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가의 삶 < 마리로랑생展 >

글 입력 2017.12.31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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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삶


남성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근현대 미술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긴 여성 화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여느 때보다 설레었다. 가장 가시화 되었으나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억압 받아온 소수자인 여성의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들이 호기심을 자아냈고, 무엇보다 여성으로서 나는 이미 그에게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대와 묘한 긴장감을 품은 채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서 마리 로랑생의 작품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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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슬펐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검은색과 흰색이
주조를 이룬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아주 천천히 분홍색과 푸른색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말>은 전혀 다른 두 세계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이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아름다운 이상의 세계를 그가 색채로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뚜렷이 나타낸다. 1차 세계대전, 독일인 남편과의 불화를 겪던 시기의 작품들은 이처럼 짙은 그레이와 블랙을 배경으로 사용하여 암울하던 당시 시대와 환경을 대변해준다. 동시에 핑크와 블루를 대립항으로 세워 그의 내면에 침잠해있던 희망을 암시한다. 어두운 그레이를 바탕으로 분홍색과 파란색의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려낸 <춤> 역시 동일한 기법이 사용되었다.

색감 외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표정 또한 특징적이다. 이들의 얼굴에 표현된 그림자는 명암이 두드러져 마리 자신이 느꼈을 절망, 불안하고 위태로운 감정을 투영해낸다. 특히 <종려나무 아래의 젊은 여인>앞에서 나는 한참을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파란 옷을 입은 여성의 절망스러운 무표정이 마리의 부서진 자아를 대변하는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마치 100년 전의 마리 로랑생과 현재의 내가 시공간을 초월해 오롯이 마주한 순간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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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 남편과의 이혼 후 고향인 파리로 돌아가게 된 마리의 화풍엔 변화가 일어난다. 자신을 괴롭게 하던 현실세계에서 안정을 찾자 그레이와 블랙 대신 초록색과 핑크, 블루를 사용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시작한다. 여성들의 얼굴 역시 둥근 곡선으로 이루어져 부드러움이 강조되었다. 또한 초기 작품부터 이어지던 여성들 간의 유대, 역사적인 여성 인물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했던 그의 방식도 선명해져갔다. 망명 시기와 파리에서 전성기를 맞게 된 시기. 이 시기는 그녀의 인생과 예술세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다른 어느 시절보다 극적으로 다가와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후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며 여성작가로서의 정체성과 화법을 확립했던 마리 로랑생. 그의 혼란하고 고독했던, 때로는 찬란한 영광이 함께했던 삶의 과정을 나는 느릿한 발걸음으로 체험했다. 매끄럽게 이어지던 전시 구조는 그와의 공명을 더욱 쉽게 이끌어주었다. 이제 나에게 마리 로랑생은 마리 로랑생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던 이 예술가의 이름 앞에 필요한 수식어가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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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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