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travel)적인 삶까지의 깔끔하지 않은 고찰 [여행]

글 입력 2018.02.1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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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세의 여행

 세계에서 통용되는 어떤 제도에 속하는 것을 선택지에서 아예 제외시킨 후, 공부의 수단으로 어릴 때부터 고대하던 세계여행을 계획 선상에 올렸다. 일상에서 온전하게 가지기 쉽지 않은 고행을 통한 고찰의 시간을 위해. 그리고 다른 문화 등 여러 것들을 보며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거나 적용하려 했다.

 책을 읽으면 내용을 잘 기억 못한다. 다른 생각이 마구 마구 솟구치기 때문. 얼마 전 다트머스와 카네기 멜론대학에서 연구한 ‘책vs모니터로 읽었을 때 학습효과 연구’가 200% 적용되는 본인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뇌를 풀가동 시키는 종이 위 활자에 취해, 숨겨졌던 많은 것들이 떠올라 막상 그 활자들은 외면받기 일쑤다. 20장정도 읽으며 여러 생각들을 하다 결국 뇌리에 박히는 한두 가지의 글귀에 이내 책장을 덮고 생각을 폭발시킨다.

 앞으로의 기약 없는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대가들의 여행기를 공부하려고 계획했다. 르 코르뷔지에, 얼마 전 신작이 나온 조선 최초의 여성 세계여행자 나혜선, 국내 여행자 김주원, ‘나는 세계일주로 00을 배웠다’ 시리즈를 목록에 올렸다. 그러다 문학가의 시선도 궁금해져 헤르만 헤세의 여행기를 먼저 읽기 시작했다. 자신을 스스로에게 이끌어가는 하나의 고행의 수단으로 사용된 여행의 내용이 무척이나 필요하기 때문. 그러다 본질을 알게 되어 기약 없는 여행이 더욱더 기약 없게 되었지.



# 여행과 떠돌아다니는 것

 tourist와 traveller의 차이와 비슷하다 생각한다. 명확히 정의를 내리긴 어렵고 영원히 안 내려질 것이다. 사전적 의미는 관광객과/ 여행자, 나그네, (특히 집시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는) 유랑자. 이제껏 생각해왔던 것에 연장선으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니체가 ‘인간적인 것,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서 여행자의 등급을 5개로 나눈 것과는 다르다. 관광객, tourist들도 다섯 번째 등급, 관찰한 것을 모두 체험하고 체득한 뒤 집에 돌아와 반드시 실천해나가는 등급의 사람도 있다. 여행자 traveller도 첫 번째 등급, 여행하면서 관찰의 대상이 되는 자들도 많다. 한국 특유의 모든 것을 등급화로 해서 줄 세우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뿌리박힌 상황을 토대로 하는 생각이 절대 아니다. 이 둘 다 모두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이 둘 다를 구현할 수 있고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구현하는 것이 중요할 뿐.

 나는 가족여행, 패키지투어, 인도에서 여행(tour)을 체험했다. 가족여행과 패키지 투어는 주는 것만 받아먹고 뭐가 뭐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며 다니다 어느 샌가 고심하는 정신을 놔버린 것이다. 한창 배우며 나만의 것을 만들어 가야할 20대에는 가성비가 극도로 떨어지는 것이지. 인도는 내가 계획하고 모은 돈과 함께한 첫 여행으로 워크캠프2주 자유여행 약1주반, 혼자 1달가량을 떠났다. 하지만 나의 내공이 바닥이라 여러 관문을 거쳐 타지마할을 보고도 ‘아,,, 타지마할, 그거구나. 음. 봤네. 하얗듯 누렇고 사람이 많군. 문양 예쁘네. 인도인들 날 엄청 신기해하네. 찰칵, 찰칵’ 허무함이 나를 휘감았다. 그래서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떠돌아다니는 것(travel)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매 순간이 나를 바꿀 것이다. 그만큼 바뀔 수 있는 나 자신을 만드는 것이 먼저겠지. 떠돌아다니는 것에는 그 공간에서 사는 것도 포함된다. 이 시대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찬사를 보내며.



