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 당장 하고싶은 일, 영화 귀를 기울이면 [영화]

글 입력 2018.01.1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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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귀를 기울이면’은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무려 내가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영화로, 아주 어렸을 때 언니와 함께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본 기억이 난다. 꼭 한 번 다시 보고싶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니 그 때와는 새로운 느낌과 의미로 다가왔다. 주인공 ‘츠키시마 시즈쿠’는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 가사 쓰기와 글짓기도 좋아하는 평범한 중학생 소녀다. 중고등학생 때쯤 나 역시 책상에 앉아 일기 쓰기를 좋아하고 ‘작가’라는 단어에 가슴 설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그 때보다 책도 가까이 하지 않고 상상을 글로 마음껏 펼쳐본 지도 오래된 것 같다.

 도서관이 닫혔는데도 학교 사서 선생님께 문을 열어 달라고 조르는 시즈쿠를 보며 내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도서관에 찾아와 책을 자주 읽는 것을 눈여겨본 선생님이 아예 도서관 열쇠를 주시며 네가 도서관을 관리하라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였다. 교복을 입은 아버지가 도서관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신나게 책을 읽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너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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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즈쿠는 시립 도서관에 근무하는 아버지께 도시락을 전해드리는 심부름을 하다가 뜬금없이 지하철에 탄 고양이를 발견한다. 호기심에 고양이가 가는 방향을 쫓아 따라간 시즈쿠 앞에는 이름 모를 멋진 가게가 나타난다. 가게 안에는 마치 사람같은 고양이 신사 인형이 놓여있어서 잠시 인형에 시선을 뺏긴 시즈쿠는 가게 주인인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는 시즈쿠에게 신기한 벽시계를 보여 주는데 나무로 된 시계가 작동되는 장면이 너무나 예쁘다. 지브리 그림체 특유의 따뜻한 색감과 신비로운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장면이다.

 시즈쿠가 내내 궁금해 하던, 항상 한 발 먼저 도서카드에 이름을 적는 사람의 정체는 바이올린 장인을 꿈꾸는 '아마사와 세이지'라는 같은 학교 학생으로, 알고보니 신비로운 가게의 주인인 할아버지의 손자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티격태격 다투지만 노래와 책이라는 같은 공감대를 나누며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각자의 꿈을 나누며 서로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이가 된다. 어느 날 친구 문제로 우울해져서 닫힌 가게에 찾아온 시즈쿠를 세이지가 발견해 데리고 들어와 주는데, 시즈쿠의 부탁으로 세이지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시즈쿠는 노래를 부르고 중간에 악기를 가져와서 합류한 할아버지와 두 친구가 다 함께 화음을 맞추는 장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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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시즈쿠의 세계에는 독서, 호기심, 창작 욕구, 진로 고민, 친구 관계, 학교 생활, 가족 등 여러가지 키워드가 있다. 언어를 다루는 일을 좋아하는 이러한 시즈쿠의 앞에 나타난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인물들은 영감과 상상력을 가져다 주고 또 다른 시즈쿠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세이지는 꿈이 확고하고 그 꿈을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확실히 품고있는 아이다. 이미 진로를 결정해 나아가려 하는 세이지를 보며 시즈쿠는 부러워 함과 동시에 풀이 죽는다. 시즈쿠는 세이지를 의식하기 시작하며 ‘수준 차이가 난다.’, ‘나보다 훨씬 잘하는 아이다’라는 말들을 뱉어낸다. 순수한 응원보다는 비교를 하고, 자격지심을 갖는 모습이 스스로를 보기보다 자꾸만 남을 보는 내가 겹쳐졌다.

 그러나 시즈쿠는 이내 세이지에게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 가게에서 본 고양이 인형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쓰기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한다. 비교에서 머무르거나 건강하지 못한 자기 혐오로 이어지지 않고 ‘나도 해보겠다’고 외치는 점은 시즈쿠라는 캐릭터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자극을 받아 하고싶었던 일을 시작하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시즈쿠는 잠시 소설을 쓰느라 학업에 소홀해지기도 하지만 막무가내로 공부나 학교, 가족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중학생 소녀가 굉장히 기특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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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하고싶은 건 많은데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내게 아는 동생이 시간 들여 계획할 생각도 말고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을 하라고 해 준적이 있다. ‘그냥 하면 된다'는 간단한 법칙이 사실 제일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나 목표를 바로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건 나한테는 굉장히 많은 시간과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글을 꾸준히 써야겠다고 생각만 하며 많이 못 썼던 내가 지금 이 순간 주제가 있는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좋다. ‘내가 해봤자 얼마나 할까?’ ‘완벽하게 못 하면 어떡하지?’라는 물음은 어떤 일을 하기도 전에 앞을 가로막는 흔한 질문들이다. 시즈쿠 또한 첫 번째 독자가 되게 해달라는 할아버지의 부탁에 자신이 완벽하게 쓰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내색을 보인다.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완벽하길 기대하면 더 어려운 법이지.’라고 말하며 에메랄드 원석이 들어있는 돌 하나를 꺼내와 시즈쿠에게 건넨다. 첫 도전인 소설 쓰기를 자신 속에 들어있는 원석을 발견해 시간을 들여 연마하는 과정이라고 비유하며, 시즈쿠의 잠재력을 북돋워준다.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는 세이지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할아버지가 하는 대사는 마치 지금의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진심으로 감동 받았고 영화 후반부터 마음에 깊게 와 닿고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할아버지같은 분을 멘토로 삼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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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져 있는 길로 가지 않을 때 네비게이션에서는 ‘경로를 이탈했습니다’라는 음성이 나온다. 이처럼 때로는 누군가가 혹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일반적인 인생의 흐름이 같아지길 원해서 조금 다르게 사는 사람에게 이를 강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을 할지와 하고싶은 일을 하는 시기는 결국 스스로 정하는 게 가장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싶은 일’. 우리는 누가 정해 놓은 건지도 모를 수많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다가 하고싶은 일을 기억에서 잊고, 멀리 떠나 보낼 수도 있다. 시즈쿠는 자신을 시험해 보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소설을 완성해낸 뒤 더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두 달 간의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세이지와 만나 또 다른 꿈을 약속한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도와줄 수 있는 관계가 있다는 건 참 소중한 것이다.

 꿈에 대한 고민, 미래와 진로에 대한 막연함은 이미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충분히 가져봤지만 이에 비해 꿈과 야망을 추진하는 힘과 실질적인 노력이 약해서 나를 키워낼 거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경험도, 공부도, 살아가며 만나는 이와 풍부한 대화를 만들어 나갈 배경지식도 너무 적어서 올해는 정말로 진지하게 무엇이든 준비해보고 싶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두려워서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잡고 싶다. 거침없이 원고지에 소설을 써내려 간 시즈쿠처럼 올해는 조건을 재고 따지거나 부정적인 질문으로 가로막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가자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성숙시키는 게 목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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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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