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르미타시에서, 인간과 풍경을 만나다 [전시]

국립중앙박물관 '예르미타시 展: 겨울 궁전에서 온 프랑스 미술'
글 입력 2018.01.30 02:0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예르미타시 박물관(The State Hermitage Museum)은 1762년 즉위한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만들어진 별궁이었다. ‘예르미타시’라는 이름도 ‘은자(隱者)의 집(Hermitage)’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예르미타시 박물관의 실제 모습을 보면 은자의 집이라고 하기에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마치 겨울왕국을 보는 것 같다.

 
예르미타시박물관 겨울 궁전 전경.jpg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예르미타시 박물관 展: 겨울 궁전에서 온 프랑스 미술>은 이 아름다운 겨울 궁전의 소장품 중 특히 프랑스 미술 컬렉션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예카테리나 2세와 당시 귀족들의 프랑스 미술에 대한 애정으로 예르미타시 박물관은 방대한 양의 프랑스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번 전시의 퀄리티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다.

 
KakaoTalk_20180130_020303525.jpg
 
 
이번 전시는 매우 친절하고, 교육적인 전시였다. ‘프랑스 미술’이라는 다분히 방대한 주제를, 시대 순으로 천천히 짚어나가면서 친절한 캡션을 곁들였다. 사진과 인테리어를 통해 실제 유럽의 박물관에 있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재현하고, 중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와 관련한 문학작품과 설명을 통해 이 전시가 ‘예르미타시’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게 했다. 미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든 없든, 남녀노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시에서는 미술사적 시대구분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섹션으로 분류해 놓았다. 특히 1부에서는 17세기 프랑스 미술을 주도했던 고전주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비슷하면서도 다른 각각의 작품들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KakaoTalk_20180130_020251203.jpg
십자가에서 내림, 니콜라 푸생, 1628-1629

KakaoTalk_20180130_020251947.jpg
술집의 농부들, 르 냉 형제들, 1640년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이 두 작품은 언뜻 보기에 매우 달라 보이기도, 또 한편으로는 매우 비슷해 보이기도 하다. 우선 작품의 내용부터 보면, <십자가에서 내림>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 죽은 그의 시신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슬픔을 다룬 반면, <술집의 농부들>은 소박한 차림의 농부들이 술집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적인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종교와 일상이라는 두 개의 다른 주제의 그림들은, 한편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이는 첫 번째로 그림의 전체적인 차분한 색감, 안정적인 구도에서 비롯된 것 같다.

<십자가에서 내림>은 비극적인 순간을 다루었기 때문에 구름이 빛을 가려 전체적으로 어둑어둑한 색감을 만들어내었고, 예수의 머리 쪽을 향하는 인물들의 시선과, 화면의 오른쪽에 우뚝 선 기둥(십자가)가 완전한 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다. <술집의 농부들> 또한 술집의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어둡고 짙은 색감들이 쓰였고, 화면 속 모든 인물들이 비슷비슷한 높이에 배치되어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또 하나, 술집의 농부들의 모습은 농부라기보다는 매우 근엄한 현자(賢者)처럼 보이는데, 이렇게 평범한 서민들의 모습을 이상화하여 그린 것이 르 냉 형제 작품의 특징이라고 한다.


KakaoTalk_20180130_020249086.jpg
콜로세움, 위베르 로베르, 1761-1763


이 외에도, 그림 앞에 서기만 해도 마음이 잠잠해지는 느낌을 오랜만에 받았던 작품들이 있다. 바로 위베르 로베르의 <콜로세움>과 프랑수아마리우스 그라네의 <로마 바르베리니 광장의 카푸친 교회 성가대석 내부>라는 작품이다. 계몽의 시대에 그려진 <콜로세움>은 영화 포스터처럼 웅장하면서도 어딘지 쓸쓸한 느낌이다.

여기저기 부식되고 허물어졌지만 여전히 그 위풍을 자랑하고 있는 콜로세움이 붉은 하늘의 빛을 받아 더욱 찬란하게 보인다. 저 하늘을 저물어가는 하늘로 보느냐, 혹은 동이 트고 있는 하늘로 보느냐에 따라 이 그림의 의미는 조금 달라질 것 같다. 중요한 것은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거대한 콜로세움과 하늘에 비해, 그 앞에 서있는 몇 안 되는 인물들의 모습은 너무나 작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작은 그림이지만 큰 아우라를 풍기는 그림이다.


KakaoTalk_20180130_020250131.jpg
로마 바르베리니 광장의 카푸친 교회 성가대석 내부
프랑수아마리우스 그라네, 1818


<로마 바르베리니 광장의 카푸친 교회 성가대석 내부>는 보고만 있어도 마치 내가 카푸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어두컴컴한 교회의 정면 창에서 새어나와 인물들을 역광으로 비추는 저 빛 때문이다. 교회의 천장을 화면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큰 비중으로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다. 그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북적거림보다는 고요함이 느껴지는 것도 이 빛과 천장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보기만 해도 경건해지고, 종교의 힘 앞에서 스스로를 겸손하게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171106_예르미타시박물관전 포스터 최종.jpg
 

[채현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