# 고민의 시작

 떠돌아다니는 게 일생의 목표였는데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떠돌아다니는 것을 생활적으로 막연히 생각했는데 막상 생활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흔들리기 시작했다. 원래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 갈 여행지에서 생활을 했을 때, 그것을 반복했을 때 견딜 수 있을까. 사람 사는 곳이라 똑같을 것이고 기름처럼 유한 성격이라 적응에 문제는 없겠지만, 내 공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곳에서 내 창조력을 샘솟게 하고 불태우는 곳이 될 수 있는지. 그러면서 본질을 안 잃어버릴 수 있을지. 이렇게 생각하면 끝도 없겠지만 외면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 영원히 떠돌아다니는 것과 정착

 이번 달 말, 가시적인 기한이 있는 것을 시작으로 긴 서사시가 시작된다. 이 기한이 끝나면 한국이 아닌 어느 곳에서든 돈을 벌어가며, 한국이 아닌 곳에서만 머무를 생각이었다. 배움을 시작으로 이젠 한풀이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옅어졌지만 워낙 어린 시절부터 여행 에세이 특유의 말투에 모든 걸 걸었기 때문. 정착하는 것을 지루하고 겁이 많다고 고찰 없이 치부해버리면서. 지금은 약자의 속없는 몸집 부풀리기로 판명이 났고.

 이제야 정확히 말할 수 있다. 앞으로의 떠돌아다니는 것은 정착했을 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상태를 위함이다. 지금 내 모든 것을 건 유일한 목표. 어린 시절에 그렇게 무작정 떠나고만 싶었던 이유는 자유를 원한 것도 있지만 정착하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것을 찾았던 것. 하지만 이제 알았지. 정말 어딘가에 있지 않더라도 장소만 바뀔 뿐, 그 떠나는 것에도 정착을 해야 한다는 것. 여행하는 것도 생활이 되어 버렸다는 어느 부부 세계여행가의 글을 보고 뒤통수를 쎄게 맞았지. 내가 무엇을 회피하고 있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떠나려할수록 정착을 얼마나 원하고 있었는지 더 알게 됐다. 이때까진 방법을 몰라서 자존심을 부렸던 거였다.



# 여행하려는 이유

 왜 이렇게 나가려는 걸 좋아하는지, 뭘 그렇게 가만히 못 있어서 안달인지. 그 귀찮은 걸 왜하려하는지 궁금하겠지.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약간은 신선한 이유를 가진 게, 보통 정상이 아닌 게 아닌 라 생각이 들걸. 내가 알아서 잘 피하니까 안 피해 다녀도 돼.

 지금 내가 숨 쉬고 눈 깜빡거리는 이 순간 누군가는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코끼리를 만나고 있을 텐데 그걸 해보지 않고 죽는 건 너무 배 아프잖아. 나 빼고 재밌는 거 하는데 내가 가면 할 수 있는 것을 안 해보고 매일 하던 것만 하긴 아쉬우니까. 그리고 이렇게 땅이 많은데 안전지대를 넓혀야지. 이 넓은 땅이 모두 낯설다면 좀 슬플 것 같아. 지역이 익숙해지다 보니 덩달아 사람들도 보게 되고 얼굴 익힌 분들도 여럿 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어렸을 때 핑구나 텔레토비를 봤듯이 그들은 뭘 보며 컸을까? 티비를 안 봤으면 놀이터에서 어떤 사람들이랑 뭘 하며 놀았을까. 쓸데없는 호기심이나 오지랖이겠지만 너무 궁금해서 직접 가보고 느껴야겠는 걸 어떡해. 못하란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 때마다 수명이 주는 것도 아니고. 위험한 건 내가 기본 적으로 권고되는 걸 지키기 나름이고, 그래도 일어난다면 집에 가만히 있어도 천장 무너져 생길 일들일 텐데. 그럴 바엔 하고 싶은 거 하다 그러면 원한이라도 안 남지.

