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얼라이브_천재의 공간 : 레테와 레오나르도

글 입력 2018.02.22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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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전생의 존재를 믿게 한다. 그는 레테의 강물을 마시지 않은 걸까? 레테를 인식한 최초의 인간이라 그를 수식하고 싶다. 그만큼 레오나르도의 업적이 뛰어나다. 전생을 기억하더라도 업적은 범재의 수준에는 이루기 불가하다. 당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니…. 좀 잘하면 천재라 이름 붙이는 '천재'의 몰락한 현주소를 그에게 비비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는 '천재'였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은 조각·건축·수학·과학·음악·철학 다양한 면모에서 활약 아니, 멱살 잡고 끌고 왔다.
 
 내 짧은 인문학적 소견으로는 그 남자는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 인체 해부도를 그린 과학자, 비행기 발명가 따위로 생각했다. 안타까운 건 찬란한 업적은 단순히 훑기에도 벅찰 양이다. 인류를 이끌었던 사람이었음에도 업적에 대해 충분히 대접받지 못한 듯. 솔직히 죽은 사람 입장에서 명예 따위가 필요 있겠냐마는 개인적으로 아쉽다. 그는 더 빛날 자격이 있다
 
 다녀온 전시회에서 그 업적을 훑었다. 레오나르도는 미쳤다. 당장 한 사람의 업적이라는 사실보다 그가 전생을 기억한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는 것 같다. 자꾸 레테, 전생, 천재 언급하는 이유는, 그냥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매력적임을 강조하고 싶어서. 매력보단 마력이라고 정정하고 싶다. 화가와 기술자, 과학자로서의 작품들, 철학자 면모를 드러낸 생전 명언들은 죽어서도, 마력을 뿜어냈다. 단순한 모조품인데도, 몇백 년과 8968킬로미터를 단숨에 허물어 옥좼다. 묘한 마력은 천재에 대한 천박한 시기와 싸구려 열등감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맹목적인 경외를 불러앉혔다.
 
 역시 타고났다. 어렸을 땐 비행기 라이트형제가 만든 줄 알았다. 주구장창 그렇게 배웠다.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동심이 파괴되는 것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업적이 물에 불린 미역마냥 불어나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사실 처음 들어섰을 땐, 감흥 없었다. 전시회 감상을 기다리는 설렘만으로 족하다 생각했다. 그의 작품들을 하나같이 멋있었지만 예술적 소양이 없는 내게(너무 잘 알고 있었던 작품들 외에) 감상당한다는 게 작품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업적에 한두 개 더 얹는다고 해서 비행기 최초 개발자 충격 때보다야 덜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내 오만을 깼다. 세 번이나
 
 쿨병 환자인 내게 주구장창 쓰여있는 멋들어져 보이려고 애쓰는 글귀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전시회를 느낌 있게 연출하려 했겠지. 그렇게 의도했다면 성공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적어도 나는 빠졌다.
 
 모네 전시회에서도 그렇듯, 전시회 글귀들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글귀에 공감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작가와 교감하고 있다고 느낄 때, 위로받는다. 정신적으로 충만해지며 성숙해지는 것 같다. 안되는 교양 지식 억지로 붙들고 꾸역꾸역 가려는 이유. 이번에도 그렇다. 철학자기도 한 레오나르도는 인생을 통달한 사람 같았다. 숨이 턱 막히고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로 나를 타박하고 질책하는 글귀가 있나 하면, 마음 깊이 온몸으로 체감하는 글귀(경험을 전제로 해서)들도 있다. 방법은 어찌 됐든 나를 위로해주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위로받고 싶으니까 우긴다. 작품은 수용자 입장에서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성 안나와 성 모자> 1510
 
 홀린 듯 바라봤다. 얼핏 평화로운 분위기다. 예수를 자애롭게 바라보는 성모와 딸을 바라보는 성 안나. 미묘하게 어색하다. 이질감이 든다. 당장이라도 정면으로 시선을 옮기고 나를 향해 소름 끼치게 웃을 것만 같다. 사람들은 안나에게서 예수와 성모를 바라보면서 그들의 운명을 짐작하고 씁쓸하게 웃는 성스러운 모습을 찾는다고 한다. 나는 찾지 못했다. 대신 악마를 찾았다.
 
 시체처럼 창백한 회색빛 거죽과 시꺼먼 눈두덩이는 서로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생기와 따뜻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성모를 낳은 신성한 모습이 아니라 마치 악마를 연상케하는 모습이다. 다른 작품과 달리 유독 이 작품에서만 두드러진다. 성 안나를 뒤집어쓴 악마가 아닐까?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속세를 벗어나 천국(의 탈을 쓴 지옥)으로 가자고 유혹한다. 몸은 회색빛이지만 성모의 시선에서 바라본 성 안나의 모습(하늘을 가리키는 손의 모습)만이 살구색이다. 이 작품에서만은 감히 성 안나를 사탄으로 칭하고 싶다.
 
 15세기에도 이력서가 존재했다. 솔직히 적당한 생업수단이 없으면 수입이 없는 게 당연하다. 그 천재가 이력서를 내민다니 의아하지만 금수저가 아니라면, 먹고 살기 바쁜 건 인간의 큰 숙제고 숙명이니까.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것이다'라고 끝난 이유는 이력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부담가지 않는 아첨으로 시작해, 경쟁사 제품을 눈에 띄지 않게 깎아내린다. 후에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며 적당한 겸손 치레로 마무리한다. 천재가 노력한다면 얼마나 무서운 지는 충분히 알았으나, 레오나르도는 자기피알 마저 잘.. 했다.. 질투심도 질려서 도망갈 정도다. 친구와 자주 대화했다. 아!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날걸. 뭘 다 해놔서 내가 할 게 없잖아. 살기 너무 어려워.. 21세기에 태어나길 잘했다.
 
찬양 비슷한 글이 돼버렸는데 뭐, 그 많은 찬양 열차에 살포시 한 발 얹어보자.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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