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 보이체크 >의 뮤지컬화는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2014년, 윤호진 연출의 뮤지컬 관람 후기
글 입력 2018.02.2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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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희곡 < 보이체크 >를 다시 읽어봤다. 그리고 읽다 보니 4년 전에 봤던 뮤지컬 < 보이첵 >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그 당시 기록해 놨던 관극 후기를 다시 읽어 봤다. 그리고 이번엔 이를 기반으로 < 보이체크 >의 뮤지컬화에 대한 내 개인적인 오피니언을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기고해보려 한다.

*

 2014년에 공연된 윤호진 연출의 뮤지컬 < 보이첵 >의 원작은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그 뷔히너(Georg Buchner)의 희곡 < 보이체크 >이다. 게오르그 뷔히너의 < 보이체크 >는 이 작품이 지닌 특성들로 인해 현대에도 많은 연출가들이 재해석하고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 특성들에는 ‘미완성’, ‘개방희곡’, 그리고 ‘현대성’이 있다. 우선 < 보이체크 >는 미완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사실주의 연극이 아닌 개방희곡의 구조를 보여준다. 사실주의 연극은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고,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사건들을 다룸으로써 장면과 장면 사이에 일어난 일을 명확히 알게 해준다. 하지만 이와 달리 개방희곡에서의 한 장면은 독자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을 뿐 다음 장면과의 연결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즉 이런 독자적인 한 장면들이 각각 병렬되어 있는 것이 개방희곡의 구조이다. < 보이체크 >는 이런 개방희곡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 보이체크 >가 미완의 작품이라는 점은 연출가로 하여금 극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그에 알맞은 결말을 만들도록 하는 여지를 두고, 또 < 보이체크 >가 개방희곡의 구조를 지녔다는 점은 연출가가 자기 자신의 시각에 맞춰 각각의 장면의 순서를 배열하도록 하는 여지를 둔다. 결국 < 보이체크 >는 연출가들에게 재해석의 가능성을 많이 열어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재해석의 가능성을 많이 지닌 < 보이체크 >는 그 내용에 있어서 ‘현대성’을 지니고 있다. 게오르그 뷔히너의 작품은 ‘권력과 계층에 대한 문제’를 많이 다루는데, 이런 문제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커다란 문제로 남아있다. < 보이체크 > 또한 이런 ‘권력과 계층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다.

< 보이체크 >는 그 작품이 지닌 이러한 특성들, ‘미완성’, ‘개방희곡’, 그리고 ‘현대성’으로 인해 ‘현대’에 많은 ‘연출가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어 공연되고 있다. 이런 < 보이체크 >가 이번엔 윤호진 연출가에 의해 뮤지컬의 형태로 재해석되어 무대에 올라가게 되었다. 과연 게오르그 뷔히너의 희곡 < 보이체크 >가 뮤지컬 < 보이첵 >으로 어떻게 재탄생 되었을까? 그리고 < 보이체크 >를 최초로 뮤지컬로 재탄생 시킨 윤호진 연출가의 작업은 성공적이었을까?



게오르그 뷔히너의 희곡, < 보이체크 >

희곡 < 보이체크 >의 뮤지컬 < 보이첵 >으로의 재탄생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희곡 < 보이체크 >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 보이체크 >는 독일의 천재 극작가 게오르그 뷔히너의 작품이다. 게오르그 뷔히너가 살던 시기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어지는 유럽 자유주의의 물결이 빈 회의에 의해 좌절당하는 왕정복고시대(1930년대)였다. 한마디로, 그가 살던 시대는 혼란과 격변의 시대였다. 그는 이러한 시대에서 극소수 귀족 계급의 풍요로운 생활과는 대조적인 대다수 농민들의 궁핍함을 목격하고, 이런 현실에 분노하여 농민들에게 혁명을 고취시켜 주기 위해 ‘헤센급전’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뷔히너는 혼란의 시대 속에서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런 뷔히너의 삶의 배경과 모습은 그의 작품 < 보이체크 >에 드러난다. < 보이체크 >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역사적인 시대는 ‘독일-오스트리아 동맹’이 유지되고 국가적인 긴장상태가 있어서 군대가 크게 발전되어 있던 시대이다. 이와 동시에 이 시기는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한 1820년대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 보이체크 > 속의 사회는 부르주아적인 사회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 < 보이체크 >는 이런 혼란스럽고 부르주아적인 사회의 시대 속에서 광기에 휩싸여 가는 한 남자 ‘보이체크’에 대한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간략하게 말해보자면 이렇다. 보이체크는 가난한 한 군인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정을 부양할 돈을 벌기 위해 여러 일들을 한다. 그는 군의관의 생체실험물이 되기도 하고 대위의 이발을 해주기도 한다. 이런 보이체크에게 유일한 삶의 목표이자 희망은 자신의 부인인 ‘마리’와 아들 ‘알렉스’이다. 군의관의 실험(완두콩만 먹으면 인간이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는가에 대한 실험)으로 인해 몸이 약해진 보이체크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휩싸이고, 이런 상태에서 자신의 아내 마리가 군악대장과 하룻밤을 보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자 보이체크는 크나큰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그는 마리를 죽이고 만다.

