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추격자를 쫓아오는 것은, 영화 < 추격자 > [영화]

글 입력 2018.02.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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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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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에겐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대표적인 '한국형 사이코패스 영화', 나홍진 감독의 시작, 하정우의 포텐이 터지는 영화 <추격자>. 나 역시 영화를 찾은 이유는 같다. 그러나 좀 더 무서웠던 건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나와 매우 가까운 곳에서 살고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신촌에서 일어난 11건의 살인, 시체를 유기한 서강대 뒷산, 신촌 근처의 야산은 너무나 가까운 곳이었다. 신촌은 뻔질나게 가족, 친구들과 돌아다니는 곳이었다. 서강대는 엄마와 운동장을 돌러가는 곳이다. 영화를 보다가 무서움에 잠시 멈추고 엄마에게 물었다. 그런데 유영철 말이야, 어디 살았다 그랬지? 왜 그 신촌에 이제는 없어진 상가 그쪽이라던데. 근데 시체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너무 많으니까 토막내지 않았을까. 그럼 그걸 어떻게 들고 서강대 뒷산에 묻었을까? 토막냈으니까 가방에 넣어가지고 갔겠지. 누가 가방을 뒤지진 않을거 아냐. 그런가. 나에게는 너무나 포근하고 따뜻한 나의 동네, 큰 틀에서 나의 이웃들. 소리 없이 사람이 죽어나가고 토막내어 버리는 사람이 있고 토막난 몸뚱어리들이 묻어져 있는 동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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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격자를 처음 봤을 때는 연쇄살인범 지영민이 보였다. 살인을 했다고 말을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고 알아서 내보내 줄만큼 순진한 말투, 그리고 탈출한 미진의 피를 뒤집어쓰고 웃으며 죽이는 모습. 두번째 봤을 때는 미진이 보였다. 딸에서 돌아가겠다고 온몸을 비틀며 망치를 피하고, 밧줄을 풀고 집을 벗어난 표정. 그리고 다시 본 추격자에서는 중호가 보였다. 전직 형사이자 현 출장 안마소 사장 중호. 중호는 하룻밤동안 미친놈처럼 뛰어다녔다. 그러나 이번에 영화를 볼 때 그가 추격하는 것은 범인인 지영민보다 미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범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영민의 번복되는 발언이나 경찰의 수사방향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여긴 아니야. 그놈은 아니야. 미진이가 없잖아. 미진이가 있던 곳은 이 근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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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같은 추격은 결국은 중호가 찾는 미진이를 찾는 행운을 주지 않았다. 4885 너지, 하면서 경찰에 데려다 주었는데도, 미진이가 있는 곳 근처를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도, 경찰이 하지 않은 지영민의 가족, 주소지, 다른 출장안마소 직원의 실종까지 혼자서 수많은 사람의 일을 대신했는데도. 그런데도 그는 많은 것을 놓쳐버렸다. 주소지에 숨은 망원교회, 결정적으로는 혼자서 탈출한 미진이의 전화를. 미진이는 살 수 있었지만 늘 중호를 제외하고는 모두의 관심 밖이었다. 근본적으로 그녀를 포함해 20여명을 살해한 지영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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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너무나 선량해서, 눈치가 없어서 미진을 죽음에 이르게 한 야속한 악역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개미슈퍼 아주머니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다정도 병이라고. 개미슈퍼 아주머니는 오지랖이 병이다. 오지랖이 하해와 같아 할말과 안할말을 가리지 않고 설마 이 총각일지는 모르고 진실을 탈탈 털어버렸다. 어느 정도냐면 지영민이 수많은 사람을 죽였을 때도 안나오던 탄식이 개미슈퍼 아주머니의 저 한 마디에 절로 흘러나올 지경. 그 아가씨가 여기 있다니까. 총각이 경찰 올 때까지 지켜줘. 그러고 서 있으니까 엄청 든든하다. 응, 망치 있지.

