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꿈과 현실의 아슬아슬한 경계 '꿈의 제인' [영화]

글 입력 2018.02.1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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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극장으로 들어간다. 상영관은 단 하나.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영화관 기둥에 화려한 포스터가 붙어있다. 유흥가 뒷골목의 네온사인 같은 사진 위로 붓으로 거칠게 휘갈겨 쓴 글자가 보인다. '꿈의 제인'. 나는 오늘 꿈속 제인을 만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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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제인을 통과하는 이야기는 모든 것을 명확하게 관객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수많은 이야기의 퍼즐을 영화에 뿌려놓고 의문을 갖게 만든다. 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도 완전한 흐름의 줄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다른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건이 일어난 순서와 상관없이 장면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있다. 심지어 하나의 인물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가출 청소년 보호사로 등장하는 여자는 뒷부분에서 갈 곳 없는 소현에게 집을 내주는 뉴월드의 직원으로 등장한다.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꿈인 걸까.

 쉽게 들어오는 줄거리를 가진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 오래도록 이야기를 곱씹게 만든다. 영화관을 나와 집에 가는 길, 잠에 들기 전까지 계속 영화 속 장면들을 모아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조금씩 조금씩 그림이 완성되어갈 때 우리는 뒤늦게 밀려오는 커다란 감동에 휩싸인다. 이런 영화의 불친절한 서사, 현실과 꿈의 경계를 계속해서 넘나드는 불안한 서사가 우리를 영화에 더 단단히 붙들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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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초반부에 모텔에서 소현과 제인이 나누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제인은 소현의 발 한쪽 새끼발가락이 없음을 발견한다. 소현은 자신의 없는 새끼발가락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기하게도 없는 걸 아는데도 가끔 있는 것처럼 가려울 때가 있다고. 이 대사는 마치 이 영화의 꿈과 현실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이 과연 현실에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소현의 새끼발가락처럼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소현의 꿈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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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제인은 끝까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버틴다. 아주 잘, 그리고 모호하게 구성된 이야기 안에 분명 현실과 꿈은 구분되어 있다. 꿈이라면 완벽하게 행복한 것을 바라게 되어있는데, 소현의 꿈은 어둡고 슬프다. 그저 현실보다 더 나은 것일 뿐. 소현은 계속 누군가와 같이 있기를 바라며 간절히 외친다. "방법을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수 있는지." 소현의 꿈에 소현은 누군가와 함께 있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그래서 다행이라고 한다. 이런 꿈이라고 꿀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트랜스젠더, 뒷골목 어두운 바, 가출 청소년, 그리고 그들만의 은밀한 팸. 이렇게 어두운 배경을 뒤로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상처 입고 세상의 한 귀퉁이로 몰려난 사람들이다. 하지만 꿈의 제인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소수 인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꿈의 제인은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말을 건넨다. 특히 제인의 대사는 우리의 마음을 쿵 하고 내려앉게 만든다. 영화관에서 거짓 이야기로 꾸며진 환상을 보고 밖으로 나가면 다시 어두운 현실에 맞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제인이 위로의 말을 건넨다.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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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제인은 뻔한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막바지에 다다라서 제인이 우리에게 던지는 말도 그렇다. "어느 날 한번 행복하면 됐죠. 자,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어쩌면 이게 우리가 자주 불행하고 어쩌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최선의 자세일지도 모른다. 마냥 즐겁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 그게 아주 가끔이라도 즐겁다면 그래도 좋은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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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만 보기에 이 영화 너무 아깝다. 당신은 다시 영화관으로 걸어갈 것이다. 다시 한번 제인과 소현을 만나 못했던 이야기를 하러 간다. 티켓을 받고 어두운 영화관으로 들어가 좌석을 찾아 앉는다. 그리고 제인이 당신에게 말한다.

 "안녕. 돌아왔구나."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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