< 보이체크 >의 이러한 내용은 뷔히너가 살던 당시의 실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했다고 추정된다. 이 살인사건은 1821년 6월 21일 저녁 10시 반에 41세의 이발사 요한 보이체크가 단도를 가지고 자기의 정부인 46세의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살인자인 요한 보이체크는 가난하고 지위도 없고, 군인 출신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성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 분노에 차 살인을 저질렀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평소에 정신분열의 증세를 보였다며 정신적 책임의 능력이 없어 보이는 인상을 주었다고 했지만, 법 의학자의 정신 감정에 의해 정신분열의 증세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럼 이제부터 < 보이체크 >의 작가, 시대적 배경, 줄거리,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을 생각하며, 이를 재해석한 뮤지컬 <보이첵>의 공연을 살펴보자.



< 보이체크 >가 뮤지컬 < 보이첵 >으로 어떻게 재탄생 되었을까?

먼저, 뮤지컬 < 보이첵 >의 공연에서 보인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정리해보자. 이 공연의 주인공으로 볼 수 있는 ‘보이첵’은 순수함과 광기가 공존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보여준 마리와 알렉스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의 것보다 순수했지만,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 치다가 그는 결국 극도의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이 날 보이첵을 연기한 배우 김수용의 연기는 이런 보이첵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특히 그가 보여준 보이첵의 순수함은 매우 잘 전달되었다. 다음으로 이런 보이첵이 사랑하는 그의 아내인 ‘마리’는 동화속의 공주와 같은 꿈을 꾸며 사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런 꿈을 이루어 줄 것 같은 군악대장의 유혹에 넘어가고 그가 준 가짜 루비목걸이를 받으며 그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여기서 마리가 군악대장으로부터 받은 ‘가짜 루비목걸이’는 극 전체의 흐름에서 ‘마리의 꿈’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군악대장은 굉장히 마쵸(macho)적인 인물로, 그저 여자와의 관계를 즐기는 인물이다. 군악대장을 연기한 배우 김법래의 낮고 굵은 목소리는 이런 군악대장의 마쵸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군의관과 대위는 이 극에서 보이첵의 광기를 키우는 중심인물들이다. 군의관은 보이첵을 그저 실험용 쥐처럼 생각하며, 그를 극단적인 상태로 모는 가장 직접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중대장은 삶을 따분하게 여기며 자신의 사무실에서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다가, 그 장난감보다 더 재미있는 장난감인 보이첵을 발견한다. 이런 그는 군의관의 실험에 참여하여 보이첵에게 ‘마리와 군악대장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보이첵의 광기에 불을 지핀다.

다음으로, 무대들을 살펴보자. 기본적인 무대 세트는 하늘을 표현하는 뒷배경과 갈대밭으로 되어있다. 다른 무대의 구조들은 오른쪽 벽에서 마리와 보이체크의 집과 창녀들이 있는 술집, 중대장의 사무실 등이 나오는 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공연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어떤 느낌들을 전달해준 기법은 조명이었다. 무대 중간 중간 나왔던 ‘빨간 조명’은 보이체크가 광기를 일으킬 것 같은 느낌을 주며 ‘관객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효과를 주었다. 그리고 어떤 조명이냐에 따라 같은 갈대밭이 다른 느낌을 주었다. 예를 들어, 아낙네들이 짚을 엮으며 노래를 부를 때는 ‘노란 조명’으로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보이체크가 마리를 죽일 때는 ‘빨간 조명’으로 비극적인 느낌을 주었다. 적절한 상황에 쓰이는 적절한 조명은 연출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느낌을 관객에게 적절히 전달해주었다.

