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볍고 거칠게 자연을 그리다, 책 < 다르면 다를수록 >

글 입력 2018.01.2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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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년 간의 변화가 느껴진다. 다사다난하다. 남자가 무슨 성형을 그렇게 많이 하나 싶며 신기한 눈으로 보던 마이클 잭슨은 세상을 떴고, 요즘은 남자도 코를 높이고 쌍꺼풀수술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남성과 여성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는 엇비슷해졌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남녀간 논쟁이 지속된다. 하다 못해 고백도, 프로포즈도, 결혼식 축가도 여자가 많이 하는 편이란다. 많은 언어와 동식물은 뉴스기사로만 남은 채 사라지기도 했다. 맑은 물, 맑은 공기가 비싸졌다. 인공 자궁은 아직 만나볼 수 없었다. 되려 난임이 늘어나 많은 부부들은 괴로워한다.

 가볍다. 거칠다. 약간 모순적인 면도 있다. 책을 덮으면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었다. 가벼워졌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고민으로 똘똘 뭉쳐 복잡하던 마음이 가벼운 두께, 툭툭 짧게 이어진 글에 가벼워졌다. 나의 생각, 더 크게는 사람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연과 곤충, 동물의 관점에서 인간을 돌아볼 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남자가 조금만 꾸며도 '기지배'같다는 소리를 겨우 벗어난 인간. 암컷보다도 훨씬 치장에 공을 들이는 공작. 암컷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는 동물들과 여전히 필자에 따르면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남성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인간. 여전히 여자가 더 많이 육아와 가사에 시간을 투자하는 편인 사람들, 암컷과 수컷이 돌아가며 아이를 돌보는 새들.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들을 자연은 마치 '아, 우리도 그거 고민 좀 해봤지'하는 것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넓어지고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우리는 인간이라는 틀의 방식을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문제가 생길 때, 살아나가기가 힘들 때, 힘에 부칠 때 자연으로 돌아가 그 사소한 것들에서 답을 얻어가는 것이다. 아침에 사람 사이에 낑겨 '지옥철'에서 하루를 시작하면서는 느끼지 못하는 것들임은 분명하다. 나의 답 역시 총총 거리며 꼬랑지를 길게 늘어뜨린 까치,  바람 사이로 흔들리는 나무, 뽈뽈뽈 기어다니는 개미나 집게벌레, 빨간 작은 열매를 보다가 떠오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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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칠다. 세심하게 감성을 두드리는 글은 아니다. 학문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하지만 확실히 전공이나 관심사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정해준다는 걸 다시 느꼈다. 대표적으로는 꽃에 대한 이야기. 생물학자에게 큰 캔버스에 큰 꽃 한 송이를 그려놓은 것은 아주 적나라한 19금 그림이 될 수도 있다. 꽃이 식물로 치면 성기를 뜻하는 것이라는 말이 무척 생소했다. 아, 맞다. 그렇지. 몇 초 있다가 눈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꽃은 식물의 생식을 담당하고 있으니까. 벌과 나비는 '날아다니는 음경'이라고! 필자가 세상에서 가장 야한 그림인 것같다는 조지아 오키프의 꽃그림마저 호기심에 찾아보게 만들었다. 그 정보를 모르던 것이 아닌데도 거칠게 크로키처럼 그은 문장이 와닿는 느낌은 새로웠다. 나에게 꽃은 반가운 친구이기도 했고, 개성을 드러내는 결실이자 꿈이기도 했다. 봄날 어느 좀은 틈 사이로 피어난 제비꽃을 보면, 조급하게 고개를 쳐든 개나리, 조용하게 꽃잎을 피고 떨구는 우아한 목련. 그런 꽃그림이 춘화라니. 재밌다. 이처럼 거친 표현들이 있지만, 거칠어서 더 한방에 와닿고 낯설지만 기억에 훨씬 잘 남았다. 내가 자연을 보고 있는 시선마저도 어쩌면 꽤 편파적이진 않았나 돌아봤다.

 약간 모순적인 느낌도 있다.  짧은 글들이 이어져 있는데 무심코 보다 앞의 이야기랑 반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책의 말미 중에 가장 강렬한 주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과학의 폐해가 두려워 연구를 접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인간의 자연 서식지는 이제 과학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힘으로 태어나 과학 속에서 살다가 과학의 힘이 모자라 죽는 세상이다. 우리가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고 있는 동안 과학 선진국들을 구더기를 골라내며 훌륭한 장을 담가 우리에게 도로 팔아먹으려 덤빌 것이다." (p.231)


 한편 도입부(p.42-43)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희귀한 크낙새를 발견하고 새를 연구하는 대학교수 연구실에 전화하려다 크낙새가 무사히 크길 바라며 전화기를 다시 내려놓은 수필가 장돈식 선생. 그리고 반딧불이를 발견하고서 같은 이유로 입을 다문 필자. 그는 '학자로서 할 일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학문도 그들이 살고 난 후에야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마음의 눈을 슬며시 감았다'고 했다. 얼핏 보면 크게 모순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충돌하게 될 확률이 높다.

 만일 과학의 폐해가, 연구가 크낙새, 반딧불이 같은 소중한 생물들을 사는 데 방해하고 해치는 것이라면? 필자가 그들이 살기 위해 폐해가 무서워 멈칫하는 동안 과학 선진국들이 훌륭하게 연구를 하고 이에 관한 자료나 적용사례를 비싼 값에 팔려한다면? 인간의 자연 서식지는 과학이 분명한데, 과학이 자연의 서식지를 파괴한다면? 그 때도 연구를 접을 수 없다는 말은 유효할까? 아니면 그 때마다 학자로서 할 일이 아닌 일을 반복하게 될까? 모순적이다,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던 점은 책이 다소 가볍다고 느꼈던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질문을 던지긴 하지만 그 때에 따라 비슷한 문제에 답이 다르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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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 비판했던 인간의 문제에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아주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아서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책은 자연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려했고, 이건 자연이 옛다, 하고 답처럼 줄 수는 없는 부분인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한 뿌리, 한 가족이다. 한 나무의 한 가지, 한 뿌리마다 고민은 다르고, 가족마다 살아가는 고민은 각양각색이다. 우리는 특별히 잘난 것 없지만 자기 잘난 맛에 도취되기도 하는 인간이라는 N번째 자연의 가족이다.  우리의 마음도, 말과 행동도 엎치락뒤치락하고 자연 속 다른 가족들과도 이래저래 말썽만 가득하다. 그러나 그게 살아있다는 의미니 나쁜 게 아니라고, 싸울 때 싸우더라도 우리가 자연 속 수많은 가족을 잊거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그것만은 조심하자는 그 메세지만큼은 명확하다. 그렇게 자연의 품에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라고 말이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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