 고시, 공무원 시험은 수많은 젊은 넋의 시간을 묶어두는 매력적인 오답일 수도 있다. 주인공 혜원이 준비하는 임용고시를 살펴보자.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임용고시는 좋은 직업이다. 방학도 있고, 학생들과 만나 늘 젊게 살아서 좋고, 몇 안 되는 '사'자 달린 직업이며, 선생님이란 칭호도 있고, 정년보장도 되고. 여러모로 좋은 직업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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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좋은 점이 아무리 많아도 나에게 도통 적응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 직업이 '좋은 직업'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너무나 객관적으로 생각한 나머지 우리는 그 직업에 몸담게 될 가장 중요한 사람, 아주 주관적인 대상, 바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시뮬레이션이 있으면 좋겠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 그 말을 무척이나 여러 번 되뇌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하지만 가끔 생각하곤 한다. 나는 그렇게 깊이, 길게, 제대로 고민을 하긴 했을까. 도망친 건 혜원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도망친 것 같아 부끄러웠다. 맞지 않는 삶이어도 돈이 된다면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고 주변에서는 말한다. 그런데 맞지 않는 삶일수록 몸과 마음이 받는 스트레스로 그 번 돈을 또 큼직하게 써야만 한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좀 더 주인공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고 좀 덜 아프고 싶은 게 과한 욕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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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시 생활과 아르바이트로 힘겨웠던 혜원과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면서 지적을 받는 회사생활을 그만 둔 재하. 상사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은숙. 혜원은 잠시 멈춰 있고 재하는 그 길로 회사를 그만두고 농사꾼이 되었고 은숙은 친구들과 스트레스를 푼다. 현실에선 재하처럼 그만두는 건 어렵다. 퇴사를 하면 주변에서 나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며 연락이 오곤 한단다. 그 때 깨닫는다고 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혜원은 은숙이 콕콕 찌른다고 생각했겠지만 은숙이 혜원에게 속이 상했던 건 그만두면 다 해결되는 건지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비수처럼 찔렸기 때문일 것이다. 무겁다. 직업 혹은 직장. 더 크게는 삶이라는 단어에 실린 무게. 고로 신의 직장이나 신의 직업, 신도 모르는 직장 같은 말은 소리 없는 아우성, 둥근 사각형처럼 모순적인 표현이다. 이 단어들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고 편해지지도 않는다. 에어백 하나 없이 운전을 하는 기분이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온다. 무섭다. 모든 건 온전히 본인의 몫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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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가 고파 집에 돌아왔다는 혜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집밥과 밖에서의 밥은 다르다. 밥을 먹기는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눈칫밥은 허기지다. 입안을 돌아다니는 밥, 온기도 생기도 없이 대충 때우기 위해 먹는 밥. 전전긍긍하지 않고 눈치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별 대단치 않아도 속 편한 밥. 마음이 메말라 먹으며 목이 메이는 밥이 아니라 마음마저 녹여서 배가 부른 밥. 그 밥이 그리워서 추운 겨울밤 집에 묵게 되었던 것이다. 달달하니 입에 퍼졌을 배춧국의 느낌을 상상했다. 어쩌면 계속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시험의 결과와 상관없이 집에 올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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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 점은 완전히 이해가 가진 않았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러려니 했다. 혜원에게 엄마가 이미 직접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수많은 레시피를 전해 주었으니 말이다. 떡을 해먹고, 술을 담그는 모습을 보며 이건 보통 요리를 잘 한다고 하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사먹을 수는 있지만 직접 만들어 먹는 사람들은 그 귀찮은 일을 계속 벌린다. 사먹을 때는 나올 수 없는 맛을 이미 느껴보았기 때문이다.  혜원과 어머니, 모녀의 레시피를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삶에 필요한 건 뛰어난 머리도, 아름답고 멋진 외모도, 말주변도 아닌 건 아닐까. 결국 제 밥그릇에 밥을 담고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걱정이 없는 건 아닐까. 의례히 엄마에게 요리법을 물어보곤 했지만 은근히 혼자서도 알아내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한다. 그리고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레시피는 꼭 먹는 용도만은 아니다. 레시피엔 사람이 담겨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차피 정석은 없다. 늘 더 내 자신에게 자연스럽고 만족스럽게 변화를 줄 수도 있다. 복스럽게 먹을 수 있음 그 뿐이다.

 몇 가지 엄마에게서 꼭 배워왔으면 싶은 요리가 영화를 보며 떠올랐다. 돼지고기와 표고버섯, 감자, 애호박이 들어간 감칠맛나는 고추장찌개. 떡국떡, 간장, 고춧가루로 만든 깔끔한 떡볶이, 봄에 허리를 두드려 가며 뜯은 쑥으로 만든 쑥버무리와 쑥개떡, 겨울의 양식처럼 만드는 김치만두. 직접 녹두를 갈아 만드는 녹두부침개. 국물이 일품인 나박김치와 제철마다 먹는 열무김치, 알타리, 김장김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부드러운 비지찌개. 맛을 표현할 수 없는 엄마표 간장 샐러드. 토마토 껍질을 벗겨 매실청에 담가놓은 토마토매실조림(?). 한여름 무엇보다 맛있는 오미자와 매실 엑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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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다 보니 참 많아졌다. 왜 이 영화가 이상하게 평온하게 느껴지는 걸까. 젊은 사람이 농사를 하거나, 젊은 사람이 자급자족하면서 산다는 점이 새로운 이유는 아닐 것이다. 농촌에서 수많은 젊은 농사꾼들이 분주하게 뭔가를 키우고 거두고, 그 다음 해를 준비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식사를 준비한다. 물론 영화가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도 농사의 현장이 늘 아름답지는 않다. 고되고, 힘들고, 혼자서 적응해가는 과정은 실패가 빈번하다. 혜원처럼 어지간하지 않은 능력자가 아니었다면 아마 주변의 도움을 받아도 1년 정도를 보내기는 커녕 아마 며칠 새에 떠야 했을 것이다. 뜻밖에 농사를 하고 싶다거나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않았다.
 
