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상 2017》에 나타난 예술사적 흐름

관객이 주인이 되다
글 입력 2018.02.2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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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작가상》은 발전 가능성과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는 작품 활동을 전개한 우리나라 현대 미술 작가들을 추려 그들의 역량을 지지하고 후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상 제도이다.《올해의 작가상 2017》 전시는 올해 후보로 선정된 써니킴, 백현진, 박경근, 송상희 등 총 네 명의 작가들의 작품과 그에 담긴 현대미술의 흐름을 소개한다. 서로 다른 메시지와 방법으로 구축된 가지각색의 예술 세계들은 모두 관객에게 감상의 주도권을 쥐어줌으로써 그들의 자리를 넓혔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그 방법은 모두 다르지만 작품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작가가 한 발 물러서 관객에게 주도적인 역할을 위탁한다는 점은 같다. 작가가 아닌 관객이 주체가 된다는 공통된 맥락을 중심으로 전시를 분석해보자.

 첫 번째 전시는 써니킴의 회화전이다. 다른 작가들이 대부분 현대미술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설치미술과 오브제, 영상이나 소리 등의 매체를 통해 작품을 제시한 데 반해 써니킴은 기존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회화’라는 방식을 통해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어간다. 일상적인 자연물과 인물을 캔버스에 담은 그림들은 대체로 단조롭고 어두운 색채를 띠며 간결하게 제시된다. 짧은 어절의 제목, 화려하지 않은 색채, 눈코입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의 단순한 얼굴 묘사 등은 추상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며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같은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것 같은 통일감을 부여한다. <교복 입은 소녀들>에서는 인물이 꽤 구체적으로 그려졌지만 어둡고 흐린 색채와 비슷비슷한 의복을 입은 소녀들에게서 느껴지는 단정함과 추상성은 여타의 작품들과 일관된다. 기존의 회화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이 작가의 작품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현대 미술적 특징을 지니는데, 그것은 회화의 추상성으로부터 연유한다. 각각의 그림들은 구체적인 서사를 제공하지 않지만 관객들의 걸음 끝에 한 갈래로 모아져 하나의 이야기를 연출해낸다. 구체적인 내러티브에 종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객은 그림이 나열돼 있는 전시관을 자유롭게 걸으면서 마치 그림 속 인물들과 마주치거나 자연물 사이를 거니는 느낌을 받게 되고, 이로써 작가가 제시한 공간 속에 자신을 자연스럽게 투영하게 된다. 거의 유일하게 회화가 아니었던 설치 및 영상작품인 <풍경>은 이러한 이입을 더욱 극대화한다. 돌이나 물 등이 놓여 있어 이전의 회화와 유사한 분위기를 연출한 공간에 소녀의 그림자가 지나가는 영상이 비춰지는데, 처음에는 그 그림자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다가 이내 영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인식 과정을 거치면서 관객은 회화를 통해 경험했던 서사 속에 무리 없이 흡수된다. 그림자를 보며 자신이 그 공간 속 인물이 된 듯 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처럼 이 전시는 대체로 약한 구상성과 강한 흡입력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회화 속 공간을 내면화하고 그 안의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창조해내게 한다.

 두 번째 전시인 백현진의 설치 작업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은 실직, 폐업, 이혼, 부채, 자살 등의 키워드로 대변되는 40대 한국 남자의 불안과 무기력함을 대상으로 휴식을 제공한다는 내러티브를 바탕에 둔다. 테이블과 침대라는 소재와 함께 휴게실이라는 개념을 차용한 공간이지만 안정감보다는 불쾌감과 공포감이 느껴진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우선 입구에서부터도 그렇다. 치킨, 파산 등의 단어가 낙서처럼 적혀있는 입구의 벽은 가장이 짊어진 경제적인 짐을 연상케 하며 불안감을 조성하고, 입구 문에는 ‘당기시오’, ‘들어오시오’라는 문구가 역시 낙서처럼 휘갈긴 글씨로 적혀있어 문구의 내용과는 상반되게 정돈되지 못한 글씨에서 오는 경계감이 느껴진다. 휴게실 안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청각적으로도 불안감을 조성하고, 스티로폼을 대충 떼어 만든 것처럼 보이는 침대와 낡은 테이블은 편안함과는 다소 멀어 보인다. 이 공간을 휴게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관객들은 다양한 견해를 갖게 된다. 이 작품 역시 관객들의 감상과 참여에 의해 의미가 창출되는 미니멀리즘의 성격을 지닌다. 좌대를 벗어나 하나의 공간 자체가 작품으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다양한 위치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작품을 즐긴다.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일반적인 휴게실의 모습은 아니지만 분명 누군가에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며 또 누군가에겐 우울의 정서를 환기하기도 한다. 작가가 제시한 ‘휴게실’이라는 단일 개념에 관객에 의해 가변적이고 주관적인 상황이 구축됨으로써 비로소 작품은 완성된다.

