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킨포크 테이블_'휘게'를 올리다

글 입력 2018.01.18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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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해서, <킨포크>를 읽어본 적은 없다. 어느 카페의 책장과 테이블 한 쪽에 그저 예쁘게 놓여있는 것을 멀끔이 바라보았을 뿐. ‘킨포크’가 미니멀 라이프, 휘게 등으로 대표되는 ‘느리게 사는 삶’을 대표하는 말이며 본 뜻이 ‘친족, 가족’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딱히 감흥은 없었다.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푸드와 같이 이제껏 경제성장을 주도해 온 가치들과는 대척점에 서있는 개념들이 결국엔 퇴색되어 가는 것을 숱하게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물질, 속도, 변화에 신물이 났다며 들고 일어난 이들이, 자본주의의 굴레에 순응하고 고작 더 나은 돈벌이가 되는 모습을 말이다.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신경이 <킨포크>에 반응했던 이유는 그들이 표방하는 가치가 아니라 정확히 말해서 그들의 ‘국적’이었다. 미국인. 국제관계학과(일종의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하는 내게 미국은 익숙하지만, 멀게 느껴지는 나라다. 전 세계를 경영하는 강대국이자 상위 10개국의 군사력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 미국. <그래서인지 미국은 오히려 ‘사람 사는 곳’이 아닌 관념적이고 거대하기만 한 ‘국가’로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낯선 도시, 그것도 교외에 사는 사람이 만든 매거진이라니. 자본과 힘을 대표하는 나라에서, 이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가치를 들고 일어나 목청껏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면, 끝내 한국의 어느 카페에 들어선 대학생의 눈에도 들어올 만큼 구석구석 파고든 목소리라면 한 번 쯤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믿음이 솟아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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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킨포크에 없는 것   

 
 화장품을 집어 들고 피부에 광을 내는 연예인, 화려하거나 고풍스러운 가구 몇 점, 깡마른 몸에 도저히 평소 입고 다니기는 힘들 것 같은 옷을 걸친 모델. 잡지를 펼쳐들면 마지못해 기대하게 되는 각종 모습들이다. TV, 유투브, 신문 등 오늘날 대다수의 매체가 그러하듯이 대다수의 잡지가 많은 지면을 광고에 할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킨포크>에서는 절대 상업광고를 찾아볼 수가 없다. 킨포크는 자신의 공간에 ‘빠름에서 느림으로, 홀로에서 함께로,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요약되는 그들의 가치관과 그에 맞는 콘텐츠만을 허락한다. 이번에 받아본 <킨포크 테이블>도 마찬가지다. 이 독특한 매거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건 아래에 있는 목차, 그 뿐이다. 어쩌면 이런 강단(?)이야말로 <킨포크>가 이제껏 세상을 이끌어 온 동력에 현실적으로 맞선다고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면모가 아닐까 싶다.
 
 
[Contents]
 
INTRODUCTION
 
BROOKLYN, NEW YORK, USA
 
COPENHAGEN, DENMARK
 
THE ENGLISH COUNTRYSIDE
 
PORTLAND, OREGON, USA
 
THE WANDERING TABLE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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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쉽다, 단순하다, 편하다    


 미국의 브루클린과 포틀랜드, 덴마크의 코펜하겐, 잉글랜드 교외, 그 외 다수의 도시들까지. 목차는 단순하지만 300페이지를 거뜬히 넘어가는 <킨포크 테이블>을 후르륵, 넘겨보면 그 사이 눈앞을 스쳐간 집 앞 대문과, 식탁과, 군침 도는 음식이 몇 이나 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정말 간단하다는 것이다. 디자인 상 여백을 넉넉하게 집어넣어 그렇지 줄이면 A4용지 한 쪽이나 나올까? 아무리 그래도 ‘레시피’인데 설마-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덴마크 미켈 리프만이 킨포크에 대접한 식사를 짤막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Cucumber and Fennel Salad
 오이와 펜넬 샐러드

 재료
 
 커다란 팬넬 구근 1개
 얇게 썬 중간 크기 오이 1-2개
 레몬 1개의 껍질 부분은 갈고, 나머지는 즙을 낸다(껍질부분은 노란 부분만 갈아야 함)
 올리브오일
 소금과 통후추 간 것
 

 만드는 법

 1 펜넬 구근의 줄기 끝을 잘라 버리고 잎은 다듬어둔다. 
   줄기는 잘게 썬다. 구근은 반으로 잘  라 단단한 심은 버리고 나머지는 얇게 저민다

 2 커다란 그릇에 다듬은 잎사귀와 썬 줄기와 저민 구근을 넣는다. 
   그릇에 오이와 레몬 껍질, 올리브오일, 레몬즙을 더해 소금과 후추로 간한다. 
   잘 섞은 후 10분 정도 냉장고에 넣었다가 꺼낸다.


