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그대 이름이 아닌 내 이름 : 연극 < 5필리어 >

글 입력 2018.02.13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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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Frailty, your name is woman)." 아버지를 죽인 삼촌, 삼촌과 결혼한 어머니, 문제적인 상황에서 햄릿은 저렇게 탄식한다. 햄릿의 고뇌를 위해 셰익스피어가 쓴 한 문장은 400여 년이 지난 지금, 아포리즘의 대표적인 예시로 소개되고 있다.



13.jpg
오필리아
©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 런던 테이트 갤러리,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한편, “오필리아 없는 햄릿 이야기는 상상할 수 있지만, 햄릿 없이는 오필리아 이야기가 없다”(리 에드워즈)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기존 셰익스피어 비평에서 오필리아는 주변인이자 종속물이었다. 텍스트 속 취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필리아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다른 인물의 진술로 형상화되고, 하물며 오필리아가 죽기 전 불렀다던 옛 찬가조차 들을 수 없다. 목소리를 잃은 오필리아는 삽화로, 이미지로 박제되어 있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1852)가 대표적인데, 수많은 예술가는 오필리아를 뮤즈이자 비너스로 여겼고, 그녀의 비극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오필리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셰익스피어 고쳐 쓰기


일차원적으로 해석되던 오필리아는 페미니즘 비평 속에서 재해석되었다. 오필리아는 하나의 문제적 인물로서 비평되었고, 가부장제 권력이 오필리아를 비극으로 이끈 작용인이라고 분석되었다. 더욱이, 셰익스피어 작품 전반에 깔린 여성 혐오 역시 비판받았으며, 일상생활 속에서도 '아포리즘'은 전복되고 미끄러져, 유효하지 않은 언어로 간주되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다. 셰익스피어가 2018년의 작가였다면 어땠을까?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는 대사는 안 쓰지 않았을까? 어쩌면, 오필리아 이야기를 풍부한 연극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2018년의 셰익스피어는 거장으로 추앙받지 못할 것이다. 확신한다. 동시대의 목소리와 고민을 무시한 작품이, 어떻게 수작이 되고 걸작이 되겠는가. 이는 고전을 재해석해 무대에 올리는 현재의 창작진에게도 해당된다. 시대성을 반영한 ‘다시 쓰기’를 하지 않고, 고전의 힘만을 맹신한다면, 낡은 거울에 관객은 침을 뱉으리라.

대학로의 저명한 작가 지이선은 연극 <햄릿 더 플레이>에서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는 공고한 대사를 해체하고,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사람”이라 고쳐 썼다. 또한, 거트루드와 오필리아를 더욱 풍부한 인물로 다시 쓰며, 영리한 고전의 현대화를 꾀했다. ‘연극은 시대의 거울이다’라는 명제는 이와 같은 감각에서 비롯한다.



고전극장포스터.jpg
 


시놉시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중간지대,
죽었던 오필리어가 차례로 깨어난다.
다섯 오필리어들은 서로를 처음 보지만,
단번에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아본다.

다섯 오필리어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미처 못다한 말과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있어 보인다.

언뜻 미쳐 보이지만
각각의 오필리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생각할 수 있도록.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모든 억압과 폭력의 흔적들을
정화하는 의식을 치른다.

의식을 마친 오필리어들은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무언가’를 주고
사라져 돌아간다.

    


오늘에 위치한<5필리어>


연극 <5필리어>가 보여줄 다섯 오필리아의 삶은 캐릭터 ‘오필리아’의 역사성을 닮았다. 햄릿을 위한 캐릭터시스템에 종속되었던 오필리아, 예술가의 뮤즈이자 비너스로 박제되었던 오필리아, 그 오필리아가 다섯 오필리아가 되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말해지지 않은 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많은 여성들은 목소리를 입고, 오필리아로 분한다.


5필리어 출연.jpg
 

오필리아들은 '내 이름'을 가지게 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은 '내 이름'을 갖는 것이다. 누군가가 호명하며 붙여주는 '그대의 이름'이 아니라, 누군가가 불러주어서 꽃이 되는 이름이 아니라, 내가 정의하고 내가 말하는 '내 이름' 말이다. 스스로가 그리고 세상이 생각할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다섯 오필리아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자신을 말할 것이다. 연극 <5필리어>는 '약한 자'라는 호명과 '여자'라는 이름 속에 박제되었던 다수의 오필리아가 제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2018년 <5필리어>는 오늘에 위치해 있다. 한국 공연 시스템 속에서 억압되어왔던, 여성 예술인들의 피해 사실이 공연계 ‘미투 운동’이 되어, 실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오늘이다. 또한,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케이스의 문구만으로 한 여자 아이돌이 뭇 남성들의 비난을 받았던 오늘이다. 억압된 목소리들, 박제된 목소리들, 죽음조차 남의 입으로 전해졌던 목소리들, 셰익스피어의 오필리아를 해체한 자리엔 그 목소리가 담겨, 메아리처럼 널리 울려 퍼지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한다.

 
  
공연정보


INTRODUCTION

기  간
2018.02.21.(수)~03.04(일)

시  간
평일8PM / 주말 3PM

장  소
소극장 산울림

티켓가격
전석 3만원
50% 할인 – 매 작품당 1, 2회 프리뷰 할인, 경로, 장애, 국가유공자
20% 할인 – 조기예매, 마포구 거주자, 산울림 티켓소지자
30% 할인 – 학생, 공연예술인

예매문의
인터파크 1544-1555
소극장 산울림 02-334-5915

주최/주관
극단/소극장 산울림, 아트판



CREATIVE STAFFS


원작
셰익스피어 <햄릿>, 공동재창작

연출 김준삼

제작 블루바이씨클프러덕션

출연
신진경, 윤이나, 최영신
최배영, 고다윤, 박진원

드라마투르그 이은지

조연출 류예슬, 손채민

무대디자인 양정우

조명디자인 이윤재

음악, 음향디자인 이다은

안무 박진원

영상디자인 도윤희

의상디자인 이지원


웹전단.jpg



문화리뷰단 김나윤.jpg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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