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창작 - 테디베어 이야기 [일상]

글 입력 2018.01.17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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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일이 있으면 항상 마음이 떨리는 법이다. 필자의 본래 기고일은 어제지만 양해를 구하고 오늘 글을 적게 되었다. 바로 오늘 아침에 중요한 면접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오늘 아침까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곧 나올 결과를 기다리며 손톱을 쥐어뜯고 있다. 더이상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특별히 가슴에 걸리는 지점이 없음에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글을 적어야 함에도 핸드폰만 한참 만지작거리고 의미없는 열고닫기만 하다가 전에 적었던 글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동아리에서 적었던 글을 하나 발견했다. 곰인형이라는 주제를 받자마자 한 그림이 생각나서 그렸던 글이었다.


테디베어.jpg
- 곰돌이라는 주제를 보고 이 그림이 생각났다 -


 일상에서 만나는 떨리는 순간들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 중요한 일을 마주했을 때 무엇을 할까. 많은 사람들이가슴 떨리는 중요한 순간을 위한 루틴(의도적으로 반복하는 동일한 행위. 야구에서 타자들이 타석에 들어설 때 하는 행동들이나 축구선수들이 페널티킥을 찰 때 항상 동일한 자세를 잡는 것이 그 예시이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행운의 상징같은 일종의 미신이 있을 것이다. 발견한 글이 이것을 주제로 한 글이었다. 진정하고 싶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3번정도 반복해서 읽었고, 이 글을 올려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결과가 문자로 갈 거에요." 라는 한마디에 잠시도 쉬지 않는 필자 자신의 가슴에게, 혹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의 가슴에게 작은 진정제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상당부분을 다듬었지만 그래도 처음 올리는 부족한 창작물이기에 눈에 걸리는 부분이 많더라도 너그럽게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0.
 아마 여러분 중 테디베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해요. 어린이의 친구인 이 테디베어가 사실은 어린이를 찾아오는 악몽들을 막아주는 수호신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에이,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걸 믿냐고요? 다들 어린 시절 무서울 때 곰인형 꼭 안고 자본적 있죠? 곰인형을 꼭 안고 잘 때 편안하게 잘 수 있었던 건 다 그 용감한 테디베어가 어린이 여러분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랍니다!


1.
 어린 시절 악몽에서 깨 엄마 품 속으로 들어갈 때면, 엄마는 작은 테디 베어를 내 머리맡에 두고서는 이 테디 베어가 악몽을 막아줄 거라고 말씀하곤 하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사회에 나가는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이런 이야기는 그저 어린 시절 동심의 상징일 뿐이지만 그때는 그걸 꼭 믿고 편안하게 잤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고맙다고 테디 베어에게 인사하고 쓰다듬어 주곤 했다.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 만원 지하철에 끼어 한강을 넘어가는 내 가방에는 작은 테디 베어가 달려있다. 그것도 어쩌면 이 작은 곰인형이 하루에 조금이라도 더 웃을 수 있게 해 줄 거라는 어이없는 믿음으로 말이다. 어린 시절 들었던 그 이야기의 연장선에 위치한 믿음을 가지고 곰인형을 매단 건지, 아니면 그저 이렇게라도 두려움을 이기겠다는 소망에 이런 짓을 하는 건지 난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곰인형이 나를 지켜줄 거라는 일말의 확신은 내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치 부적이 액운을 막아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부적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것처럼. 미신이라고, 토템이라고 하면 맞는 이야기이려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귀신이나 괴물이 나타나 놀라게 하는 그런 어린 시절의 악몽은 지금 사회 초년생이 되어 느끼는 두려움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공포를 야기하는 귀신이나 괴물들을 보면서 그 공포를 즐거움으로 전환시키곤 한다. 만약 지금 어린 시절의 그 악몽들을 꾼다면 스트레스를 풀며 기분 좋게 일어날 것만 같다. 그 시절의 곰인형이 나를 본다면 나를 괴물로 생각하고 물리치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는 나 같은 사람이 가득한 사회에 기겁하면서 도망치겠지.

