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잃어버린 자들의 슬픔 [문학]

글 입력 2018.02.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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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 바깥은 여름 >

‘여름’은 애증의 계절이 아닐까.
8월의 햇빛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쨍쨍하고 온몸은 끈적거린다.
그래도 찬 계곡물에 첨벙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계곡물에 담가놓은 수박을 쩍 갈라 빨간 물을 줄줄 흘리며 먹으며 행복해 한다.
또 땀을 뻘뻘 흘리며 짜증이 가득한 채 집으로 돌아와 시원한 선풍기바람에 땀을 말리며 행복을 느낀다.
이래서 여름은 밉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는 계절이 아닐까.
하지만 이 애증이라는 것도 살아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의지가 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바깥은 여름’이 아닐까 싶다.
바깥‘은’ 여름인데, 안은 그렇지 못한 것이겠지.
안의 사람들은 그런 여름을 느낄 여력도 없는 상태이다.
이 책 속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잃어버린, 남겨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 아픔, 부재, 공백을 뼈저리게 느끼며 그 시림과 차가움을 견뎌내고 있다.
즉, 차디찬 겨울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총 7개의 소설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소설은 ‘입동’이다.
이는 어린 아들을 잃은 젊은 부부의 이야기이다.
이들 부부는 안정된 삶을 꿈꾸며 무리한 대출을 해서 한 아파트에 정착한다.
그리고 갑작스레 아들을 잃는다.

이 이야기에서는 시각적 효과가 느껴졌다.
아들을 잃은 이들 부부의 삶은 무미건조한 회색빛이었다.
이들의 삶에 남은 것은 어둠. 퇴근 후 딸깍. 냉장고 속의 상한 음식들, 말라버린 이파리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 속에서 검붉은 복분자액이 펑 하고 튀면서
식탁, 장판, 벽지, 온 집에 어지럽게 튀어버린다.
이 검붉은 얼룩이 아들을 잃은 이들의 슬픔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일어나버린 일.
닦아도 닦이지 않는 그 얼룩이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아내는 빨간 얼룩이 진 벽지를 방치해둔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갑자기 벽지를 새로 바르자고 제안한다.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벽지를 새로 바르면서 조금은 미소를 짓기도 한다.
하지만 끝내 다시 울고 만다.
그래도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이들 부부는 서로를 의지하며 위로하며 그 겨울을 보낼 테니까.

결국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따뜻함이다.
그리고 이 따뜻함은 누군가와 함께하면 느낄 수 있다.
‘입동’ 속 부부처럼, ‘노찬성과 에반’의 찬성과 에반처럼 그렇게 의지하면서 말이다.
삶이란 홀로 태어나 홀로 죽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삶이라는 철저한 고독 속에서
나의 고독의 길과 그 누군가의 고독의 길이 만나 생긴 인연들로
서로의 외로움을 위로받고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서로의 겨울을 따뜻하게 데펴주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이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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