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01. 이토록 이기적인 글쓰기인데

글 입력 2018.01.2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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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이토록 이기적인 글쓰기인데



[쓰다] 
- 머릿속의 생각을 종이 혹은 이와 유사한 대상 따위에 글로 나타내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언제부터 글을 썼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왜 쓰기 시작했냐고 묻는 거겠지. 그러나 아직까지 나는 '지망생'이라는 신분에 매여 있기 때문에 그런 물음들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그냥 지금까지 써왔고, 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쓸 것 같으니까 쓰는 중인데. 특별하게 아픈 사연이 있어서 쓰는 것도 아니고 천재적 재능이 있어서도 아니고 정말로 습관 정도 아니, 버릇과 비슷한 것이 되었을 뿐인 건데. 무책임한 대답을 돌려줄 수밖에 없어서 민망하지만 그래도 굳이 내 글쓰기가 어떻게 시작된 건지 설명해야하는 자리가 생긴다면, 난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보잘 것 없는 내 이야기가,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라도
남겨지는 것이 소중해서.


  정말 그렇다. 내 글은 참 보잘 것 없는 ‘감상’들 투성이다. 산문을 쓰면 항상 부끄러웠다. 숨고 싶은 기분이 든다. 문장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풍부한 글쓰기가 가능할 만큼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길게 적을 힘이 없다. 그게 들통 나는 게 싫었다. 산문을 쓰는 과정은 항상 모자란 상태로 머물러 있는 내 자신을 확인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슬픈 조바심이 난다. 글을 잘 풀어나가지 못할 때마다 마치 내 삶 자체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글쓰기’처럼 느껴졌다. 진전 없는 삶. '그래,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거지. 쓸 말이 이것 밖에 없는 거지.' 그래서 매번 시로 도망갔을지도. 시는 나의 무지와 나의 실패, 내 슬픔과 트라우마, 내 망설임들을 계산하지 않고도 아름답게, 웅장하게, 환상적이게 표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보잘 것 없는 내 삶이 '보잘 것 없는 채'로 까발려 지는 것이 아니니까.

  혹자는 말한다. 정면으로 자기 자신을 마주보는 것이 글쓰기라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발굴하고 인정하는 행위라고. 하지만 난 아니었다. 나는 끊임없이 시 속으로 미끄러지고 산문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이다. 발굴에 실패하는 사람이다. 끝내, 진짜 얼굴을 숨기고 거짓된 말투로 '괜찮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사람이다. 그 정도로 만족해버리는 글쓰기. 오랜 시간 만지작거린 단어들로 보여주는 것이 고작 이 정도다. 그래서 뒤늦게 고백하자면, 나는 내 글을 신뢰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자초한 것이긴 하지만) 글을 써 온 세월동안 슬펐고 슬픔이 내가 가진 유일한 진실이라 믿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애정 하는 시인 김경주는 어느 인터뷰 영상에서 시가 ’종이에 맺혀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글썽거린다는 것이다. 모든 시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 표현 앞에서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내 유일한 진실인 슬픔을 최대한 앞세워서 써내려가는 것. 그게 방식이면 방식이었다고나 할까. 아니, 방식이 아닌 의지였다. 더 잘, 더 구체적으로 적고 싶다는 욕심은 있지만 솔직해져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는. 솔직해지지 않아도 혼자 잘 슬퍼할 수 있는 놀이터가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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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내 글이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토록 이기적인 글쓰기인데. 감정이입을 하다가 눈물을 흘릴 뻔 하거나, 표현에 감탄했다거나, 많은 고민 끝에 나온 글일 것 같다고 말해준 이들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얼굴이 화르륵 붉어지기도 했다. 들켰구나 싶어서. 숨긴다는 것이, 도망쳤던 것이, 연기했던 것이 결국 나에게만 숨긴 거였고, 도망친 거였고, 연기였던 거다. 내가 제일 잘 아는 내 글이어도 누군가는 나보다도 더 깊게 알아차린다. ‘절대 모르겠지’ 생각하고 썼던 문장에서 어떤 이는 걸려 넘어져 울 수도 있고, ‘이 정도면 내가 그렇게 많이 드러난 게 아니겠지’ 하고 확신했던 문장에서 또 다른 이는 내가 어떤 사람일지를 짐작한다.

  가장 비밀스러워서 오직 나만이 장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에서까지 누추하고 웅크린 내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덕분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견고한 성 안에서 안전하게 놀고 싶어 하는 어린애 같은 내 모습을 말이다. 외부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는 완벽하고 높은 성벽은 없다. 정말 그렇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당연한 사실인데 나는 그걸 꽤나 유난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다. 아, 그렇구나. 정말 그렇구나. 그렇다면 시 역시 나의 수치스러운 고문장이 될 수 있었구나. 반대로, 두렵기 그지없는 산문도 도피처가 될 수도 있었고. 새로운 길이 열리고 동시에 그래서 갈 길을 잃은 것만 같다. 또 다시 눈 앞에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글쓰기는 너무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고 해야 하나. 어떤 의미부여도 섣부르다는 생각 때문이다.

  굳이 긍정적으로 평가해보자면, 지금에야 나는 가장 ‘지망생’ 다운 모습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내게 자주 묻는 질문,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된 이유’ 같은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놓치는 것이 많았는가만 머릿속을 맴돈다. 그렇다. 이제 그게 내가 쓰는 이유다. 길을 잃은 것. 이 실패에도 잘 적응해보자는 게 올해 목표다.


보잘 것 없는 내 이야기를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라도 남겨보는 것. 결국에 누군가는 나를 발견할 것이고 나는 들통 난다. 그러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더라도 어쨌든 남겨보련다. 가까스로 아주 가까스로 남기는 한 문장, 한 문장들이 지금 당장은 내 눈에만 반짝반짝 글썽이더라도.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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