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파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문학]

글 입력 2018.02.1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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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프랑수아 밀레 - 만종, 1857-59



아파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5년 만에 만난 친구는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바로 옆 동네로 이사와 놓고는 5년 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이유를 털어놨다. 나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는 대신, 소주에 담아 목구멍 깊숙한 곳으로 털어 넣었다. 사실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연애할 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텐데, 살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이 친구의 경우는 그것과는 다르지만, 나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이해의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1년 후, 친구는 수년에 걸쳐 이어온 치료를 마쳤다. 치료 다 했으니 햄버거나 하나 사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상하이 스파이스 치킨버거를 먹으면서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 씻고 다니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요즘에는 옷이 너무 비싸다는 이야기까지 별의별 이야기를 다 했다.

그러다 문득 치료 끝나니까 기분이 어떤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친구가 말했다. “마음의 상처는 피부에 나는 상처와 달라서 사람마다 치료 속도도 방법도 달라. 그리고 환자가 상처를 치료하고 싶은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서도 달라. 나는 내 상처를 치료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어. 사실 지금도 치료가 끝난다는 사실이 기쁘지만은 않아. 하지만 그때와 다르게 나이를 먹은 내 어깨에는 무게가 많아. 그래서 치료를 마치기로 했어.”

친구가 이어서 말했다. “세상에는 아픈 일이 많아. 어쩌면 나에게 찾아온 아픔도 세상에 수많은 아픔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몰라. 중요한 건 그 아픔을 어떻게 아파하는지에 대한 거야. 마음이 아픈 건 참으면 넘어가는 게 아니라 쌓이게 돼. 이제는 알아. 아파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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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그들은 우연한, 어쩌면 필연적인 운명으로 여름 캠프에서 만났다. 처음 만났지만 신기하게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정을 만들어간다. 시간이 지나고 쓰쿠루에게 친구들은 인생의 전부이자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다자키 쓰쿠루’의 인생에 자랑할만한 우정이 생긴 것이다.

그 구성원들은 쓰쿠루만 제외하고 이름에 색(色)이 들어간다.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색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쓰쿠루는 이름에 색이 없었다. 쓰쿠루는 쓰쿠루였다. 쓰쿠루는 이름에 대해 약간의 상실감이나 거리감을 느끼긴 했지만, 결코 그들의 우정이나 살아가는데 있어 큰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다섯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됐다. 역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던 쓰쿠루는 도쿄로 가게 되고 나머지 구성원들은 나고야에 남는다. 완전히 떠나버린 것은 아니다. 쓰쿠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고야에 갔다. 다섯이 모이면 그들은 예전처럼 어울렸다. 쓰쿠루에게는 이것이 행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쓰쿠루는 딱 한 통의 전화로 그들의 그룹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유는 듣지도, 그렇기에 묻지도 않았다. 당장에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색채가 없는 쓰쿠루는 혼자가 되어 오랜 시간을 슬픔 속에서 지낸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무뎌졌지만 잊은 적은 없다. 하지만 슬프지 않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쓰쿠르는 끝나지 않을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직장 상사의 집들이 파티에서 사라라는 여자를 만난다. 처음에는 그냥 우연히 만난 관계였지만, 점차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 어느 날 쓰쿠루는 사라와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의 친구들 이야기를 한다. 그녀와 대화하면서 당시에는 몰랐지만,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커다란 상처가 있고 그 상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의 커다란 짐으로 남았다는 것을 느낀다. 사라는 쓰쿠루에게 용기 내어 친구들을 만나볼 것을 권한다. 그렇게 쓰쿠루는 곪아버린 상처를 드러내기 위한 순례를 시작한다.

올바른 숨막힘과 가슴 아픔은 쓰쿠루를 성숙하게 만든다.

쓰쿠루는 사실 예전부터 마음이 아팠다. 친구들중 유일하게 색채가 없어서 아팠고 대부분 할 줄 알았지만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없어서 아팠다. 혼자 도쿄로 가게 되어 아팠고 갑자기 절교 통보를 받아 아팠다. 그렇게 아파하고 있으면서도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것이 사랑하는 친구들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친구를 만나고 지난날의 상처를 헤집기 시작하면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다. 사람은 바깥보다 안에서부터 무너지기 쉬운 법이다. 게다가 급할 때면 올바른 판단보다 당장 필요한 판단을 하기 마련이다. 쓰쿠루를 제외한 넷은 쓰쿠루를 내쫓음으로써 결국에는 무너졌고, 절교 통보를 받은 쓰쿠루 역시 자신이 희생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우정을 무너뜨렸다. 결론적으로 다섯의 우정은 지키기 위해 지켜지지 못했다. 그렇게 쓰쿠루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질러진 방 안을 정리하듯 하나씩 서로의 오해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순례의 마지막, 사건의 전말은 모두 시로라는 ‘흰색’에 있었으나, 이미 사라지고 없어 끝내 밝혀지지 못한다. 하지만 쓰쿠루에게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우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과 오해가 풀렸다는 것 만으로도 쓰쿠루는 이미 자신의 아픔을 이겨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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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 귀를 자른 자화상, 1889



우리 아파하면서 살자

관계와 관계, 상실과 상실이 빚어내는 모순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물론 우리네의 삶은 쓰쿠루의 인생보다 더 많은 관계와 상실 속에서 얼룩지고 부서지며 끊임없이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어낸다. 당연히 아픔도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처는 올바르게 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 아픔이 너무나도 커 견디기 힘들 수도 있지만 길지 않을 것이다. 너무 아파 견딜 힘조차 없는 그때 비로소 아픔은 아물기 시작한다. 마음은 그렇게 단단해진다. 우리 아파하면서 살자.


[공정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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