 근데 정말 그 여행을 가슴 깊이 일상으로 가져오려고. 앞으로 120살 동안 천천히 곱씹듯 가야지, 벌써 한 번에 막 해치우듯 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여러 번 가면 좋겠지만 더 중요한 게 생겨버려서. 내가 세운 여행러의 기준 상태도 아직 도달하지 못했고. 내 여행의 목적을 이미 구현시킨 사람이 옆에 있으니 그 사람과 최대한 함께하려고. 이런 나에게 여행이 된 자를 떠날 생각이 없다. 기분을 맞추거나 그 사람이 나를 떠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온전히 나와 그 사람의 삶을 위해. 따로 보다는 함께였으면 좋겠어서. 아, 나 혼자 설레발이라면 미안. 그렇다고 '매 순간을 끝까지 함께할, 혹은 더 환상적으로 만들어줄 누군가와 같이하세요. 블라블라'를 얘기하고 싶진 않다. 커플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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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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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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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구바구
    • 우선 여행이라는 소재로 시작해 커플만세로 끝나는게 인상깊었는데요, 특히 정착에 대한 부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저도 지금 내 자리, 내 주변을 피하고만 싶어서 떠나던 여행이 있었는데, 결국 장소만 바뀐거지 그곳에서도 '정착'해야 했다는 부분을 읽었을 때 공감도 많이 갔던 것 같습니다. 또, 눈 깜빡 거리는 순간에 누군가는 스카이다이빙을 한다. 이 문장을 읽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네요, 유지은 에디터 님이 직접 생각하신건지? 정말 제 자체를 되돌아보게되는, 그런. 난 지금 1분1초를 소중하게 보내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사실 여행을 좋아하고 도전을 좋아했지만, 최근에 뜻대로 풀리지않은 여행을 다녀와서 무언가 '도전'한다는 것을 망설였는데, 이 글을 읽고 다시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지은 에디터님께서 '유연하게 이을 수 있는 법' 에 대해 피드백을 원하신 것 같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구성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초반에 도입부분이 읽기 살짝 힘든 부분이 있었어요! 앞 부분에서 고민을 많이 하지 않으셨나요?(제 추측입니다..하핫) 하지만 뒤록 갈 수록 유지은 에디터님이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는지, 명확해지는 것 같아서 그 점은 좋았습니다.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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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북끼리
    • 2018.03.23 15: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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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구바구안녕하세요! ㅎㅎ 구성이 마음에 드셨다니 너무나도 다행입니다 ㅎㅎㅎ 음 스카이다이빙 생각은 고 2 2학기 기말고사 화학시간때 든 생각이에요!. 그걸 기점으로 생각들이 많이 확장되어왔어요. 이 글에 출처를 밝히지 않은 모든 생각들은 다 제가 생각한 것들이에요. 그래서 머리가 터질것 같아 토해내듯 쓴 글이기도 하죠..하하^^; 그리고 뒤의 생각들은 몇년정도는 가지고 있던 생각이라 도입부가 그렇게 느껴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독자분들께 다 보인다니 신기하고 뜨끔할 따름입니다 하핳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약간 그 도입부의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한 것도 있었거든요, 이전의 생각들과 너무나도 엉켜서 말이죠ㅠㅠ 글의 순서 배치에 엄청 고심했는데 뒤로 갈수록 명확해졌다니 다행입니다! 커플을 이루는 상대로 인해서 깨달은 정착의 원인, 외면된 본질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는데 잘 전달된것 같아 기쁘구요! 구체적인 피드백 너무나도 감사드려욯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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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키스
    • 안녕하세요 김나연입니다! 글을 세 번 읽었습니다! 글이 생각하게끔 하는 게 많아서 다시 읽은 것도 있고, 약간 한 번에 술술 읽기는 어려워서였던 것 같기도 해요! 구어체와 문어체가 굉장히 잘 섞여 어우러져서 읽으면서 문체도 신선했고, 글의 내용도 정말 신선했습니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에서 글감을 캐치하고 생각으로 이어지게끔 하는 능력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서 부러웠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도 여러 생각을 할 수 있게 돼서 정말 좋았어요. 여러 고민들과 생각들이 그대로 글에서도 묻어나왔고, 그를 통해 독자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게 가장 매력적인 글 같다고 생각됐어요! 글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와 힘이 정말 좋아서 지금도 충분히 멋진 글이지만 조금만 더 쉽게 쓰면 메시지가 더 잘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글 잘 읽구 갑니다! 감사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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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hio
    • 안녕하세요 에디터 정수진입니다! 지은님의 글의 구성이 색다르다고 느꼈어요! 개인적으로 담고 있는 생각들을 여러 가지 글 재료들을 통해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한 소주제를 적어 지은님께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문단마다 딱! 정리되어 있는 거 같았습니다. 먼저 글을 포괄하는 의미 담은 소주제를 보면서 문단을 한 번 더 곱씹어보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은님의 톡톡 튀는 생각들이 글의 개성을 더한 것 같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복잡한 생각들을 한 번에 담으려다가 내용 전달이 오히려 조금 덜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을 모두 적고 싶은 마음을 깊이 공감하지만 좀 더 글의 재료들을 다듬어주시면 이해도가 높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특색 있는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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