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모든 것의 시작은 오직 사랑입니다." 연극 '발렌타인 데이(Valentine's Day)'

글 입력 2018.01.03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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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은 오직 사랑입니다'
연극 '발렌타인 데이'

일 시
2017년 12월 23일(토) ~ 2018년 1월 14일(일)
(수․목․금 8시 / 월․주말․공휴일 3시 / 화 공연 없음)

장 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출․번역
김종원

출 연 자
정재은, 이명행, 이봉련, 최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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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발렌타인 데이' 프로그램 북 ⓒ아트인사이트



그 때(시간)에 대한
논리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그 때에 대한 논리는 없습니다.

논리적인 방법으로
시간을 설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두 가지만 있습니다.
: 사랑 그리고 사랑

-아랍 철학자 코 알 무산 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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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공동주택을 배경으로 한 '발렌타인 데이' 무대 ⓒ아트인사이트


 이반 븨르파예프의 에피그라프(주제를 담은 인용문)에 쓰여 있는 이 문장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사랑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시간을 말하며, 사랑의 형이상적 위력에 대해 강조한다. 연극 ‘발렌타인 데이’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직 ‘사랑’에 대해 노래하는 연극이다. 하지만 오직 사랑뿐인 주제는 사랑 따위는 믿지도 꿈꾸지도 않으며 이에 대해 지나치게 무감각해진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시금 사랑의 가치를 일깨운다. 사랑, 그리고 사랑을 노래하는 연극 ‘발렌타인 데이’는 오는 1월 14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계속된다.
 


순간의 설렘, 사랑이 되어 영원한 잔상을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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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60번째 생일에 지난 사랑을 떠올리는 발렌티나 ⓒ아트인사이트


 사랑의 전개 구조는 참으로 이상하다. 그것의 전개는 순행도 역행도 아닌 가장 진실했던 순간으로부터 비롯된다. 사랑을 떠올리면 함께했던 시간이 제일 우선하고, 점점 멀어져가는 헤어짐의 순간은 아득한 과거 혹은 미래로 넘겨둔다. 그렇기에 과거-현재-미래라는 통상적인 시간의 흐름은 사랑 앞에서는 고리타분하기 그지없다. 또한, 사랑은 시간의 구성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파괴하기 때문에 시간적 비약이 상당하더라도 어느 시점에 갑자기 등장하여 일상의 시간을 흔들어 놓을지 모른다. 순간의 설렘은 환상이 되어 사랑이란 영원한 잔상을 남긴다. 남겨진 잔상은 그 여운이 너무나도 짙어 청춘의 남녀를 평생토록 따라다니면서 괴롭게 만들고 그리움과 아쉬움의 바다에 빠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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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사랑을 인해 갈등을 겪는 발렌티나와 까쨔 ⓒ아트인사이트


 미치도록 좋았거나, 지독하게 슬펐거나.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순간이 있고, 당장에라도 지우고 싶은 순간들이 존재하곤 한다. 순간은 추억이 되어 살면서 문득 등장하곤 하는데, 그때의 시간은 오로지 기억에 의한 것이라서 보편적인 시간과는 전혀 다르다. 연극 ‘발렌타인 데이’는 보편적인 시간의 흐름을 완벽하게 무시하며 사랑의 순간에 따라 철저하게 진행된다. 그러면서 오직 사랑에 의한, 사랑만이 남아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실재와 허구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극은 발렌티나의 60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까쨔가 생일 케이크를 들고 와 축하해주는 장면으로 시작을 하는데, 그러던 찰나에 발렌티나가 지난 세월 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랑의 추억과 상처가 있고 극 중 인물들에게는 서로가 사랑의 추억이자 상처로 존재한다.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추억과 상처로부터 인물 간의 대립도 일어나고 ‘진실한 사랑’에 대한 강렬하고 집요한 통찰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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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렌티나의 환상 속에서 화해하는 발렌티나와 까쨔 ⓒ아트인사이트