미완성의 작품인 < 보이체크 >를 윤호진 연출가는 이렇게 결말을 지었다. 달이 붉은 날 밤, 마리는 사라진 보이첵과 자신이 저지른 일(군악대장과의 관계)로 인해 많이 괴로워한다. 그리고 저 달 너머로 가고 싶다며 그대, 즉 보이체크와 함께 아무 걱정 없는 저 달 너머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를 들은 보이첵도 마리에게 그곳, 저 달 너머로 가자고 한다. 그리고는 마리의 목을 칼로 베어 죽인다. 이때 보이첵은 마리의 목에 난 피를 보고 “당신이 원하던 루비목걸이, 그것을 위해 그대는 무얼 하였나요! 아니, 아니,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여기서 ‘마리의 꿈’의 상징이었던 루비 목걸이가 재등장하는데, 이 장면은 이룰 수 없는 꿈을 지녔던 마리의 비극을 보여준다. 이렇게 마리를 죽인 보이첵은 그녀의 시체와 함께 호수에 빠져 자신의 삶도 끝을 낸다. 1부의 전반부에 ‘호수의 저주’가 나오는데, 여기서 우리는 이 호수의 저주가 ‘보이첵이 마리를 죽이고 함께 호수에 들어가 잠들 것이라는 결말의 복선’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이첵과 마리가 죽은 이후, 사람들이 그들의 장례를 치르고 편안한 곳으로 가라고 말하며 이 뮤지컬은 막을 내리게 된다. 윤호진 연출가는 이처럼 결말을 끔찍하거나 잔인하게 표현하기 보다는, ‘안타깝고 비극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런 결말은 보이첵의 삶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관객이 느끼게끔 유발한다.



뮤지컬 < 보이첵 >으로의 변신은 성공적인가?

이렇게 공연된 뮤지컬 < 보이첵 >을 통해 윤호진 연출가가 전하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가 연출한 < 보이첵 >의 1부에는 보이첵의 순수함이 충분히 드러났다. 하지만 2부에서는 보이첵의 광기가 그만큼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오히려 그 주변 사람들(군의관, 중대장 등)이 더 광기어려 보이고 보이첵은 그 사람들로 인해 괴로워하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이처럼 보이첵을 괴롭히는 계급층들, 대표적으로 군의관과 중대장의 광기가 매우 잔인하게 보임으로써, 보이첵에 대한 연민과 계급층의 잔인함이 보다 강조되었다. 가난한 계층인 보이첵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치지만, 계급층들의 잔인함으로 인해 결국 광기에 휩싸이고 좌절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사회(가난,계층의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윤호진 연출가의 메시지는 앞서 살펴본 원작과 원작의 작가(게오르그 뷔히너)와도 잘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 보이체크 >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추정되는 살인사건에서 나온 ‘정신적 책임 문제’와도 잘 이어진다. 이 실제 사건에서 살인자의 정신에 이상이 있다고 보였으나, 그는 아무런 정신적인 이상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뮤지컬 < 보이첵 >의 보이첵 또한 이 살인자와 같이 광기의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정신에 이상 없는 사람이다. 이 공연에서 보이첵은 정신적 이상의 모습(광기)을 보이긴 하지만 이를 야기한 계급층들이 보이첵보다 더한 광기를 보인다. 이는 결국 정상적인 사람인 보이첵이 어떤 사회적인 문제들(가난, 계층)로 인해 광기에 빠진 것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이런 ‘사회적인 문제(가난, 계층)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메시지는 여전히 오늘날에도 큰 문제이므로, 오늘날 사회의 일원인 관객들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를 충분히 지녔다.

