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해 줘, < 코코 > [영화]

글 입력 2018.01.3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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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의 애니메이션’에 익숙하던 우리였지만, ‘공주와 개구리’, ‘모아나’에 이어 ‘코코’까지 이어오면서, 백인의 애니메이션에서 세계인의 애니메이션으로 점차 확대해가고 있다. 어릴 적 디즈니 공주님들을 접하고 바비인형과 함께 놀았던 나에게는 조금 생소하지만, 반가운 변화이다. 무의식중에 익숙하지 않아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접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누리고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애니메이션 회사들의 행동에 박수를 치고 싶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본 애니메이션이었던 <코코>는 잔잔하지만 마음 속 깊게 여운을 남겨주었다. 가족들을 소개하는 첫 부분부터 눈을 사로잡았다. 일단 <코코>는 색채가 강렬하고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적당히 어지럽지 않고 화려한 느낌을 주어서 좋았다. 가족을 소개하는 시퀀스도 역시 아름다운 색채가 돋보였다. 멕시코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종이공예 역시 새롭게 느껴졌다. 과거 이야기를 풀어낼 때, 평범하게 풀어내지 않고 새롭게, 혹은 인상에 남게 풀어내는 픽사의 방법이 또 한 번 통했다.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업>의 과거이야기처럼 큰 여운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멕시코의 전통 종이공예를 소개함과 동시에, 시각적인 부분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스토리 진행까지 해결하는 일석 삼조의 효과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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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구엘이 느끼는 감정들은, 사춘기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감정들일 것이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기 싫고,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절차들은 너무 복잡스럽다. 현대과학문명을 살고 있는 21C인데, 조상님들을 섬기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우스워 보인다. 어차피 다 허구이고 미신인데.’ 하는 생각들. 미구엘은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 가족 모두가 반대하는 일인 만큼 정도가 더 심하게 표출된다. 거기에, 미구엘은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하다. 반면, 가족들은 ‘널 사랑해’라는 믿음으로 미구엘의 꿈을 깎아내린다. 이 역시 현대 많은 부모들이 무의식중에 행하고 있는 폭력이다. ‘사랑’과 ‘보호’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폭력 말이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게 하고, 왜 하고 싶은 지 이유는 묻지 않고, 가능성이 있는지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애니메이션이지만, 현대의 잔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역시 성인용이다.
 
 미구엘은 애니메이션 주인공답게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우상 델라 크루즈가 한 말처럼, 기회를 잡기 위해 무작정 뛰어든다. 꿈을 위해 도둑질을 하는 것은 교육상 좋지 않아 보이지만,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은 거침없다. 죽은 자의 날, 죽은 자의 유품을 훔친 대가로 미구엘은 사후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가족들의 축복을 받아야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미구엘은 자신의 우상이 증조부인 것을 알게 되고, 그의 축복을 받기 위해 떠난다. 해가 뜨기 전에 축복을 받아야 하지만 미구엘은 델라 크루즈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 상황 속에서 미구엘이 아닌 미구엘 가족들에게 감정 이입을 한다면, 이건 마치 <아기공룡 둘리> 속 둘리가 아닌 고길동에게 연민을 느끼는 그것과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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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상영 중인 영화이니 만큼, 결말은 말하지 않겠지만 함께 영화를 봤던 가족 모두 눈물 한 두 방울씩 흘리고 왔다는 것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가족과 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강요하는 상황 속에서, 미구엘의 선택은 어떤 것일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포인트일 것이다. 처음부터 가족의 사랑을 말하는 <코코>는, 마지막까지 그 주제를 잃지 않는다. 픽사 영화의 특징이겠지만, 가슴 따뜻한 결말에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코코>의 제목이 왜 ‘코코’일까, 의아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작인 미구엘로 시작하지만, 끝은 코코인 영화. 누구나 코코를 사랑하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를 보며 <코코>가 새롭다고 느꼈던 점이 하나 있다. 리빙보이, 살아있는 미구엘을 다들 이용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태껏 해골이 난무하는 영화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들은 살아있는 육체를 이용하기에 급급했다. 실사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말이다. 물론 이용을 하려는 해골이 딱 하나 있긴 했지만, 살아있는 육체를 이용하려 하는 악한 존재가 하나쯤은 나올 줄 알았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다. 아마 <코코>는 가족의 사랑을 말하는 영화이기에, 살아있는 육체를 원하는 악역이라는 존재는 불필요했을지 모른다. 다른 의미의 악역이 필요했을 것이다. 가족의 사랑을 방해하는, 그런 악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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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상황을 조금 뒤틀어서 보자면, 한 없이 우울해질 수도 있는 소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 없는 이들은? 영화를 보며 우울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사랑은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부릴 수 있는 사치일 것이기 때문이다. 잊히지 않는 것이 주된 주제였다면, 친구와의 이야기도 넣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또한 ‘죽음’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신과 함께>와는 조금 상반된 사후세계관이라 신선하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아름답게 보면 한 없이 아름다울 수 있지만, 무겁게 보면 한 없이 무거워지는 주제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코코>는 멕시코라는 나라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던 최초의 기억이다. 아마 나를 포함한 많은 수의 어른들, 그리고 많은 수의 어린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코코>는 백인의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 유럽권과 미국이 아닌 그 외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가족의 사랑이라는 주제는 만국 공통이지만, <코코>는 그 주제를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나라에 대입해 풀어냈다. 스토리텔링의 진행은 훌륭하지만, 자칫하면 오리엔탈리즘처럼 변질될지도 모른다. ‘멕시코는 다 이래. 혹은, 멕시코가 서양과 이렇게 달라. 화려하고 색다르고 예뻐’ 라는 오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코>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가족의 사랑이니까 말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김미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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