 미진은 아마도 정말 죽어야 하는 운명 같은 건 아닐까. 너무나 가혹하다. 경우의 수 중에 하나라도 어긋났으면 좋겠다. 아주머니가 말수가 없으셨으면. 방에 숨겨줬으면 그냥 잠자코 말을 말지. 경찰이 안오면 119에 신고를 해주든가. 아니 차라리 가게 문을 걸어잠궈두거나. 두려움이 많으셔서 남자가 지켜준다고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망치나 장도리 따위는 없다고 말했다면. 그녀가 사람을 쉽게 믿지 않고 의심이 많았더라면. 괜히 엄청난 개인주의자여서 미진을 차라리 매정하게 내쫓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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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미슈퍼아주머니. 슈퍼 이름처럼 지나치게 여러모로 성실해서 탈이다. 직접 살인무기인 망치까지 꺼내주고 나서 그녀는 영민의 희생양이 된다. 경찰소를 갔다 나오면 두부를 먹어도 시원찮을 판에 나오자 마자 피로 샤워를 하다니. 그녀는 다 된 밥에 짠 소금과 식초를 콸콸 들이부은 셈. 자신과 미진의 인생의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다. 지영민은 개미슈퍼아주머니는 몸풀기에 불과했다는 듯 평소보다 더 강렬하게 신이 나서 미진을 살해했다. 어떻게 벗어났냐며 묻는 그는 다시 그의 앞에 있는 그녀를 보며 킬킬거린다. 미진이 그렇게 힘들게 벗어났던 영민의 손아귀에 다시 사로잡히는 순간은 가슴이 무너진다. 그러나 그는 그러고도 잡히지 않았다. 아주머니를 죽인 건 그게 영민에겐 좀 더 간편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죽이는 게 뒷탈이 없기 때문. 다시는 미진이 같은 경우가 없도록. 미진은 그에겐 인상깊은 케이스일 것이다. 그의 집 수조에는 전리품인 양 미진의 머리와 손목이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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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량한 개미슈퍼 아주머니를 악한 역할이라고 해석하는 건 무심코 던진 말과 행동의 나비효과가 생각보다 빨리 되돌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녀는 '착한 사마리아인'이다. 살인당할 뻔한 미진과 엮이면 곤란해질 줄 알면서도 그녀를 방 안에 들여 구해준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에서는 곤경에 처한 타인을 구하지 않으면 법으로 처벌한다던데, 그녀는 법의 처벌은 피했을지 몰라도 삶이 끝나는 비극에 처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나 나도, 그녀도 억울하게 중얼거릴 것이다. 안다. 그녀만을 탓할 수는 없음에도 아주머니에 대한 야속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을 뿐이다. 마음 같아선 개미슈퍼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엑스트라가 되고 싶다. 그녀의 또다른 손님이 되어 어떻게해서든 말을 돌리고 싶다. 그녀는 어차피 그 말을 할 게 분명하다. 머리가 오늘따라 예쁘시네요, 피부도 여전히 좋으시고. 날씨가 더운데 잘 지내시죠. 저 이 동네 사는 누구네 딸내미요. 아주머니가 즐겨보실만한 주말드라마나 막장드라마라도 이야기하면서. 그거 보셨어요? 아주머니, 지금 얼른 채널 돌려서 재방송보세요. 출생의 비밀이 밝혀졌다니까요. 지영민이 그 가게에서 담배만 사서 나가도록.

 그러나 어차피 인명은 재천이라 했던가. 아다리가 맞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신고받은 경찰은 한가로이 낮잠을 위해 자다가 한참 지나 미진의 생사가 갈린 후 도착했고, 형사는 모든 정황을 뒤따라 왔으면서도 차마 들어가지 못했다. 그녀가 여자라서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형사였더라도 아마 공포에 질렸을 것이다. 그녀가 윤석에게 형사가 전화했다면 그는 적절한 맞수가 되었으리라.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영민을 내버려둔 사람들 역시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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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영민은 적어도 한 가지는 틀렸다. 딸이 있다고 살려달라지는 미진에게 답이 정해진 양 어차피 네가 사라져도 사람들은 찾지 않을거라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를 있는 힘을 다해 찾아다녔다. 비록 그것이 경찰도 형사도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쓰레기라고 저장된 중호는 그녀를 너무나 찾고 싶어했다. 아파서 쉬고 싶다는 그녀를 굳이 영민에게 보내버린 죄책감인가. 그 옆에서 혼자 엉엉 울고 있는 그녀의 딸 때문인가. 분명 그렇게까지 그는 미진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얼마나 부패한 형사였는지는 모르지만 그에게는 형사의 감촉이 짙게 살아있다. 그렇게 열성을 다해서 밤거리를 달리고 단서를 찾고, 용의자를 때려댄다. 한때 형사라고 모두 하는 일이 아니다. 범인을 잡는 것보다 피해자가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게 그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딸에게 아무 말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영민을 당장이라도 죽일 것 같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걸 다했는데도, 쉬지 않고 러닝타임을 달려온 추격자의 마지막 장면은 따뜻하면서도 쓸쓸하다. 오늘 밤 미진의 딸아이의 작고 따뜻한 손을 쥐고 욱신거리는 몸을 누이지만  내일 아침 아이의 물음에 또다시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엄마 어딨어요? 이제는 더 이상 추격할 사람은 없는데 이번엔 그가 추격당할 것이다. 남아있는 아이의 질문에, 혼자 남은 아이의 삶이라는 긴 추격에.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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