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이타닉과 세 개의 시간 : 뮤지컬 < 타이타닉 >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2.11 00:2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사상 최대의 해양 참사로 알려진 ‘타이타닉호의 침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를 소재로 <타이타닉>(1997)이라는 영화를 제작했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래서 ‘타이타닉’이라고 했을 때, 많은 대중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로즈(케이트 윈슬렛)의 선상 키스신, 그리고 그 위를 덮는 셀린 디온의 목소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일까? 동명의 뮤지컬에 대한 관객의 관심사는 ‘잭은 누구야?’, ‘로즈는 누구래?’, ‘my heart will go on은 나온대?’로 시작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잭도, 로즈도, my heart will go on도 없다. 그 대신 세 개의 시간이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위해 흐른다.


크기변환_TTN 포스터_02.jpg 
 

 
타이타닉과 세 개의 시간

 
뮤지컬 <타이타닉>의 서사는 세 개의 시간으로 흘러간다. 플롯 상으론, 달려가는 1막, 침몰하는 2막으로 구분되는데, 큰 두 개의 서사는 다시 세 개의 시간으로 나뉜다. 15분 정도의 출항 오프닝은 여타 뮤지컬과 비교해도 긴 오프닝으로, 출항의 두근거림을 관객과 공유한다. 삼등실 승객부터 일등실 승객, 선장과 설계사와 선박회사 회장, 타이타닉호의 직원들까지, 모든 인물들은 ‘꿈을 찾아’, 타이타닉호에 탑승한다.

출항 후부터 충돌 직전까지의 시간은 느리고 산발적이다. 선박회사 회장의 재촉으로 타이타닉호의 속력은 빨라지지만, 수많은 인물들의 서사는 느릿한 속도로 이어진다. 2주 뒤 연인에게 돌아갈 화부 바렛,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연인과 미국으로 도망치는 캐롤라인, 타이타닉호로 마지막 항해를 장식하는 선장 등,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저 나열된다. 멀티롤로 소화하는 인물들은 제각기 꿈을 가지고 승선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켜켜이 쌓이지 않고, 서로 엮어지지도 않은 채, 독립적으로 흩어진다.

 
크기변환_TITANIC_dress1_0117-2.jpg
 

달려가던 배는 빙산에 부딪히며 제동을 맞는다. 배가 멈춘 후 서사의 시간은 빠르고 급박하다. 1막에서 여기저기 펼쳐놓았던 인간 군상의 이야기는 탈출 서사로 봉합되고, 각자의 못다 한 사랑과 이별이 노래된다. 급박한 서사의 시간은 루즈했던 1막을 커버하며 관객의 집중을 이끈다. 90분의 타임리밋 속, 탈출하고자 애를 쓰고, "내일 만나리"라며 작별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의 모습에, 어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나 곧, 여자와 아이들, 일등실 승객들이 탈출하고, 침몰이 빨라지며 죽음의 타이머가 남은 사람들을 옥죄어오는 가운데 서사의 시간은 다시 느려진다. 웨이터는 샴페인을 권하고, 노부부는 사랑을 노래하고, 남은 남자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고요하고 느릿한 적막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은 급작스럽고 담담하다. 설계사의 후회가 끝나면, 무대 높은 곳에선 물에 빠진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릿하게 보여지고, 그들을 바라보는 생존자의 담담한 목소리로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결말 지어진다.

 
크기변환_TITANIC_dress2_2528-2.jpg


배의 속도와 반비례하는 서사의 시간은, 기승전결의 속도와는 상이하다. 느릿한가 하면 다시 빨라지고, 좀 빨라지려나 하면 다시 느릿해지는 구성에서, 감정적인 전달은 거부하겠다! 신파는 버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한 명의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의도일 것이다. 작품은 각 인물들의 서사에 감정적 거리를 유지하며, 관객의 이입마저 막는다. 그리고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채, 침몰 그 자체를 바라보길 바란다. 모험적일지라도, 소재를 자극적이지 않게 풀어내겠다는 태도. 그게 <타이타닉>의 시간이자 움직임이다.
 
 
 
목적지 없는 항해, 침몰을 향해 달려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 개의 시간으로 만들어진 항해가 성공적이라 말하긴 어렵다. 타이타닉의 침몰 속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들은 소재를 다루는 조심스러운 손길에 옅어졌다. 분명 타이타닉에는 계급과 사랑과 갈등이 산재해있음에도, 모든 이야기는 침몰로 귀결된다. 일등실 공간 때문에 구명보트를 줄였다는 설계사의 대사와 엄격한 일등실, 이등실, 삼등실의 구분으로 보아, <타이타닉>엔 계급이란 코드가 명백히 깔려있다. 인간이 만든 꿈의 대륙 타이타닉에도 계급의 차별은 존재한다. 탈출 서사를 계급적으로 읽어낼 때, 영화 <설국열차>가 계급의 뒤에서 앞으로 밀고 나가는 수평선의 서사라면, 뮤지컬 <타이타닉>은 밑에서 위로 생존을 향해 움직이는 수직선의 서사다.


