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만남과 헤어짐에 관하여_의자, 눈동자, 눈먼 예언자 [공연]

글 입력 2018.02.1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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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아트센터_두산아트랩 2018_포스터.jpg


   
Prologue.

 
신이 세상을 만들 때 그것은 하나의 덩어리였다. 세상이 나뉘며 시간과 공간, 방향성과 움직임이 생겨났다. 사람도 그렇다. 등이 붙어있던 네 팔, 네 눈동자, 네 다리의 인간은 오만함에 대한 벌로 둘이 되었다. 그들 사이엔 세상이 나뉘었을 때와 같이 시공간에 따른 움직임과 방향성이 생겨났다. 서로에게 닿기 위해, 그들은 이제 여기에서 여기로 이동하게 되었다. 한 휠체어, 두 휠체어만큼의 거리로.
-극 중에서
 



0. 극의 구성

 
극은 두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사람이 만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사람이 떠나는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되었다. 극이 전개되는 동안 두 이야기의 관계를 이해하고 좇으려 했지만 곧 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만나고 헤어진다는 서사성을 발견하지 않고 극을 감상하더라도 관객에게 주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1. 사람이 만난다는 것-창조 신화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태초의 인간은 사방을 볼 수 있는 온전한 하나였지만 둘이 되고부터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인지하고 다가가기 위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이동하려는 욕구가 생겨났다. 물리적으로 둘은 만났지만,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 실존하는지 확인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인간은 서로의 몸과 마음이 만나게 하기 위해 여기에서 저기로 계속 위치를 옮겼다. 그러나 실패를 거듭하여 움직임과 관계없이 저기로 가지 못하고 여기에 남게 되었다. 이제는 과거에 비해 더욱 다양한 방법과 경로로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역시나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지금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2. 삶과 죽음의 경계-제주 신화

 
영감과 할머니가 제주도에서 전해오는 신화의 내용에 따라 혼을 맞이하는 것으로 막이 올랐다. 둘은 바닥을 닦고 쌀을 뿌리고 먼지를 털며 혼의 만남과 헤어짐을 정성스레 준비한다. 제주도 바닷가 근처를 암시하는 소리를 배경으로, 속속 도착하는 혼들은 강림차사의 인도를 받으며 마침내 이승을 떠난다. 작가의 말에서 이것이 세월호 사건을 조심스레 염두에 두었던 연출이었음을 듣자, 무대 위 삶과 죽음의 경계가 더욱 아득하게 느껴졌다. 실재하지 않지만 경계를 넘어 저승길을 걸어갈 혼에 왠지 모를 측은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만나는 것만큼 헤어짐과 보내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0201 의자, 눈동자, 눈먼 예언자 무대 사진.jpg
 
   

3. 바다, 파도, 바람-설치미술

 
극의 제작이 丙소사이어티와 김한결 작가의 콜라보로 진행된 만큼, 소리가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았다. 막이 전환될 때마다 파도 소리를 내는 기계와 바람소리를 내는 기계는 극을 위해 새롭게 작업되어 장면과의 어울림을 극대화하였다. 목재로 제작된 작품이 마찰을 통해 내던 소리는 생생하고 잔잔하게 극의 배경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작품이 미술관에 머무르지 않고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을 보는 것이 흥미로운 경험으로 남았다.

   

나는 늘 여기에

 
아무도 누구를 만나고 헤어질 지 알 수 없다. 눈먼 예언자는 그런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것 같다. 어려운 도착과 떠남이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 어떻게 이루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 그 답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는 눈먼 예언자가 되고 만다. 의미 없는 예측과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맞는 시간 속에서 나는 늘 여기에서 여기로 이동할 뿐이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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