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붓을 든 '폭탄'머리와 함께하는 위로와 환희 [문학]

글 입력 2018.02.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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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그림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에는 젬병이다. 그렇다고 다른 거를 다 잘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려서나 지금이나 어떤 것이든 내 미술실력보다는 뛰어나다. ‘미흡’을 받았으니. 수채화학원과 화가 할아버지가 계신 윗층 집을 다녔는데도 왜 이럴까. 여태까지는 좋아하는 것만 하다 미술을 보는 것에도 관심이 생겨 그려보기도 했다. 예술계에 속해있고 앞으로도 계속 미술로 방향을 잡은 언니들과 같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입시로 미술하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리고 내가 흰 백지에 뭔가를 검게 하려면 ‘망설이지 말고 그리고 싶은 걸 그려라’고 그렇게 극성이다. 얼마나 한이 맺힌 지는 알겠는데 약간 무서울 정도이다.
 
최근 JTBC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 2’에서 뜻 깊은 장면이 나왔다. 가수 이효리가 쉬는 시간에 다같이 다이닝룸에 모여 윤아와 같이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학창시절에도 그림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땐 재미가 없어서 관뒀다고 한다. ‘당시에 그리고 싶던 걸 그려라 했으면 그렇게 재미없진 않았을 텐데.’ 라며 아쉬움을 펼쳤다. 덩달아 뭘 그릴지 어려워하는 윤아에게는 ‘똑같이 그리려면 사진을 찍어서 남기면 되니 그냥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라’고 했다. 막상 나도 흰 백지를 받았을 때 그보다 더 하얘지는 머릿속을 경험해본 적이 대부분이다. 낙서로 하다 그치는데, (낙서도 예술이 될 수는 있지만)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다. 이효리는 요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반려견을 비롯한 여러 동물들을 그린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그릴 수 없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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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어디선가 익숙한 한 사람이 무한도전이나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눈 띄었다. 직접 출연한 건 아니고 적절한 타이밍에 짤로 등장하신다. 일 년에 한 두 번 밖에 안 봐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게 되는 특유의 헤어 스타일에 여전히 쉽게 널리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인상과 함께 남겨진 ‘참 쉽죠?’라는 말도. 이 ‘폭탄’머리의 주인공은 밥 로스 이다. 누구기에 전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한 화가일까. 그는 원래 알래스카에서 공군 복무 중 추가 수입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자신이 느낀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고 싶어 했다. 그 결과물은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은 TV 프로그램 ‘그림을 그립시다(원제:The joy of painting)’이다. 그리고 물감이 다 마르기 전에 새로운 물감을 덧칠하는 웨트 온 웨트(wet-on-wet) 기법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린 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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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법을 알려주는 과정은 절대 다그치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로스는 그가 경험했듯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그림 그리기의 진정한 즐거움을 찾길 바랐다. 끊임없는 소음들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계속 소리지르는 것이 싫어 군인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로스 답다. 나도 군대를 준비했던 적이 있는데, 나도 역시 군대의 이런 부분과도 맞지 않다 생각하여 결국 가지 않기로 했다. 이에서 더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열광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공연예술 같이 동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만 가능한 것일 줄 알았는데 정적이고 어느 정도 진입장벽이 있다 생각하는 미술 분야에서 이뤄낼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다. 하지만 영상을 보니 금방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한 때 국내에서 열풍이던 ‘혜민스님’을 비롯해서 다독여주는 글들의 것과 같은 것 아닐까. 한편으로는 얼마나 우리 사회가 슬프기에 이런 것들이 성황인지 씁쓸하기도 하다.

<뉴욕 타임즈> 수석 미술 비평가인 마이클 키멜만은 자신의 저서 ‘우연한 걸작’에서 밥 로스를 최고의 아마추어이자 진정한 프로라고 말했다. 아마추어는 ‘무언가를 사랑해서 진정으로 하는 사람들’, 최고의 아마추어는 프로의 기술을 갖춘 사람’, 진정한 프로란 ‘본질적으로 아마추어로 남아있는 사람들로 정의한다. 로스는 자산의 그림에서 예술성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미술계도 싸늘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그려진 400여 장의 그림을 처음부터 끝까지 즐겼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이 새롭지만 명확한 한 단어로 설명되며, 그것의 대표적인 예시가 되었을 때 기분은 어떨까. 그게 뭐든 단지 좋아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그 이외의 것들은 전혀 신경 쓰이지도 않을까?

책 ‘그림 그리기는 즐겁죠’에는 이런 밥 로스의 매력이 듬뿍 녹아있다. 유명한 로스의 삶에 대한 어록은 물론이고, 11년간 30여 시즌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그려왔던 그림들이 300편 이상 수록되어 있으며 독자들이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15편의 단계별 지침까지 담겨있다. 이 책을 좀 더 즐기는 3가지의 포인트로는, 1) 이 책을 따라서 직접 그림을 그려본다. 포근한 설명에 따라 움직이면 결과물에 분명 만족할 것이다. 그럼 “역시 그림 그리기는 즐겁죠?”라는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릴 것이다. 2) 실제로 밥 로스가 인정한 유일한 공식 도서이다. 그의 삶과 작품을 기리는 하나뿐인 도록인 셈이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마다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며 한 숨 쉬어가자. 3) 화가의 책이라 해서 꼭 그림책일 필요는 없다. 그의 삶에 대한 다정한 문장들이 포근히 안아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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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기는 즐겁죠
- 밥 로스의 참 쉬운 그림 수업


원제: The joy of painting

글 / 그림: 밥 로스

옮긴이: 윤영

분야: 예술·대중문화 / 에세이 / 건강·취미

면수: 208쪽

정가: 18,000원

발행일: 2018년 1월 30일 

펴낸곳: 윌북



[유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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