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서울 미술관《불후의 명작;The Masterpiece》展

글 입력 2017.12.2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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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에 초대받은 전시는 바로 불후의명작 전시 입니다.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의 저력은 전통이 있다" 는 서울 미술관의 이념 아래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까지 시대의 난고를 그림을 통해 극복했던 근현대 화가 7인을 선정해서 소개 하는 전시 입니다.

서울 미술관 소장품 중 7일을 대표하는 걸작을 엄선하여 100년의 시간이 지나도 살아받는 불후의 명작을 소개 하여 그들의 통찰력, 한국 미술이 가진 힘을 소개 하고 한국의 근대사를 거쳐 치열하게 살았던 우리 민족의 강한 정신력을 확인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입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불후의 명작이 시사하듯이 우리 근현대 미술 대가들의 남다른 통찰력과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구성하여 이번 전시는 거장들이 이뤄낸 예술적 성취와 후대로 이어질 예술혼을 드러냅니다.

 
포스터_불후의명작.jpg
 

이번 전시는 50여점의 걸작들로 한국 근현대미술이 걸어온 역사적 발자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문화유산 입니다. 19세기엔 서구의 양식이 도입 되기 시작하였고 미술계는 전통양식을 폄하하고 서구양식을 무차별적으로수용하는 자세가 심각한 양상으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쳐 우리 민족정신을 말할 하고자 했던 일본의 강압은 미술에까지 퍼지게 됩니다. 일본풍 뿐만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서양의 미술을 받아들여야만 하던 시대적 상황은 우리 근대 미술의 비극적 출발이 됩니다.

이런 시대의 불운 속에도 맹목적인 서양 미술만을 담아낸 사람이 아니라 한국적인 소재와 기법을 활용하여 우리 고유의 정신을 작품에 담아 내고자 했던 화가들 입니다.

이런 화가들의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이 있었기에 굳건히 지켜온 전통 양식과 새로운 서구의 양식이 서로 갈등하는 과정에서 우리 고유의 근현대 미술이 탄생할 수 있었고 이는 후대의 많은 화가들에게영향을 주며 이어져 내려옵니다.


불후의명작_입구.jpg
 

이번 전시에는 유영국, 박수근, 이중섭, 천경자, 도상봉, 김환기, 김기창 작가가 나옵니다. 작가에 대해 한번 배워보고 가면 훨신 전시를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유영국(劉永國) (1916-2002)


“추상은 말이 없다. 설명도 필요 없다. 보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내가 그린 건 구체적인 대상의 자연이 아니라 선과 면, 색채들로 구성된 추상 형태의 자연이다.”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1930년대 동경문화학원에 진학하여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동경에서 가장 전위적인 미술운동이었던 추상미술을 수용한 유영국은 1947년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등과 함께 한국 최초 추상미술그룹이었던 ‘신사실파’를 창립하였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유영국은 산을 그린 것이 많아 ‘산의 화가’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닌, 기본적인 조형 요소인 점, 선, 면, 색, 형을 기반으로 고향 울진의 깊은 바다, 장엄한 산맥, 계곡, 붉은 태양 등을 추상적으로 표현하였다. 한국의 전위적인 미술단체를 이끌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유영국은 2002년 타계할 때까지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작업실에서 작품 제작에만 몰두했고, 평생 400여점의 유화 작품을 남겼다.


미석 박수근(朴壽根) (1914-1965)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그리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가장 즐겨 그린다.”


1914년 강원도 양구 부유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수근은 프랑스 화가 밀레의 <만종>(1857-59)을 보고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그러나 부친의 사업실패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일본 유학의 꿈을 포기한 채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18세가 되던 해 <봄이 오다>(1932)로 제 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이를 계기로 그는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던 박수근은 자신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일상 풍경을 화폭에 담으며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그리고자 했다. 표현에 있어서는 일본의 색채기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의 옛 석탑과 석불을 연상시키는 화강암의 표면과 같은 마티에르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창조해냈다.