그렇다면, 이런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나? 뮤지컬 < 보이첵 >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이용해 이 메시지를 보다 부드럽게 전달하였다. 연극의 대본으로 만들어진 원작 < 보이체크 >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고 자극적이어 자칫하면 대중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윤호진 연출가는 이를 ‘뮤지컬화’하여 이런 거부감을 줄이고 대중에게 보다 부드럽게 다가갔다. 연극에는 없는 뮤지컬의 특징 중 가장 큰 특징인 ‘노래’는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극의 내용에 보다 더 잘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도록 만든다. 이런 ‘노래’와 여러 조명효과나 무대 움직임들을 통해 윤호진 연출가는 원작의 메시지를 보다 부드럽게 관객에게 전달했다.

뮤지컬로 공연이 되면, < 보이체크 >를 연극으로 공연할 때보다 직접적으로 어떤 가난이나 계층의 문제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내용 전달에 필요한 모든 대사를 뮤지컬에서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그 장르 자체가 지닌 특성상, 대사와 함께 꼭 뮤지컬 넘버라고 불리는 ‘노래’를 포함해야만 한다. 결국 희곡을 뮤지컬로 재탄생 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희곡의 몇몇 대사들이 줄여지거나 아예 사라져야만 한다. 이로 인해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윤호진 연출가는 원작의 메시지만은 놓치지 않고 있다. 이 부분에서 그의 작업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었다.

공연은 관객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어떤 공연이던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없거나 잘 전달되지 않으면, 그 공연은 실패한 공연이 된다. 하지만 윤호진 연출가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관객에게 전달하였다. 이 ‘메시지’는 오늘날의 사회에도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있는 ‘가난과 계층의 문제’이다. 이렇게 오늘날에도 중요한 메시지는 현대의 대중에게 전달될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이런 메시지를 윤호진 연출가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통해 부드럽게 관객(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메시지를 대중에게 부드럽게 전달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 보이체크 >의 뮤지컬화 작업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21세기에서의 공연예술이란?

수많은 매스미디어가 소통과 네트워크를 주도하고 있는 21세기에 있어서 직접 공연장에서 공연을 본다는 것, 그리고 공연장에서 그 작품(혹은 그 장르)을 상연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의미(특별히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21세기에 와 여러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소통의 공간이 생겼다. 하지만, 이렇게 형성된 소통의 공간들은 모두 현실의 공간이 아니다. 즉, 이 공간들은 모두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접촉해있는 공간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접촉해 형성한 가상의 공간이다. 이런 가상의 공간을 통해서 우리는 거의 모든 언어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감정의 소통’을 하는 것은 어렵다. 여기서 말하는 감정의 소통이라는 것은 소통을 하고 있는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느끼고 그에 대한 반응을 또 서로 느끼는 것이다. 이런 감정의 소통이 가능한 공간은 ‘현실의 공간’인데, 공연장 또한 이런 공간이다.

공연장에서 우리는 직접 배우들의 숨소리, 표정 등을 보고 느끼며 그 배우들의 감정을 전달받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 공연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보다 더 몰입하게 된다. 결국 공연장에서 작품을 상영한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관객과 소통을 하며, 그들에게 감정을 전달하고 소통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소통의 내용에 보다 더 몰입하도록 해준다. 나의 경우에도, 컴퓨터나 텔레비전과 같은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어떤 내용을 접할 때 보다, 직접 공연장에 가서 그 공연을 볼 때 더 그 내용에 몰입하고 집중한다. 이처럼, 소통에 있어서 보다 더 집중적이고 몰입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공연예술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자체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1. 김이경, 「연극 연출과 동시대성 : 한국에서의 보이체크《Woyzeck》공연을 중심으로(1970-2010)」, 석사학위논문, 호서대학교 대학원, 2012 
2. 윤세훈, 「희곡 보이체크의 현대성」, 한국 뷔히너 학회, 같은 학술지 
3. 이창복,「G. 뷔히너의 <보이첵>에 나타난 극적 구성요소의 특징」『한국 외국어대학교 논문집』, 28집 (한국외국어대학교: 195) 
4. 정지창,「뷔히너 문학의 서사성」, 한국 뷔히너 학회,『뷔히너 문학연구』(서울: 문학과 지성사, 1990) 
5. 한채경, 「1990년대 이후 국내<보이체크Woyzeck> 공연의 무대형상화 연구」, 석사학위논문,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9


[윤소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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