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 모래시계 > : 현대적으로 되살아난 불후의 명작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1.15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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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 모래시계 >


1995년, 최고 시청률 64.5%를 기록하며 국민 드라마로 우뚝 선 드라마 '모래시계'가 22년 만에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22년이면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고도 남는 시간인데다가, 워낙 흥행에 성공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필자가 생각하기에 뮤지컬의 흥행은 모 아니면 도였다. 드라마의 명성을 업고 '역시 모래시계다'라는 호평을 받거나, 이미 낡아버린 이야기와 함께 드라마와 비교되면서 시대에 맞춰가지 못하거나. 명대사도 많고, 메인 OST는 < 모래시계 >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그대로 안고 갈 것인지, 재탄생시킬 것인지에 대한 창작진들의 고민도 깊었을 것이라 생각됐다. 물론, 필자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나기도 전에 방영된 드라마라 섣불리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긴 했다.

첫 공연을 올리기 전, < 아웃사이더 >라는 넘버가 예그린 뮤지컬 어워드에서 축하 공연으로 공개됐다. 이 축하 공연 영상을 봤을 때,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메인 테마 멜로디를 살린 넘버였는데, 앙상블들과 주연 배우가 함께 휘파람으로 그 멜로디를 처리하는데 약간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었다. 액션신은 화려했지만 어딘지 모를 '오글거림'이 느껴졌다. 태수가 세상에 버려진 뒤 반항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는데, 이 드라마의 서사 역시 '남자들의 뜨거운 우정과 정의' 따위를 말하려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명작이라 해도 오래된 작품인 것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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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첫 공연 이후, 예상외의 호평들이 자자했다. 여러 이야기들 중 가장 주목할만한 평가는 '여자 캐릭터'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부분은 뒤에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겠다.

사실 < 모래시계 >를 보러 갈 마땅한 이유는 없었는데, 마침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뮤지컬을 보고 싶어 하시는 눈치셨고, 필자 역시 대극장 뮤지컬을 못 본지 꽤 됐던 차에 좋은 기회였다.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더 공감할 수 있고 좋아할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돼 망설임 없이 예매하게 됐다.

공연은 1막 85분, 인터미션 20분, 2막 65분. 총 170분으로 꽤 긴 편이었다. 하지만 원작 드라마의 길이를 고려하면 각색이 꽤나 고생스러웠겠구나, 싶었다. 태수 역의 김우형 배우는 다른 작품에서 좋게 봤던 적이 있어서 기대가 컸다. 혜린 역의 장은아 배우 역시 전에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서 멋진 실력을 선사했던 적이 있었고, 우석 역의 강필석 배우는 좋아하는 뮤지컬의 OST로 목소리를 자주 접했었다. 두 배우 무대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실력 좋기로 유명한 배우들이라서 실력에 민감한 아버지께서도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관람했다.

본 공연은 < 아웃사이더 > 축하 공연을 봤을 때와 완전히 다른 인상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생각보다 훨씬 세련됐고,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굉장히 잘 담아내고 있었다. 결말과 메시지는 약간 의문을 남기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호好에 가까운 공연이었다. 이제부터 공연 내에서 가장 좋았던 두 가지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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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글 초반부에 취향이 아닌 듯 적었던 넘버에 관련된 부분이 어떻게 호로 바뀔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 극의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하는 넘버 < 스무살 >은 극의 진행을 암시하면서 마무리까지 해주는, 오프닝과 엔딩으로 쓰이기에 적합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극의 초반에 한정된 시간 안에 인물 소개와 상황 설명 등 많은 이야길 풀어나가야하기 때문에 전개가 빠르게 느껴질 수 있었는데, 넘버가 극의 전반적인 속도를 잘 이끌어나가주었다.

< 아웃사이더 >는 어색하게 느껴졌던 휘파람 부분의 안무와 연출이 약간 변경되었다. 그 부분이 변한 것 외에도, 역시 영상으로 접하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앞뒤 상황을 알고 듣는 것도 넘버를 받아들이는 데에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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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 혜린, 우석, 종도, 재희, 도식의 솔로 넘버가 모두 있었다는 점 역시 주목할만했다. 각 캐릭터의 특징과 성격을 잘 살려낸 넘버들은 캐릭터의 깊이를 더해주고, 몰입도를 높여주며―몰입도를 높이는 것은 배우의 역량도 중요하긴 했지만―, 어느 캐릭터 하나 빠지지 않고 비중 있게 다루는 역할을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넘버는 시대적인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세련된 오케스트라 반주로 극이 촌스럽다는 느낌을 전혀 들지 않게 해주었다. 원작이 20년이 훌쩍 지난 작품이기 때문에 대사(가사)에서 당시의 감성이 느껴지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완성도 높은 넘버가 보완해주었다.



2. 여자 캐릭터

극 중 혜린은 원작이 방영되던 당시에 만들어진 여성 캐릭터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취적이고 당당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태수가 "여자치곤 털털하시네요" 라 말하자 "그놈의 여자, 여자 소리 좀 그만하라"며 고기를 굽던 집게로 위협하는 장면은 혜린의 캐릭터가 범상치 않다는 걸 드러냈다. 부잣집 딸이기 때문에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랄 수 있었음에도, 이를 벗어나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혜린은 굉장히 인상 깊은 캐릭터였다. 이러한 여성 캐릭터는 요즘에도 찾아보기 어려운데, 95년도에 이러한 캐릭터가 존재했다는 점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다만 드라마를 보지 못한 터라 드라마와 비교할 수 없는 점은 아쉽다. 이러한 여성 역할이 뮤지컬 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에서 더욱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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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앙상블 역시 남녀 구분 없이 다양한 역할을 맡는 것도 좋은 연출이라 생각됐다. 태수가 속했던 조직의 부두목 역할이 여자 앙상블 배우였고, 조직원들 역시 남녀가 함께 연기했다. 데모를 진압하는 경찰들도 남녀가 골고루 섞여있었다. 대부분의 뮤지컬은 모두 남자 앙상블 배우들을 썼을 법한 역할들에 여자 배우들을 가리지 않고 역할을 부여해준 점에서 정말 큰 박수를 주고 싶었다. 2018년에 남녀로 직업적인 부분에서 역할을 나누는 것은 역시 시대착오적인 부분이고, 이를 잘 잡아내서 반영했다고 여겨졌다.

*

이 외에도 무대 장치와 조명은 공간을 알차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당시 사회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장면들과 극의 내용도 굉장히 좋았다. 24부작의 드라마를 3시간 안에 압축하면서도,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만든 것 역시 대단한 부분이었다. 원작의 좋은 재료를 가지고 현대적으로 잘 풀어나간 작품의 성공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요즘에 만들어지는 극 중에도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극들이 많아 아쉬움이 많았는데, 20년 전의 작품으로 이렇게 세련된 공연을 만들어 낸 제작진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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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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