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님아 BL 보쉴? 동인녀에 관한 단상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12.3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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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처녀’, 벨베데레박물관, 1850년, 캔버스에 유화, 프란츠 아이블..jpg
독서하는 처녀’, 벨베데레박물관, 1850년
캔버스에 유화, 프란츠 아이블. 



[Opinion]
님아 BL 보쉴? 동인녀에 관한 단상


오늘은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것은 글을 읽는 당신뿐만 아니라,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마찬가지라서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어조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술자리에서 응큼한 이야기를 할 때 괜히 목소리가 장난스러워지지 않는가? 여기까지 읽은 당신이라면, 그런 하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시작하려 한다. ​내가 중학생일 때는 남자아이들이 엮이는 BL 장르가 유행했었다. 당시 우리들 사이에서 'BL'이라고 하면 보통 남자 둘이 엮는 보이즈러브를 지칭했었다. 보이즈러브, 오메, 그 요상꾸리한 문화. 허리가 그냥 튕겨 오르는게 아니라 '활처럼' 휘어대고 하얀 피부가 '도자기'가 되는 그 세계. 만화 속에 존재하는 남자아이들은 얼굴은 천사, 몸은 다비드였다. 그런 장르를 즐기는 사람들을 '동인녀'라고 불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훌륭한 동인녀였다.

하지만 동인녀의 1원칙은 늘 '일반인 코스프레'였다. 이런 것들을 보는 것은 늘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팬픽을 들키자마자 보았던 엄마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나쁜 기억은 잊어도 부끄러운 기억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철없을 적 기억은 아직도 남아 끊임없는 무릎반사를 일으킨다.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면 이불에 구멍을 100개가 뚫려도 부족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나와 같은 나이에 똑같이 야한 걸 보는 남자애들은 지들끼리 있을 때 신음소리를 내면서 놀고, 맨날 TV에서는 장난스럽게 남자는 짐승이니 야동을 지우니 마니 하는데, 똑같이 불같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여중생들은 MP3 파일에 넣어 몰래몰래 즐기느라 바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기준이긴 한데, 그때 BL을 즐겨보던 친구들 사이에서 남자랑 여자랑 하는 건 뭔가 망측한 일이었다. 그때의 우리가 남자애들 둘이 나와서 시시덕 히히덕 거리는 것을 즐겨봤던 것도, 어쩌면 '야동 보는 여자'가 뭔가 쪽팔린 것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냥 이상형+이상형=더블 이상형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어떤 것이 더 영향을 미쳤건을 떠나서, 의외로 남녀공학을 정상적으로 다닌 나한테 전자가 더 와닿았었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고, 지금 말하면 60년 전 시대를 한탄하는 할머니처럼 보이겠지만, 그때 소녀들은 "호호 야한 거 몰라용~"이 요구되었다.

나는 실제로 경험한 것이 있어서, 이런 판단이 내 추측이나 과잉 일반화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당장 우리 부모님이 동생이 야동을 들켰을 때랑 내가 남자 선배와 후배가 뜨거운 우정을 나누는 소설을 들켰을 때 반응이 틀렸다. 동생이 이상한 애니메이션을 들켰을 때 부모님은 장난스럽게 "녀석! 남자가 되었군" 라고 반응했다. 하지만 내가 중학생 3학년 때 소설을 들켰을 때는, 부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날 밤 '천사점토'를 선물해주셨다. 부모님은 "너의 욕망을 이것으로 풀렴."이라고 말했다. 왜 어머니는 그때 얼굴을 찌푸렸으며, 하필 지점토도 아니고 '천사'점토여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그때의 민망함과 폭발은 정말이지, 지금 그것을 떠올리고 타자기를 쳐서 지면에 옮기고 있는 내 손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씁쓸한 일이다. 왜 동생의 욕망은 이해가 가면서 내 욕망은 이해가 될 수 없어서 '정화'되어야 하는 것으로 취급되어야 하는 걸까? 나는 우리 부모님이 BL이 아니라 야동을 찾아내는 상황을 상상해본다. 내 생각에는, 부모님이 화를 내셨을 것 같다. 여성한테 BL은 남성의 여러 야동 취향처럼 한 장르의 욕망일 뿐인데, 왜 그것은 늘 부끄러운 것이 되어야 했을까? BL은 생각보다 많은 여성에게 즐거움을 주는 장르다. BL은 여성이 가진 욕망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장르를 오롯이 '동인녀'라는 단어로 정의해 집단화시키고 놀림거리로 만든 것이 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한 욕망의 표현이었을 뿐이지, 어떤 집단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나이가 들고 더 큰 세계를 봐버린 나는, 현재 BL을 그리 즐겨보지는 않는다. 내가 그 세계를 조금씩 줄여가는 동안 시대는 반대로 바뀌어나갔다. 퀴어 퍼레이드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오늘날, '브로맨스'나 '걸크러쉬'는 퀴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관객들을 저격하는 하나의 코드로 자리잡았다. 처음에는 브로맨스라는 단어가 BL의 판타지가 그러하듯, 실제 퀴어를 왜곡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사실 같은 이유로 BL을 멀리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굳이 '게이'라는 이유로 판타지가 제거되어야 하는 지하는 의문이 든다. 이성애자 커플이 TV에서 온갖 판타지를 수용하는 것처럼, 그들의 사랑도 여러 판타지를 가질 수 있다. TV에서 소비되는 게이의 이미지가 현실과 괴리가 있어도 그런 판타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동성애가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고 녹아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이 편견을 지우는 것은 익숙함을 토대로 시작된다.

여러 맥락으로 BL을 좋아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왜냐면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판타지면서, '동인녀'가 아니라 한 사람이 가진 욕망과 판타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BL이 아니라 한 사람과 한 사람간의 이야기로서의 그 장르를 좋아한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는 그 개인의 육체가 중요한 거지, 그 육체의 사회적 정의가 중요하지 않다. 아직도 웹툰을 보다 'BL'이라는 장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슬쩍 눌러보는 나는 이제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에게 그 작품을 추천할 수 있다. 그건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BL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좋은 작품 있으면 추천해줘야 겠다. 나는 근미래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그 날을 꿈꾼다. "님아, BL보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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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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