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민, 그 쓸쓸함에 대하여 [영화]

글 입력 2018.02.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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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은 그리움이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 알렉산드로 푸시킨,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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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짐 브로멘트)과 제리(러스 쉰)


세상의 모든 계절

톰과 제리는 영국 런던에서 산다. 나이가 좀 들었지만, 아직까지 직장에 다니고 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멋지게 키웠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다. 부부는 금실이 좋고 다툴 거리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주말이면 주말농장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 고되긴 하지만 넓지 않은 땅을 스스로의 손으로 일구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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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레슬리 맨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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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피터 와이트)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산다. 톰과 제리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리의 직장동료 메리처럼 과거의 이혼으로 슬퍼하는 사람도 있고 퇴직을 앞두고 삶의 기쁨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메리는 겉으로는 늘 괜찮다고 하지만 자주 톰과 제리의 집에 찾아와 넋두리를 늘어놓곤 한다. 그럴 때면 그녀는 늘 술을 마셨다. 가끔은 지나쳤고 때로는 철없기도 했다. 켄 역시 힘든 삶을 위로받기 위해 톰과 제리의 집을 찾았다. 누가 되었든 톰과 제리는 그들을 편안하게 맞아주었다. 따뜻한 음식을 줬고, 이야기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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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겨울로 계절이 흐르듯, 사람들의 삶도 거스르는 법이 없다. 가을이 되고, 톰과 제리의 아들 조는 어느새 여자친구를 만들어 집에 초대했다. 이날도 역시 메리는 넋두리를 늘어놓을 요량으로 톰과 메리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메리는 케이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넋두리를 위해 준비한 불만 가득한 마음은 엄한 케이티에게로 향했다. 메리의 무례함을 참지 못한 제리는 결국 화를 낸다. 갑작스러웠지만 당연한 결과였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고 분명하게 그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메리는 그들의 가족이 아니다. 메리에게 더 이상 관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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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니(데이빗 브래들리)


겨울이 되고, 톰과 제리 그리고 조는 로니에 집에 찾아간다. 로니의 부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들인 칼은 몇 년 만에, 심지어 장례식장에도 늦게 나타나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 아버지를 탓한다. 명분도 자격도 없는 어리광인 것을 자기 자신도 안다. 결국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사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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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로니에게 자신의 집에서 당분간 머무를 것을 제안한다. 로니 역시 당장의 대안이 없기에 동생의 집에서 잠시 살기로 한다. 며칠 후, 집에 초인종이 울린다. 그 때 집에는 로니 혼자였다. 현관으로 가 문틈으로 누가 왔는지 확인했다. 메리였다. 메리는 다시 한참을 이야기하다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로니는 메리가 누군지도 몰랐고 집주인도 아니었기에 망설이지만 메리는 집으로 들어온다. 심지어 배가 고프다며 투정을 부리다 차를 마시고, 주인인 양 로니에게도 권한다. 담배도 하나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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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주인인 톰과 제리가 도착한다. 둘은 놀라는 한 편 불쾌했다. 왜냐하면 그 날은 조와 케이티도 놀러 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그들은 메리에게 친절을 베푼다. 하지만 그 친절은 겨울처럼 차가운 종류의 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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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펜서


연민, 그 쓸쓸함에 대하여

세상이 영웅과 천재를 바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전재로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그들의 능력이 있다. 마블 영화에 나오는 초인적인 힘뿐만이 아니라 인류를 초월한 희생이나 봉사정신 역시 영웅의 조건이다. 하지만 이것은 세상이 그렇게 따뜻하지 않다는 현실을 반증한다. 세상은 그저 그런 사람과 그저 그런 일들로 미지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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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포 선라이즈


영화는 단 한 순간도 우리에게 판타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며 계절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것들로 일관한다. 현실감 넘치는 설정에 대부분의 일화를 대화로 채우기에,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시리즈’를 떠올리게 만든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단순히 영화의 컨셉과 진행방법에 있지 않다. 바로 진짜 삶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게 만드는 것. 비포 시리즈가 사랑을 이야기한다면 세상의 모든 계절은 연민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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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연민은 이름처럼 따뜻하지 않다. 힘들어서 찾아오는 메리에게 톰과 제리는 항상 따뜻했다. 음식을 주고 이야기를 들어줬다. 필요하다면 잘 곳도 내줬다. 하지만 이것이 지속되고 무례한 상황이 많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톰과 제리도 화를 낸다. 연민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특히 마지막에 메리가 무례했음을 인정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찾아왔을 때, 가족이 식사를 내어주면서도 그들의 행복한 대화를 지속하는 장면은 오히려 소름 돋는다. 행복에 둘러싸인 비극적인 사람의 모습과 그녀에 대한 배려는 처참하고 잔인할 뿐이다. 하지만 어느 한쪽을 비판할 수 없었다. 그것이 삶의 모습이라면 나와 당신 또한 그러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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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리 감독


영화를 보고 가슴 아픈 현실에 놀라는 것은 참 새삼스럽다. 반대로 희망을 가지는 것도 무의미하다. 이쯤에서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영화를 본 내가 등장인물에 대해 가지는 연민만큼은 따뜻했다. 비록 현실로 이어질 수 없지만, 감독은 그렇게라도 따뜻할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기대를 거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감독의 연민은 우리를 향한다. 쓸쓸하지만 가끔은 따뜻한 연민에 대하여.


[공정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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