크기변환_TITANIC_dress2_2489-2.jpg
 

그러나 인간이 만든 신대륙 타이타닉과 그 속의 욕망은 그저 제 자리에 머물러 침몰만을 기다린다. 갈등은 선장, 설계사, 선박회사 회장에게서 짧게 나타날 뿐, 승객들의 욕망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제각기 움직인다. 인물의 욕망은 전형적이고 단순한 수준으로 나열되고, 그 속에 갈등마저 없으니 서사적 재미는 찾기 힘들다. 거기다 느릿하게 흐르는 서사의 시간마저 가세하여 1막은 지루할 수밖에 없다. 2막도 빠른 속도로 흐르는 탈출 시퀀스로 잠깐의 긴장과 흥미가 솟을 뿐이지, 서사적인 재미는 없다. 느릿해지는 세 번째 시간으로 진입하면 다시 지루함이 솟구치는데, 약간의 흥미가 어디서 솟았는지는 그래서 분명해진다.

 
크기변환_TITANIC_dress2_2362-2.jpg


뮤지컬 <타이타닉>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출항 오프닝(오프닝)과 배에 부딪히기 직전(노 문), 탈출 씬(내일 만나리) 정도다. 20여명의 목소리가 켜켜이 쌓이며, 꿈과 비극을 노래하는 장면이 작품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 된다. 단번에 박히는 멜로디는 없지만, 플루트, 하프 등의 다채로운 소리는 울림 있는 넘버를 만든다. 특히 보초 플릿의 미성이 끌고 나가는 '노 문'은 지루했던 첫 시간과 급박해지는 두 번째 시간을 비극적인 정서로 이으며, 임팩트 있는 1막 엔딩을 만든다.

그러나 이 장면들의 힘은 침몰에 느끼는 애상에서 비롯된다. 잭과 로즈와 my heart will go on은 그래서 없다. 물리적으로 없다는 얘기면서, 그에 필적할 만한 장면 역시 없다는 소리다. 영화의 명장면은 욕망을 가진 캐릭터가 극적인 순간을 만나고, 그 위에 더없이 아름다운 배경음이 깔리며 관객의 뇌리에 남았다. 그러나 뮤지컬 <타이타닉>의 캐릭터는 힘이 없다. 개별 인물의 서사는 지루하고 힘없이 스쳐 지나가는 반면, 캐릭터성이 희석되는 승객 전체의 씬은 살아남는다. 인상적인 모든 씬은 침몰을 위해 존재하는 씬이며, 이미 아는 결말로 인해, 긴장감과 슬픔이 주조되는 씬이다. <타이타닉>이 견지하는 다큐적인 시선은 서사를 '침몰을 지켜보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실화 속에 함몰되는 캐릭터

 
개인에 따라선, 거리감을 유지하며, 침몰을 지켜보는 것 자체도 의미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피해자의 고통을 전시하고 늘 비슷한 수준으로 관객의 울음을 유발하는 한국 재난영화에 비해 <타이타닉>의 접근은 조심스럽다. 실화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 도덕적으로 바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사적 재미는 없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잭과 로즈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 삼아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이야기한 것은 장르적 재미 속에서, 비극적인 실화를 전달하기 위한 노련한 구성이었다. 멀리 가지 말고, 최근 영화로 이야기해도 좋다. 영화 <1987>이 민주화 운동에 사랑 이야기를, 서스펜스를 유연히 섞어냈던 것도 마찬가지. <1987>이 실화 속에 캐릭터를 적절히 녹여내며 많은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었던 것에 비해, 같은 떼주물인데도 뮤지컬 <타이타닉>의 캐릭터들은 실화 속에 함몰된다.


크기변환_TITANIC_dress2_2069-2.jpg
 

'메이드가 될 거야!', '선생님이 될 거야!', 꿈을 가진 인물들은 모두 사랑스러웠지만, 그래서 캐릭터만의 매력을 느끼긴 정말이지 힘들었다. 이 지나치게 거시적인 시선과 장르마저 소거한 구성 속에선 인간에 대한 메시지가 들리지 않는다. 침몰 그 자체를 재현하고 싶었다면 성공이라 말할 수 있겠으나, 이야기로서는 글쎄? 중요한 건 실화 속에는 인간이 있고, 이야기의 목표는 그 인간에 대한 관심과 접근에 있다는 것 아닐까? <타이타닉>은 세 개의 시간 속에서 침몰을 향해 달려갈 뿐. 보초 플릿의 애달픈 목소리만이 귓가에 생생하다.

“우리는 가네, 가네. 아득한 밤을 향해. 그저 가네, 가네, 몸을 맡긴 채”

  


■ 자료제공 : 오디컴퍼니




프레스 명함 업로드.jpg


[김나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