 영화가 평온하게 느껴지는 건 영화를 보는 내 자신이 평온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단한 사회문제나 갈등, 남의 집 싸움이나 치정에 익숙하지만 한 해 농사짓고 매 끼 밥을 먹는 일상에 초점이 있어 담백한 감도 있다. <삼시세끼>나 <효리네 민박>을 보며 평온함을 느끼는 것과 이유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핸드폰도 TV도, 심지어 에어콘마저 없는 집. 아날로그의 끝이라 머리도 조용하다. 이상하지. 편리해질수록 우리는 더 옛날 것을 찾게 된다. 기술이 우리의 감성을 바꾸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쉽게 그 편리함까지 포기하진 못한다. 욕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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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자연이 또다른 주인공으로 빛을 발한다. 아등바등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바쁘고, 모든 노력을 다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속도감 있게 한 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다루고 있어 눈이 시원하다. 흰 눈이 가득 덮인 겨울, 산수유가 노랗게 물들인 봄, 푸릇푸릇 이파리가 빗 속에 흔들리는 여름, 서늘한 바람이 불고 노르손릇 익어가는 가을. 수면 위에 비친 달빛을 바라보며 돌 위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 뽑아도 뽑아도 생기는 잡초. 맛있게 여물어 가는 농작물이 있나하면 뜻밖의 날씨로 망해버린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건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우리는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변수는 자연의 몫이다.  내려놓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우리는 안 되는 것들을 되게 하느라 힘을 들이는 경우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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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 포레스트. 나와는 거리가 먼 표현같기도 하다. 작은 숲이라니. 이렇게 아파트가 둘러쌓인 곳이고 미세먼지가 잔뜩인 곳에서. 그러나 내게는 이 곳이 고향이다. 나는 여기에 뿌리를 내렸다. 평생을 떠나오지 않고 크게 바뀌지 않은 곳이다. 별 느낌 없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모습이 많이 바뀌어서 내심 속상했다. 길이 하나 있다. 흙냄새나 풀이 넘치지 않지만 발길이 들어서면 여기서부터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드는 길. 아늑하고 나를 보듬어주는 것 같은 길. 재개발 준비로 이미 수많은 건물과 나무가 이제는 내 옛 기억에만 남아있지만 늘 나를 지켜보는 길이 하나 있다. 봄이면 오동나무 꽃 향기가 퍼지고 살구 꽃이 흩날리고, 목련 꽃이 지저분하게 떨어지고 새싹이 돋아난다. 가을엔 은행잎을 발로 차고 다닐 수 있게 노란 잎이 가득해진다. 같은 서울, 같은 콘크리트길이어도 다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니까. 나의 숲은 혜원의 숲과는 겉모습은 다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숲이다. 숲은 나에게 무엇이 될지, '청춘사업'이 잘 되어가는지 같은 안부는 묻지 않는다. 그러나 걸으면서 떠오르게 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 강아지가 글을 쓰는데 재촉하고 있다. 이제는 지겨운지 바닥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그 친구에게는 늘 같은 길인데 늘 꼬리를 흔들고 발을 구를 만큼 신나는 길이다. 강아지에게도 이 길은 작은 길이자 숲이겠지. 얼른 털고 일어나야겠다. 볕이 좋을 때 오늘은 둘이 길을 걸어야겠다.

* 왕따를 당할 때도 무심하던 혜원이 마음이 상한 은숙에게 비장의 카드처럼 내미는 크렘 브륄레. 백발백중 꿍했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반하지 않을 수 없는 필살기. 바스락거리는 설탕을 깨면서 남아있던 아쉬움은 깨지고 진하고 부드러움이 입안을 맴돌겠지. 무심한 듯 지켜보며 너 주려고 찜해둔 사과라며 고이 기른 빨간 사과를 주는 재하의 마음에 홍조가 띈 듯하다. 어쩌면 혜원이는 토마토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한 여름 빨갛게 익은 토마토는 혜원에게 그리움의 상징이 되었다.

* 가장 궁금한 요리. 아카시아꽃 튀김이었을까. 바삭거리는 소리. 처음 보는 비주얼. 입 안과 코 끝에 머무는 향기가 어떨까 무척 궁금했다. 영화가 꼭 아카시아꽃 튀김처럼 아른거린다. 아무래도 부모님과 한 번 더 보는 게 좋겠다.  혼자만 보기엔 아깝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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