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Up' 인생은 수많은 모험의 시작과 끝이다 [영화]

글 입력 2018.01.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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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좋은 영화를 보는 것은 나와 닮아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심리상태, 경험, 상황과 우연히 잘 맞는 캐릭터를 보면 굳이 많은 정보나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도 바로 이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노래, 책에서 이처럼 나의 고민이나 경험과 교차되는 순간의 만족감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찾아오는 새로운 기쁨이 되어준다. 우연히 보게 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업>이 그랬다.



1. 역대 최고의 오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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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도입부에서는 10여 분 남짓한 시간 안에 주인공 ‘칼’의 인생을 빠르게 보여주는데, 이 장면이 흘러가는 동안 저절로 눈물이 그렁그렁해질 수밖에 없었다. 칼은 어릴 적 탐험가를 동경하고 모험을 하고 싶어하는 소년이었다. 어느날, 우연히 자신과 같은 꿈을 갖고있던 명랑한 소녀를 만나 친구가 된다. 둘의 인연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계속되어 부부사이가 되고 같은 세계를 공유하며 더욱 더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

 집을 꾸미고, 우체통에 서로의 이름를 쓰고 돗자리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구름이 어떤 모양을 닮았는지 이야기 나누는 인생의 한 때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남은 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는 일, 그 남은 생의 모든 시간들을 ‘둘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짧은 시간동안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아이 같은 정신이 덧없는 인생을 보낼 힘을 준다. 칼과 엘리는 각종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혀 남미에 있는 ‘파라다이스 폭포’에 갈 돈을 모으던 저금통을 여러 차례 깨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가겠다는 꿈을 계속 품고 산다. 마침내 여행 티켓을 끊고 꿈의 장소로 떠나려던 차에 엘리는 그만 병을 얻게 되고, 칼의 인생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찾아온다.



2. 노인과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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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가 세상을 떠난 후, 오랜 추억이 가득한 칼의 집과 그 곳에서의 생활을 해하려는 존재들이 나타난다.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는 인부들이다. 칼은 자신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이를 거부하다가 엉겁결에 사람을 다치게 하고, 법정에 서게 된다. 칼은 어린시절과는 다르게 다소 신경질적이고 무뚝뚝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으로 변하는데, 이는 엘리와의 이별 후 생긴 변화이자 스스로를 보호하려다 보니 생겨난, 사회적인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방어기제다. 경찰의 결정으로 요양원에 가게 된 칼은 집 한 채를 통째로 들어올릴 수 있는 풍선을 굴뚝으로 내보내 요양 보호사들을 따돌린다. 칼의 집은 풍선을 타고 두둥실 하늘 위로 떠오르고, 엘리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결심으로 남미로 향하려는 순간 뜻밖의 불청객이 나타난다. 바로 칼의 어린 시절을 닮은 호기심 가득한 소년 ‘러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인과 아이는 매우 다른 존재로 인식되고 그들에게 부과되는 편견들도 많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화합으로 결국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고 서로의 꿈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된다. 마치 칼과 엘리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 다른 성향을 가졌지만 같은 것을 공유하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칼은 러셀 덕분에 오직 자신의 목표만 생각했던 이기적인 인물에서 누구보다 이타적인 태도로 마음을 열어가고 엘리와의 약속도 지킬 수 있게 된다.



3. 상상력은 가장 큰 에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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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상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더 가까운 느낌이 든다. 엘리가 남긴 모험 스크랩북에는 ‘내가 하고싶은 일들’이라고 적힌 페이지가 있다. 보통 하고싶은 일에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을 적기 마련인데, 칼이 미처 보지 못했던 페이지를 넘겨보자 다름아닌 자신과 만난 후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 붙어있다. 엘리의 메시지와 함께. ‘당신과의 모험 고마웠어요. 이젠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요.’ 두 사람이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바로 엘리가 하고싶었던 모험이자 인생이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인한 그리움에서 출발한 여행은 전혀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다. 이것은바로 상상력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편적이지 않은 나만의 상상은 어쩌면 세상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내고 많은 일을 시작하게 하는 힘이다. 어린시절의 꿈같은 상상을 노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한 칼은 더 큰 선물을 받았다. 애니메이션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매우 비현실적인 내용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강렬하게 현실과 맞닿을 수 있는 지점이 많다. 말이나 글로, 실재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없는 더 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칼이 모두를 구하느라 결국 엘리와 살았던 집을 떠나 보내는 장면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들었다. 자신이 끝끝내 놓지 못하던 것이 눈 앞에서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며 미련없이 중얼거리는 칼의 대사는 내 마음을 후벼 팠다. ‘괜찮아, 그래봤자 집일 뿐인 걸.’ 셀 수없이 많은 희로애락들로 나의 한 부분을 이뤄온 존재를 떠나 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다른 존재를 만나 그만큼의 시간을 겪어야 하는, 말 그대로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업>을 통해 가장 비현실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다고 느껴졌다. 나의 관계에 대한 결핍과 공간변화 경험이 겹쳐졌고, 영화 속에서 다양한 삶의 단어들을 보았다. 모험과도 같은 인생, 어린시절, 추억, 꿈, 만남과 헤어짐 뒤에 또 다른 만남이 찾아오는 것까지 사랑스러운 선물 같은 영화여서 참 고마웠다.


[최은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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