 사랑으로 인해 기쁨, 슬픔, 분노가 한 공간에서 여러 인물에 의해서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나는 ‘발렌타인 데이’다. 보이지 않는 감정을 어떻게 극으로 표현하는가는 ‘발렌타인 데이’가 풀어야 할 숙제이자 선보여야 할 도전으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발렌타인 데이’는 보여주려 했고, 성공적으로 ‘진실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특히 배우의 연기와 무대연출이 백미를 이룬다. 먼저 배우의 연기다. 눈에 보이지도,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사랑’에 대한 감정은 무대 위에서 온전히 세 배우의 열연을 통해서 표현된다. 발렌티나와 발렌타인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 그로 인해 까쨔에게 평생토록 드는 미움과 발렌틴에 대한 애절한 마음. 너무나도 자연히 마음에 들어왔고, 어쩔 수 없이 이뤄지지 못했기에 발렌티나는 한평생 발렌틴에 대한 애수를 안고 살아간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서도 영원히 사랑을 꿈꾸고 그리워하고, 또 그로 인해 여생을 살아가는 발렌티나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만이 영원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과 사랑으로부터, 삶으로부터 도피하려는 까쨔의 태도를 통해서 사랑의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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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꽃과 낙엽을 통해서 시간의 흐름은 표현된다. ⓒ아트인사이트


 극 중에서 중요하게 표현되어야 하는 요소는 당연히 시간에 관한 흐름이다. 하지만 무대에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의 분리라던가 도구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는다. 발렌티나의 방에서 어떻게 과거의 시간이 펼쳐지고 잊힌 순간들이 되살아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극 중 여러 장치에 의해 해소된다. 눈꽃 비와 잎이 떨어지면서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가 하면, 무대 전반에 물결 영상을 투영시켜 수영장에서 헤엄치던 지난날을 그려낸다. 하물며 극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함몰되는 무대를 통해서 극 중 인물들이 느끼는 분노와 절망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황금마스크상 수상에 빛나는 시노그래퍼 알렉산드르 쉬시킨의 작업물로 ‘발렌타인 데이’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무대연출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다가왔다. 제한된 공간에서 상상 그 이상의 시공간 변화를 선보이는 ‘발렌타인 데이’다.
 


러시아 연극의 오늘을 말하다


 한국 초연을 선보인 ‘발렌타인 데이’는 이반 븨릐파예프가 2009년 독일 햄니츠 시극단의 의뢰로 창작한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을 두고 일견에서는 ‘21세기 러시아 연극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러시아 현대극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 한 ‘발렌타인 데이’다. 이반의 작품이 많은 관객의 관심을 받는 것은 러시아 현대사 속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사건과 그 속의 갈등을 정교하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발렌타인 데이’에서도 극 중간에 고르바초프에 관해 대사가 나오거나, 그 당시 러시아의 사회상을 암시하는 장소와 인물들이(공동주택, 모스크바 수영장 등)등장한다. 사랑이란 흔한 주제를 가지고도 ‘발렌타인 데이’가 여러 나라에서 애정을 응답받을 수 있던 까닭에는 통속극이라는 장르를 벗어나 동시대를 바라보고 오늘을 이야기하는 동시대 극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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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무대 효과를 선보이는 '발렌타인 데이' ⓒ아트인사이트


 또한, 이제껏 국내의 연극계에서 러시아 연극이라 하면 주로 고골, 고리키, 푸시킨 등 고전 작가의 작품이 자연스레 연상되어왔다. 이러한 흐름을 비추어 보았을 때, 이반 븨르파예프라는 러시아의 현대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은 고정된 러시아 연극에 대한 환기를 가져다줌을 의미한다. 소비에트 시대의 희곡을 번역하여 출간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동시대 극작가의 작품을 공연하기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던 연극계에 있어 상당한 성과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발렌타인 데이’가 지니는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실과 꿈속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색다른 구성과 연극 언어를 선보이는 것은 물론, 기존의 고전 연극과는 다른 색다른 구성과 연극 언어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발렌타인 데이’를 통해서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의 문학과 예술은 물론, 근현대의 생활상까지도 별 어려움 없이 자연스레 접할 수 있다는 데 있어 작품의 시의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즈음에서 진정한 사랑의 가치와, 러시아 동시대 극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연극 '발렌타인 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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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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