 반대로 이야기한다면 악몽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잡아먹고 깔아뭉개고 물어뜯는 존재들로 가득한 이 사회에서 곰인형과 함께 두려움을 막으려면 백만 곰인형 부대는 가지고 다녀야 할 것이다. 설사 그런다고 해도 곰인형 부대는 아무것도 못하고 전멸하고 말 것이다. 이 곰인형 부대에게 가장 절망적인 현실은 상대할 괴물이 많다는 것도, 자신의 주인도 괴물 같다는 것도 아니라 아무도 자신들이 싸워준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오늘날의 현실이니 말이다. 요정들을 믿지 않는 아이들이 늘어날 때마다 요정이 죽는다는 피터팬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렇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작은 곰인형을 달아둔 것은 이 작은 곰인형을 향한 믿음 때문이다. 이 얼토당토않지 않은 믿음이 내게 힘을 주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라는, 보이지도 않는 것을 느끼고, 의지하게 만드는 이 믿음이라는 제6의 감각이 넘어지는 날 일으켜주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적인, 경험적인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느껴지지만 그게 중요한가? 내가 믿고 의지하면 이 곰인형이라는 수호신은 믿음을 연료 삼아 내 안에서 충분히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혹시 모르지 않는가? 이 곰인형이 지금도 내 두려움에 작은 칼을 휘두르고 있을지. 그리고 혹시 모르지 않는가? 지금 두려움 하나를 물리쳤을지.


2.
 아침에 속으로 이 곰인형의 위대함에 대해 열변을 토했건만 오늘 하루도 결국 깨짐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뭐 이리 힘들고 복잡한지. 그래도 이 작은 수호신 덕분에 즐겁다. 이리저리 정신없이 깨진 걸로 봐서 내 작은 수호신님께선 오늘도 완패하신 것 같지만, 고생하는 수호신님의 노력에 의지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조금이라도 더 웃을 수 있는 일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정신없이 쫓아가면서도 작은 수호신님에게 일 좀 하라는 농담이라도 걸 수 있으니, 매일 고생하는 곰인형에게 고맙다고 인사할 수 있으니, 그리고 내일은 꼭 깨지지 말도록 같이 노력하자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언제 한번 친구에게 곰인형 이야기를 했다가 이과생의 본질을 잃어버렸냐는 한마디에 웃었던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이러다가 내 옆에 요정이 날아다닌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내가 이 작은 곰인형을 믿고, 의지하고, 고마워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무슨 생각으로 이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은 내가 이 곰인형을 믿음으로 너무나 많은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겠지.

 집이다. 매일 내일은 잘해보자고 다짐하는 나와 곰인형이지만 오늘도 역시 집에 올 땐 만신창이다. 그래도 수고한 작은 수호신님께 잘했다고 말하면서 쓰다듬는 건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손을 붙잡고 내일은 잘해보자는 다짐을 또 한다. 나와 곰인형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의식이다. 그리고 이 의식이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그리고 내일 다시 웃게 만드는 작은 힘이 되어주겠지. 오늘은 수고한 나와 곰인형를 위해 치킨이나 시켜야겠다.


0.
 치킨을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주인을 보면서 테디베어는 자신의 손을 바라봅니다. 매일 저녁 주인이 자신의 작은 손을 붙잡고 하는 다짐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에 테디베어는 미안하기만 합니다. 물론 오늘도 테디베어는 열심히 싸웠습니다. 주인에게 소리치는 상사에게 있는 힘껏 소리도 질러보고 축 처진 어깨를 향해 달려오는 좌절에도 열심히 두 팔을 휘둘렀지요. 하지만 그들은 테디베어의 공격에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늘 테디베어가 주인을 위해 성공한 일은 지하철에서 주인을 물려는 모기 두 마리를 쫓아낸 것뿐이랍니다. 그래도 두 마리나 쫓아낸건 엄청난 발전이에요!

 하지만 우리의 테디베어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믿어주고, 아무것도 못한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내일도 잘해보자고 다짐하는 주인을 테디베어는 절대 버릴 수가 없으니까요. 매일 지기만 해서 몸도 마음도 지치지만 그래도 계속 싸우다 보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을 거라 믿으니까요. 그리고 언젠가는 그날이 꼭 오겠죠? 이제 테디베어는 밤을 준비합니다. 낮에는 이리저리 치여도 밤에 찾아오는 악몽은 확실히 막을 자신이 있거든요.


[김찬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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