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고 정한 갈매나무의 시인 백석의 이야기, '백석우화'

글 입력 2018.02.1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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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어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일제 강점기에 친일을 할 수 없다고 펜을 놓았지만 항일 시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해방 후 자신의 고향인 북에 남았다는 이유로 남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며, 북에서는 사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삼수갑산 등 외지에서 고생을 한 불운의 시인 백석. 하지만 현재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백석. 그의 삶과 그의 글로 구성된 연극 '백석우화'가 대학로의 30스튜디오에서 무대에 올라간다. '백석우화'는 2015년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작품상과 연기상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연극이다.

본인이 처음 이 연극을 본 것은 2016년 가을이다. 연출가 이윤택이 감독으로 있는 연희단거리패의 연극이라는 이유로 제목도 제대로 모른채 보러간 '백석우화'는 막이 내린 후 본인을 눈물짓게 하였고, 반드시 한번 더 이 연극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2018년 겨울, 재관람을 하게 되었다. 두번째 보는 '백석우화'는 본인이 모든 내용을 알고 있는 상태로 관람을 하였지만 2년전과 다름없는 감동을 안겨주었고, 다시 한번 본인을 눈물짓게 하였다. 백석의 시를 아름다운 멜로디로 녹여내기도 하고, 우리의 가락으로 해석하기도 하였으며, 위트있는 춤사위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두번째 관람하는 백석의 삶을 그린 '백석우화.' 본인에게 두번의 짙은 감동을 안겨준 이 연극은 영원히 가슴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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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는 누구인가?

백석은 영문학을 전공한, 당대 최고의 인기인 '모단보이'였다. 시대의 유명인이었던 만큼, 수없이 사랑을 하였고 수없이 실연을 당하면서 그 감정들을 자양분 삼아 시를 썼다. 그래서인지, 20세기 최고 인기의 연애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의 나타샤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계속되어서 화제가 되었고, 극 안에서도 나타샤가 누구인가에 대해 사람들은 토론을 한다. '자야'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나타샤로 알려져있는 인물이다. 함흥관의 기생이었던 진향은 백석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백석은 자야오가에서 따온 '자야'라는 단어로 진향의 호를 지어주었다. 비록 자야와 백석은 이별을 하였지만, 여전히 한편의 아름다운 사랑시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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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이솝우화

극의 클라이막스에서 백석은 자신의 얼굴에 흰 분칠을 하고 입술을 빨갛게 칠하고 이솝우화를 읽는다. 웃고있는 광대 분장을 하고 있지만, 울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백석의 모습은 관객들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이 억압받는 사회의 '글쟁이'로 살아남기 위해서 백석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산속으로 들어가서 사는 것과, 현실에 타협하며 사는 것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백석은 괴로워하다가 가족과 평양에서 살기 위해 '붓을 총, 창으로!'와 같은 글을 쓰며 조금씩 시와 동화도 쓰려고 하였으나, 삼엄한 검열을 거치며 원하는 글을 쓰지 못하자 삼수갑산으로 들어가 30년을 살았다. 그 동안 백석은 글을 쓰지만, 출판을 하지 않고 불쏘시개로 사용을 한다. 검열 현장에서 더이상 쓸 글이 없다고 조용히 고개를 떨구던 백석. 이런 장면들을 본 후, 백석의 시를 읽으면 그 느낌이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백석이 속세를 버리고 외진 곳으로 올라가 사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백석의 시구 중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에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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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우화'는 굉장히 인상깊은 연극이었는데, 연극만큼 기억에 남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극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길에 판매하는 '백석우화'의 대본집이다. 이 연극의 대사는 대부분 백석의 시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이 대본집은 백석의 시집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가슴이 찡한 연극을 본 후, 백석의 감성적인 시집까지 구매를 한다면, 분명 한번에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 빠져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 또한, 30스튜디오 극장 1층에는 배우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연극 전후로 직접 배우들을 만나볼 수 있고, 따스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연극을 볼 준비를 할 수 있는 이 카페는 본인이 30스튜디오를 이용할때마다 애용하는 장소이다.

우리는 백석의 시를 교과서에서 이미 많이 접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선생님께서 설명하시는 시의 특징을 외우기만 했을 뿐, 백석이라는 시인이 인생과 이 시를 하나하나 연결시켜보며 백석이 이 시를 쓸 당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백석우화'를 보면서, 우리는 백석의 인생과 그의 시를 연결지으며 연극과 시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천재시인이라고 불렸지만, 북한에 남았다는 이유로 남한에서는 한동안 잊혀졌던 불운한 시인 백석. 우리는 이 연극을 통해서 그를 추억하며, 우리의 마음속에 그를 간직해야 할 것이다.


[김승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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