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소네트'와 책 '그건 혐오에요' [공연]

그 말이 누군갈 아프게 한다고 계속해서 말하겠습니다.
글 입력 2018.02.06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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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극 특성상 누군가에겐 산뜻하고 누군가에게는 뮤지컬이 떠오를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그냥 계속 말로 하면 되지 노래로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 모두 20대의 풋풋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기분 좋은 미소로 배우들의 열연을 감상했다. 친구와 투닥 거리기도 하고 좋아하는 이성에게 무작정 들이댄다. 그러다 거절당한 후 어쩔 줄을 몰라 마냥 기도할 수밖에 없던 모습들이, 인생의 봄날이라 불리는 청춘시기를 잘 우려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인공들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인연과 함께 날씨보다 더 뜨거운 시간들로 여름을 보냈다.

 주인공 미숙은 그 인연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남편이 떠난 후 아들과의 문제로 결국 서로에게 등을 돌려 힘겨운 가을을 보낸다. 그리고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면서, 절친 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존재를 부정하던 요정과 아들을 인정하며 재회를 하며 겨울도 끝이 난다. 마지막 부분에 개연성이 좀 부족하긴 했다. 풀어내기 어려울 거라 예상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가 그렇게도 반대하던 아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이 전혀 없이, 사실 이해하고 있었는데 용기가 없었다는 대사만으로 바로 진행되어버린 게 많이 아쉬웠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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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 중에서 주인공 미숙의 아들은 남자친구가 있다. 남편이 떠나고부터 종교에 의지하던 미숙은, 더욱 더 옆에 실재하는 아들의 성향을 부정하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사죄하자고 한다. 체감 상 절반 조금 안 되는 분량을 부정하는 동안 아들은 끊임없이 엄마인 미숙의 손을 놓지 않고 사랑한다는 걸 끊임없이 말하면서 합의점을 도출하려 한다. 아들이 얼마나 성숙한지, 진정 아가페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는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의 위대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세상에 의해 많이 다친 부모는 몰라도, 자식은 순수하게 그 부모의 존재자체만으로도 평생을 사랑하며 보내기 때문이다.

*

 놀랐던 점은 아들이 엄마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홍재희 저 책 ‘그건 혐오에요’를 참고한 게 들렸다. 평소에도 들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도 많았다. ‘왜 이성애자만 당연해야하나, 동성애자도 당연한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데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사랑하고 보니 동성이더라.’, ‘보이지도 않는 신이나 먼 주위 사람들 말고, 지금 바로 앞에 있고 엄마 아들인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면 안될까.’

 하지만 미숙은 “아니야!“라는 대답으로 일관한다. 어린 시절의 미숙도 똑같다. 상황과 선입견이라는 색안경에 숨어 희망과 해답을 부정하기 바쁘다. 가장 쉬운 방법이자 가장 습관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결과를 보고서는 또 반복이다.



소네트(Sonnet) 64 – 셰익스피어(Shakespeare) 출처

시간의 잔인한 손이 지난 세월 땅에 묻힌 자의
위용을 뽐내는 값진 기념비를 훼손하는 걸 볼 때
우뚝 솟은 탑이 완전히 허물어지고
영원하다던 황동도 인간의 분노에 굴복해 노예가 되는 것을 볼 때
굶주린 대양은 해변의 왕국을 집어삼키고
단단한 육지는 물이 들어찬 부분을 잠식하여
한 쪽이 얻으면 다른 쪽이 잃고
다른 쪽이 잃으면 한 쪽이 얻는 것을 볼 때
이렇게 일체가 무상하거나
일체 존재가 그 자체로 쇠락할 수밖에 없음을 볼 때
폐허 속에서 나는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
시간은 내게도 어김없이 찾아와 내 사랑하는 이를 데리고 가겠구나
잃을까 두려운 것을 가지고 있는 한
이 죽음 같은 깨달음 앞에서 그저 울 수밖에 없다

When I have seen by time’s fell hand defaced
The rich proud cost of outworn buried age;
When sometime lofty towers I see down-razed,
And brass eternal slave to mortal rage;
When I have seen the hungry ocean gain
Advantage on the kingdom of the shore,
And the firm soil win of the watery main,
Increasing store with loss, and loss with store;
When I have seen such interchange of state,
Or state itself confounded to decay,
Ruin hath taught me thus to ruminate,
That time will come and take my love away.
This thought is as a death, which cannot choose
But weep to have that which it fears to lose.


 흔히 일상 속에서 겪고 있는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는 아주 좋은 연극이다. 청춘의 불안함 속에서 피어나는 기쁨과 즐거움, 분노의 상황에도 느껴지는 애정. 이와 더불어 현 시대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해결책도 같이 제시한다. 혹여나 부정하기만 하던 미숙의 모습과 같은 방법을 택한 사람들이, 미숙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심리학에서 치료법으로 이용하는 거울 기법(보조자가 주인공의 역할을 대신하여 주인공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함) 등의 효과가 될 수도 있겠다.

 당신이 무심코 생각하고 말하는 그 ‘아니야’로 비롯되는 모든 것들이, 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것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한다. 이 모든 게 어렵고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면, 내가 얼마나 자주 ‘아니야!’를 외치고 있는지 돌아보자. 그리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고 있는지도.





산울림 고전극장 - 소네트
- 셰익스피어를 만나다 -


원작 : 셰익스피어 <소네트>

일자 : 2018.01.31(수) ~ 02.11(일)

시간
평일 8시
토, 일 3시
화요일 휴무
지연 관객 입장은 불가합니다.

장소 : 소극장 산울림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기획
극단 산울림

관람연령
만 12세이상

공연시간 : 90분

문의
극단 산울림
02-334-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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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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