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녕, 나의 유럽! - 1 [여행]

글 입력 2018.02.11 22:5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아직도 나는, 마치 길고 행복한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다. 문득 영화 ‘달콤한 인생’ 에서의 대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분명 이루어진 것이 맞나, 싶은 길고 달콤한 꿈.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도 꽤 되었건만, 한 달 동안 동유럽을 누비던 나는 아직 분명 여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듯 싶다.

 사실 이번 여행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 꿈의 도시였던 프라하였다. 힘들었던 수험 생활 동안 매번 나를 다잡게 해 준 사진이 한 장 있었는데, 그게 바로 까를교에서 바라본 프라하 성의 해 질 무렵 풍경이었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보게 된 사진 속 프라하는 흔들렸던 나에게 알 수 없는 위안을 주었고, 그렇게 프라하는 자연스럽게 내게로 와서 ‘꿈의 도시’가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꼭 프라하에 가겠다는, 잔뜩 희망 섞인 나의 다짐 덕분이었을까. 결국 나의 수험 생활은 다행히도 나름 잘 마무리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와 시간, 돈 같은 것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몇 년 후인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나는, 마침내 꿈의 도시에 가 닿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비록 프라하에서 모든 시간을 머무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혼자 머릿속에서 그리고 TV로나마 느꼈던 그 모든 풍경 속에서 며칠을 지낸다는 설렘은 여행 한 달쯤 전부터 나를 가슴 뛰게 했다.


크기변환_P20171226_190257460_8AB18A1D-A2A0-4AA1-98C0-A71D4E6A74B9.JPG
 

 긴 비행과 이동의 연속 끝에, 드디어 내가 프라하와 마주하게 된 것은 독일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난 다음날이었다. 동유럽에 도착한 이후로 매일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가 이어졌는데, 프라하로 향하는 날은 놀랍게도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밝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덕분에 기분 좋은 예감이 드는 것은 당연했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페퍼톤스의 ‘행운을 빌어요’도 꺼내 들어보며 가벼운 마음을 한껏 챙겨 담다 보니 어느 새 프라하에 도착해 있었다.


크기변환_P20171229_061024019_B6516610-D672-4279-9267-6CAD500079FF.JPG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해가 바뀌기 전의 마지막 날까지 프라하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현재진행 중이었다. 앞서 독일에서 마주했던 것만큼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시내 곳곳에 보다 현대적인 느낌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체코의 전통 간식인 굴뚝빵 ‘뜨레들로’ 였다. 원통의 봉에 밀가루 반죽을 둘러 화로에 구운 뒤 설탕을 묻혀서 파는 뜨레들로는 마치 우리나라의 꽈배기를 연상시킨다. 빵 속이 텅 비어있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이나 잼, 초콜릿 등을 넣어서 먹을 수도 있다. 시내 곳곳, 그리고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뜨레들로를 발견할 수 있는 데다가 낯설지 않은 맛이어서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뜨레들로를 먹었다. 물론 추운 날씨에 언 몸을 녹이고 싶을 때에는 뱅쇼 한 잔을 곁들이는 것도 빼놓지 않고 말이다.


P20171227_232617882_0BB24DAE-C62D-46CC-B642-412BABFC4DFB.JPG
 

 크리스마스 마켓 이외에도 프라하는 보고 즐길만한 것들이 많은 곳이다. 생각보다 큰 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동하기도 편했고, 대표적인 유럽의 관광 도시 중 한 곳답게 거리 곳곳에서 이색적인 버스킹 공연도 매우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트램을 타고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동유럽 특유의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구 시가지에서 볼타바 강을 건너 스트라호프 수도원이 있는 언덕으로 향하는 트램을 타는 것을 추천한다. 스트라호프 수도원의 맥주를 맛보기 위해서 트램을 타고 가는 길에 처음으로 내 꿈의 풍경이었던 프라하 성의 모습과 마주했었는데, 아직도 그 처음의 떨림은 생생하기만 하다.

 처음 프라하에 도착한 날 이후로, 그렇게 나는 프라하 성의 그 풍경을 이 곳 저 곳에서 보고, 또 보았다. 꿈을 이룬다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인 걸까,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보고 또 보아도 전혀 질리지가 않았다. 성에 올라서 프라하의 시가지를 한 눈에 담기도 하고,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볼타바 강가를 걷기도 했고, 까를교 보다는 상대적으로 한적한 레기 다리를 건너며 풍경을 담기도 했다.


크기변환_P20171228_021709884_F4F19FA9-94D6-40C9-8C79-0362E95CBFE3.JPG
 

 그리고 프라하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마침내 까를교에서 바라본 프라하 성의 해 질 무렵을 눈에 담는 내 오랜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프라하를 여행 온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 풍경은 한번쯤 꼭 봐야 할 필수 코스 같은 풍경인 탓에 해가 지기 시작하는 오후 4시 무렵 즈음부터 까를교로 가는 길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인파가 까를교 초입 근처의 길목에 들어섰을 즈음부터는 더욱 많아져 줄을 서서 길을 가야 할 정도였다. 평소에 사람이 많은 곳이나 줄을 서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그 순간 만큼은 하나도 귀찮지 않고 모든 것이 설레기만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천천히 나는 까를교와 가까워졌고 해는 점점 기울어 가고 있었다.


크기변환_P20171229_010820033_55514C3F-2956-459C-B646-4AF50DF9EFE5.JPG
 

 이윽고 그 오랜 기다림 끝에 내가 까를교의 다리 위에 섰을 때, 조금은 쑥스러운 고백일 수도 있을 테지만 왈칵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내가 수없이 그렸던 그 시간, 그 공간의 풍경이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건 곧, 같지만 다른 시간들을 마주하는 일과 같았다. 매일같이 상상하고 꿈꿔오던 늘 같은 시간들, 그러나 곧 이젠 나에게 꿈이 아닌 현실, 그리고 곧 경험과 추억으로 남게 될 다른 시간을 함께 마주하는 것 말이다. 그렇게 나는 멍하니 서서, 한참이나 프라하의 일몰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장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그리움을 덜 수 있도록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러는 동안 어김없이 밤은 찾아왔고, 나의 프라하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크기변환_P20171229_060342522_282C0CF4-FB71-4DFA-BB3F-10EDE9E38B35.JPG
 

 그리고 그 여행이 끝나고 프라하를 떠나는 길에 올랐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마음 속에 ‘꿈의 도시’를 하나쯤 간직하면서 살아간다는 일은 생각보다 꽤나 멋진 일이었다는 것을. 긴 시간을 기다려 마침내 그 곳에 가 닿는 기적 아닌 기적 같은 일을 경험했을 때, 다른 여행자들보다도 더 사랑스러운 눈으로 모든 풍경들에 감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프라하는 이제 먼 미래의 꿈이 아니라, 행복했던 꿈과 같은 과거의 추억으로 남았지만 여태껏 그랬듯, 앞으로도 나에게는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도시로 남을 것이다. 오늘도 예쁘게 빛나고 있을 나의 도시에게 인사를 건넨다. 언젠가 다시 만나, 도브리 덴, 프라하!







태그.jpg
 

[김현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