 세 번째로 전시된 작품은 박경근의 설치 작업 <거울 내장 : 환유쇼>이다. 규칙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16개의 총들은 마치 줄을 맞춘 군인들을 연상케 하며 위압감을 준다. 관객이 박수를 치면 조명이 바뀌며 동시에 모든 총이 장전되듯 치켜세워지는데, 굉음에 가까운 총소리와 일사불란한 움직임에서 나오는 공포감은 순식간에 장내를 압도한다. 그러한 공포감은 총에서 느껴지는 인간과의 유사성에서 더욱 증폭된다. 복제되어 나열된 총들은 원본성과 유일성을 상실한 채 명령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데 이는 곧 군대에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군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 복제되어 원본성과 유일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매우 무섭고 파괴적인 사건이며 관객은 총에서 그것을 떠올리며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군대에선 한없이 당연한 일이며 그것은 군대를 작동시키는 기제 그 자체가 된다. 이처럼 인간의 본질을 탄압하는 행위는 군대를 넘어 사회 전반에 존재하며, 그것은 대단히 파괴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뎌진다. 자신이 군대에서 경험한 감정을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는 총이라는 단일한 오브제를 제시하면서 각자가 사회에서 경험한 탄압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관객은 처음에는 총의 굉음과 기계적인 움직임에 이유모를 기괴함을 느끼다, 그것에서 연상되는 인간의 모습에 섬뜩해하다가, 그들과 자신들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공포를 느낀다. 관객들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유형의 공포로 인해 완성되는 작품은 관객 중심의 현대 미술적 흐름과 동행한다.

 전시의 끝을 맺는 마지막 전시는 송상희의 회화 <세상이 이렇게 종말을 맞이한다 쿵소리 한번 없이 흐느낌으로>와 영상 작업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이다. 핵폭발 사건이 있었던 체르노빌과 독일의 수용소를 다녀온 후 느꼈던 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이 작가는 공간의 숨결을 전시관에 가져다 놓는다. 회화는 무언가가 폭발한 이미지가 타일에 묘사된 것으로, 회화 주변에서는 “모두 다 다른 행성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세계에서 인사를 보냅니다” 등 마치 외계인이 우리에게 건네는 듯 한 인사말이 중국어·한국어·영어 등 여러 언어를 통해 울려 퍼진다. 반갑고 살가운 목소리는 이미지의 폭발적이고 참담한 느낌과는 상반되는 느낌을 가져다주면서도, 관객들은 그 괴리감에서 희망적인 세계와 오히려 유리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세 개의 화면으로 나누어진 영상작품은 ‘아기장수 설화’를 모티프로 하는 이야기를 인물들의 대사, 자연과 동식물의 이미지, 수많은 그림 등의 다양한 화면을 통해 분산적으로 제시한다. 관객은 송상희의 두 작품에서 선택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회화 작품을 통해서는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폭발의 이미지와 청각적으로 제시되는 반가운 인사말 중 어느 것에 감상의 비중을 두는지에 따라 희망 혹은 괴리감을 느끼게 되며, 영상 작품에서는 분산되는 화면 중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는지에 따라 다른 감상을 하게 된다. 어떤 감상을 채택할 지는 본인의 자유이다. 여기서도 여전히 전시의 중심은 관객이 된다.

 전시는 총체적으로 관객 중심으로 흘러간다. 관객과 작품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넘어 작품이 만들어가는 주체가 작가에서 관객에게로 위임된 것이다. 작가들 역시 인터뷰를 통해 관객들에게 다양한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의도한 부분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특히 설치미술의 경우에는 미니멀리즘의 특성이 강하여 관객들의 의미 창출 가능성을 확대하며 연극성을 부각하였다. 개념미술의 면모 역시 흥미로웠다. ‘아티스트 토크’ 행사와 작가들의 인터뷰 영상을 모아놓은 아카이브 등 수많은 ‘설명서’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미술적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전시관 내의 작품들을 통해서도 다양한 감상을 경험한 관객들은 행사와 아카이브를 통해 또 한 번 다른 감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감상은 강요된 것이 아니며 단지 작품에 대한 하나의 ‘개념’으로만 기능하고, 작가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진 관객은 주도적으로 작품을 완성시킨다. 이 작가들이 올해의 현대미술을 빛낸 작가들로 선정된 것은, 이처럼 자신들의 역할을 그 누구보다 탁월하게 ‘올해의 관객들’에게 위임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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