 
 짐작하는 바로는, 아마 킨포크에서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기 전에 반드시 평소 먹는 음식을 준비해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으로써 보다 자연스럽고 소박한 장면을 연출하고자 의도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을 초대할 땐 보다 정성스럽게 대접하는 게 예의가 아닌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접대 혹은 초대의 본질은 먹고 치워버릴 식탁 위의 음식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만남과 대화’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아 ‘상다리 휘어지게’ 차린 우리네 잔칫상을 나 역시 사랑하지만, 그런 이유로 타인과 함께 한 끼를 나누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과감히 생략해도 좋다는 것을 킨포크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음식은 거들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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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인다    


 늦게나마 책의 구성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큼직한 목차가 도시별로 되어있고,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도시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제공한다. 글에만 정신이 팔리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는데, 사실 그 배경으로 펼쳐지는 건 빈티지하게 제작된 해당 도시의 지도다. 세계지도나 지구본을 빤히 들여다보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보자. ‘스코틀랜드’라 무엇인지, 도시인지 주인지, 무엇으로 유명한지, 거기에 누가 사는지 하나도 모르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뚫어지게 쳐다보다 보면 괜히 그 집 앞 골목길이 보일 것도 같고, 어느새 그곳에 사는 사람과 심심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만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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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킨포크 테이블> 자체가 그렇다. 여기에 나오는 레시피들이 토종 한국인에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내게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처음 보는 식재료도 많고. 하지만 레시피를 소개할 때마다 따라붙는 그 사람, 혹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직접 써내려갔을 레시피, 살짝 곁들여 놓은 음식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과 따듯한 팁. 뭔지 몰라도 읽다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위에서 소개한 미켈 리프만씨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의 집에는 할머니부터 자녀까지 3대가 함께 살아간다. 서로 다른 삶을, 바쁘게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면 화요일 저녁만큼은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것. 광고 회사 임원인 그를 비롯해 해야 할 일이 많은 가족들이기에, 이들의 식탁은 앞선 오이 샐러드 레시피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간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벌써 그려지지 않는가? 북적북적, 말들이 앞다투어 식탁 위로 쏟아져 내리고, 소박한 샐러드가 차츰차츰 줄어드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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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선의 어머니 베라 윌리엄즈는 설탕, 밀가루, 버터를 아낌없이 사용한다. 지금도 직접 만든 쿠키를 자식들에게 소포로 보낸다는 그녀는 자신만의 빵인 ‘베라의 빵’을 소개한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레이첼과 프리랜서인 애덤 부부는 '초콜릿 칩 애호박 케이크'라는 다소 창의력 넘치는 케이크를 자신 있게 내놓는다. 포틀랜드에 사는 레베카와 윌 일리 루오마는 커피 전문가들이니만큼 '집에서 내린 커피'와 더불어 핀란드 사람인 윌의 취향대로 핀란드 디저트 빵인 '풀라'를 대접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음식은 그 사람의 삶을 반영 한다’는 말을 백 번 천 번 반복하는 것보다, 이렇게 갖가지 사람들의 삶을 읽고, 그들의 음식을 눈으로 맛보는 일을 몇 번 하다 보면 절로 깨우치게 되니까 말이다. 사람의 눈빛이 그렇고, 얼굴에 난 주름살이 그렇고, 말투가 그렇듯이, 음식은 하나의 거울이다.
 


 

 평소 나는 요리를 즐겨하지도 않고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요리 프로그램이나 요리책은 당연히 전혀 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저 아침용으로 미역국과 김치찌개를 끓이고 심심할 때 감자조림이나 콩나물무침, 계란말이 따위를 할 뿐이다. 이 정도가 내가 할 줄 아는 '요리'의 전부다. 손님을 초대해 그들에게 직접 만든 식사를 대접한 적은 물론 없다. 하지만 킨포크라면, 나의 볼품없는 식탁에 당장이라도 달려와 앉아 먹음직스럽게 먹고, 또 소중하게 기록해주리라는 생각이 든다. 짧고 소박한 나의 대학생활에 대해서도 귀기울여 들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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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휘게'에 아낌없이 찬사를 쏟아내는 걸 발견할 수 있다. 휘게(hygge)란, '촛불을 켜고 아늑한 곳에서 좋은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다'는 뜻의 단어로, 덴마크의 오랜 전통이라고 한다. 만약 그들의 목적이 <킨포크 테이블>로 휘게를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단언컨대 그들은 성공했다. 나아가 그들이 <킨포크 테이블>의 독자로 하여금 휘게를 하도록 유도하고 싶었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다. 조만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만의 정성이 깃든, 하지만 과하지 않은 식사를 대접하고, 또 넉넉히 시간을 들여 저녁 한 때를 보내볼 계획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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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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