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 소설 - '지나간 생각 분포도' [기타, 문학]

소설을 읽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글 입력 2018.02.06 23:0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지나간 생각 분포도'는
예전에 가졌던 개인적인 관심을 돌아보는
지극히 개인적인 글입니다.





 서고 정리를 위해 한동안 문을 닫았던 학교 도서관이 문을 연 날, 잔뜩 빌려두었던 책들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어떤 책을 새로 빌려 갈까 하다가 진짜 오랜만에 소설책을 빌려보기로 했다. 수업 외의 목적으로 도서관에서 소설책을 빌린 것은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 책을 찾았지만 아무 책도 느낌이 오지 않았다. 그저 몇 페이지 읽어보다가 다시 집어넣기만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재미가 없다기보다는 뭔가가 탁탁 막히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어린아이처럼 소설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기분은 마치 소설을 읽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래서 대학 오기 전에 항상 그랬듯이 가장 최근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을 빌리고 나왔을 뿐이다.

 한때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그래서 습작들을 끄적이고 지우고를 반복하던, 지금도 가끔씩 장난으로라도 소설을 끄적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소설을 읽는 방법을 까먹을 수 있을까?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소설이라는 텍스트를 접한 것은 오래전이었다. 아마 대학에 입학해서 읽은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뿐이었고, 그것 역시 수업에 리포트를 적기 위한 독서였다(그 덕에 5번이나 읽었고 그만큼 우울해졌다). 가끔씩 소설을 올리던 사이트에 가끔씩 단편 하나씩을 올렸는데도 소설은 읽지 않았다.

 어렸을 때에는 이야기를 별로 안 좋아했다. 과학 책과 동화책이 있으면 무조건 과학 책이었다. 동화책은 유용하지 않다고, 동화책을 읽는 것은 오락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반대로 과학 책 같은 것들은 지식을 얻는 ‘공부’라고 생각했다. 같은 이유로 또래 친구들이라면 다 보았던 디지몬, 포켓몬, 원피스, 나루토 등의 만화영화들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자 변했다. 일주일에 2~3번 정도 도서관에 가 책을 빌렸는데 대부분이 소설책이었다. 아직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도, 스타일도 없었지만 독특해 보이고 싶다는 욕심과 나만의 중2병이 맞물려 소설을 찾도록 만든 것 같았다.


sketch-3045125_960_720.jpg


 그전에도 막연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창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렇게 소설을 계속 읽으면서 생겨났다. 어느 순간 좋아하는 스타일이 생겼지만, 그런 스타일의 소설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배우는 소설의 ‘기승전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 기승전결의 과정에서 사건의 높낮이가 있어야 하는지, 왜 기승전결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사건의 모습이 변화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동시에 사건이 왜 특별해야 하는지가 의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를 쓰지 않고는 한계가 있는 것인지, 왜 온전한 생각은 소설의 주요 소재로 쓰이지 않는지 궁금했다. 이 질문들을 생각하다가 한번 써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지만 그때는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소설이라는 틀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글을 쓴다는 생각을 접어두게 되는데 3년 정도가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고2 때까지는 문예 창작과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문장은 그대로였다. 전체적인 글 이전에 작은 문장들이 항상 걸렸다. 더 좋고 다양한 문장을 쓰고 싶었지만 문장은 항상 너무나 어려웠다. 신경을 안 쓰면 똑같은 형식의 문장들만 가득했고, 신경을 썼다간 이도 저도 아닌 문장만이 적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의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때의 나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은 별로 간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글에 대한 집착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 영향은 강력했다. 사용하는 단어의 수도 줄어들었고 글을 쓸 일은 거의 없어졌다. 문장을 다듬을 일도 없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자 틀리지 않고 어색하지 않지만 전혀 특별하진 않은 글과 “예전엔 글이 쓰고 싶었지만 문장이 너무 부족해서 금방 포기해 버렸어요. 그땐 글 쓰는 게 쉬운 줄만 알았죠.”라고 말하며 웃는 나만이 남아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분야이다. 또한 상당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걸 하는 시간이 가치 없을 리는 없지만, 여전히 이때의 잔해들을 잘 써먹고 있는 것을 보면 다행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작가 이상으로 ‘아 진짜 하고 싶다.’ 하는 직업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활동이나 보내고 싶은 일상의 형태는 있더라고 하고 싶은 직업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소설을 읽는 방법을 잊어버린 지금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아직 소설의 여파에서 탈출하지는 못한 것 같다.


x9791170320623.jpg
 

 참으로 묘하게도 이번에 빌린 2017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에서 마음에 드는 소설들이 있었다. 조용히 작중의 사람에 몰입할 수 있는, 적혀있는 문장들이 어딘가에서 진짜 살아가는 사람의 일상 같아서 누군가의 생각을 훔쳐보는 느낌이 드는 그런 소설들이었다. 특히 한 소설은 단 하나의 쌍 따옴표도 없다는 점에서 너무 좋았다. 여전히 소설을 읽는 방법을 까먹은 듯해서 단편 하나 이상을 읽어내지 못하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동시에 소설보다 소설 뒤에 있는 작가 분들의 소감을 더 유심히 읽는 나를 발견했다. 그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느 순간부터 직접 만든 이야기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그 속에서 생각을 이어가는 것에 더 재미들린 내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생각이 너무나 굳어버려 새로운 것은 너무나 어렵고, 방법도 다 까먹어 버려 소설을 생각하는 것은 유물을 발굴하는 기분이지만 여전히 반갑고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김찬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