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한 입] 올 겨울 허기를 채우는 한 입, '리틀 포레스트'

배도 마음도 배고픈 올 겨울에는 '리틀 포레스트'로 허기를 채워보자.
글 입력 2018.01.25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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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필름 한 입
<리틀 포레스트>



부모님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은, 오이 모종을 심는 모습이었다. 지금도 부모님은 농부다. 내가 자라는 긴긴 시간동안 수많은 채소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길로 자라나 수확되었다. 이따금 그렇게 수확된 것들을 식탁에서 만났다.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물기 있는 오이 무침이었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고슬고슬한 밥에 오이무침과 고추장을 넣고 비벼먹는 것이 우리집 별미였다. 상추나 깻잎, 고추는 흐르는 물에 씻어 쌈채소로 먹었다. 언제였는지도 기억 안 나는 어느 여름에는 수박, 메론이 싱그러운 모습으로 디저트가 되어주었다. 집 안에도 작은 생명들을 키웠는데, 싱크대 옆에는 콩나물 시루가 있었다. 한 바가지 물을 부으면, 아래 구멍으로 물이 쏟아졌다. 저 콩나물들이 언제 다 큰담, 지나가듯 흘렸던 말은 어느 아침 맑은 콩나물국으로 돌아왔다.

투정만 부렸던 밥상들. 어릴 적 그렇게 못마땅했던 정겨운 한 입들은 서울에서의 자취가 시작된 이후로 내 그리움이 되었다. 밭에서 툭 뜯은 소중한 수확물과 정성으로 만든 요리는 이제 더 이상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그 것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워진 것은, 지금 내가 먹는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냐는 것이었다.

그 때, 이 영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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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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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2 : 겨울과 봄>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 두 편으로 나누어 이치코의 사계절을 담은 영화다. 주인공 이치코는 도시에서 생활하다 고향인 시골 코모리로 돌아온다. 그녀는 직접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는 매일을 보낸다. 지금은 떠난 어머니의 음식을 추억하며 요리를 완성해 나가는 그녀의 사계절은 너무나 춥고 덥지만 그만큼 따뜻하고 시원하다.

영화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를 원작으로 한다. 이 『리틀 포레스트』는 도호쿠에서 지낸 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실제 체험이 담긴 작품이며, 만화 속 요리도 대부분 본인이 만들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제법 실화 기반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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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가치는 요리 이전에 수확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확이 있기 위해 농부들은 땀방울을 흘리고, 부지런한 아침을 맞이한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 멀리 있어 깨닫지 못했던 수확의 소중함. 이따금 찔끔찔끔 내리는 비도 그들에게는 한줌의 단비인 것을, 쨍쨍 내리쬐는 햇볕도 식물들의 한 모금 양식인 것을, 이 영화는 이치코의 하루 하루를 통해 전달한다.


"벼는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


사계절의 의미를 되찾기도 한다. 단순히 춥고 덥고의 기준에 불과했던 계절 속에서 제철 과일, 햇곡식을 발견한다. 계절이 선물해준 양식은 주인공의 정성으로 맛있는 음식이 된다. 내 취향이 아니거나, 내 입맛이 아닐지라도 감탄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가끔 그 것은 사계절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화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추위도 소중한 조미료 중의 하나다."


이치코가 만드는 요리는 직접 딴 것들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지만, 그 것만큼이나 소중한 가치가 하나 더 깃들어있다. 바로, 지금은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는 엄마와의 추억이다. 그 시골 속, 정을 붙이고 살아야했던 모녀의 기억이 이 요리를 완성한다. ‘맛있다’ 탄성처럼 나오는 한 마디는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 무궁무진할 미래의 사계절을 포근하게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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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주구장창 농사짓고 요리 해먹는 영화가 이토록 재밌고 감동스러웠던 것은 내 과거와 현재를 다시 그릴 수 있어서였다. 직접 캔 고구마를 난로에 구워 건네던 부모님의 뿌듯한 얼굴. 나의 부모님이자, 수많은 작물을 키워내신 농부. 그 이름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영화였다. 지나쳐왔던 농부의 수고스러움, 잊고 살았던 계절감, 어깨 너머 지켜봐온 요리사의 맛을 되짚을 수 있었다.

한편 경외심이라는 것이 들었다. 이치코는 내게 부끄러움과 부러움, 존경스러움을 한꺼번에 안겨준다. 나름 치열하다고 설명하고 싶은 내 생활 속, 나는 어떤 부지런과 어떤 땀방울을 동원해가며 먹고 살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회상 끝에, 변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온기 있고 결실이 뚜렷한 이치코의 삶이 대단하게 느껴짐은 부정할 수 없다.

나영석 PD가 이 영화를 보고 삼시세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한국. 다가오는 2월에는 해당 영화를 리메이크한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가 개봉한다. 원작을 어떻게 담았을지, 또 새로운 이치코는 어떤 모습일지,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어떤 '리틀 포레스트'일지 기대되는 바다. 배도 마음도 고픈 올 겨울에는 <리틀 포레스트>로 허기를 채워보자.



포스터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
<리틀 포레스트2 : 겨울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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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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