대향 이중섭(李仲燮) (1916-1956)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전 세계에 올바르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 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이라오.”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화가 이중섭은 재료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과 양식을 창안해낸 화가이다. 일본 유학시기부터 남다른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던 이중섭은 ‘소’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일반적으로 소는 눈망울이 선하고 순한 동물로 알려졌으나, 이중섭 그림에 등장하는 소는 힘이 있고 거칠게 표현되어 있다. 자신의 고통스런 삶과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우리 민족 수난의 역사를 ‘소’에 담아낸 것이다. 이중섭은 40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외로움과 가난에 시달려야 했던 고독한 화가였지만, 현재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자 가장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화가이다.


천경자(千鏡子) (1924-2015)


“현실이란 슬퍼도, 제 아무리 한 맺힌 일이 있어도 그걸 삼켜 넘겨 웃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나는 그림 속에 담으려 한다.”


‘한의 화가’, ‘꽃의 화가’라 불리는 천경자는 오늘날 한국 채색화의 기틀을 마련한 화가이다. 전남 고흥에서 자란 천경자의 본래 이름은 천옥자였으나 일본 유학길에 오른 후 ‘경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불렀다. 1942-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며 화가로 데뷔하였고, 이후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자신의 한스러운 마음을 담은 35마리의 뱀이 그려진 <생태>(1951)를 출품하여 화단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한국화의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한 천경자는 해외여행이 흔치 않던 시절에 세계 각지를 누비며 이국적인 인물화와 풍경화를 그렸다. 주로 꽃과 여인을 소재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던 천경자는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꿈과 원시적 낭만을 화려한 색채로 담아냈다.


도천 도상봉(都相鳳) (1902-1977)


“추상주의인가 하는 미술만 제일이오? 어느 시대나 새로운 조류는 있는 것이요. 그러나 조류의 주축이 되는 전위라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후위를 위한 것 아니겠소?”


한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서양화가 도천 도상봉은 백자(白瓷)나 라일락을 소재로 한 정물화와 풍경화를 통해 한국적 정서를 사실주의 회화로 확립한 화가이다.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였으나 당시 동경미술학교 출신들이 활약하고 있던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 사람을 황민화 시키려는 문화정책인 선전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였다. 줄곧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던 도상봉은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 및 심사위원이 되면서 교편을 내려놓고 작품 제작에 몰두하였다. 화려한 기법이나 자극적인 소재보다는 차분한 색조와 부드러운 필치로 조선의 백자를 그리며 한국 고유의 조형미를 표현하고자 했다. 


수화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저항의 정신이란 결코 침울하다거나 우울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현실을 극복하는 정신, 내일로 향하는 정신이라면 태양처럼 밝고 강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화가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낙천가이다.”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김환기는 한국 서정주의를 서구의 모더니즘에 접목시킨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이다. 1913년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도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1930년대에 일본 동경으로 유학하여 당시 전위적인 활동의 하나였던 추상미술을 시도한다. 그는 강, 산, 달, 구름 등 우리 자연의 모습과 백자 항아리, 목가구 등 전통 기물에 담긴 아름다움을 점, 선, 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추상미술로 구현하였다.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교육자로서도 남다른 능력과 소명의식을 겸비한 화가였으나 자신의 새로운 예술세계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고자 파리와 뉴욕을 아우르며 국제적인 화가로 활동하였다.


운보 김기창(金基昶) (1913-2001)


“나는 세상의 온갖 좋고 나쁜 소리와 단절된 적막의 세계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나는 소외된 나를 찾기 위해 한 가지 길을 택했다. 그것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며, 나는 화가가 되었다.”


1913년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태어난 운보 김기창은 8살에 장티푸스로 인해 귀 신경이 마비되어 영원히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김기창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소개로 이당 김은호의 제자가 되어 전통회화와 채색화를 배웠다. 1931년 제 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판상도무>(1931)로 입선하고 연이어 선전에 입선하며 유명 화가의 반열에 오르고, 한국 전쟁 중에는 피난 생활을 하며 예수의 일대기를 한국인의 모습으로 그린 성화 30점을 완성하였다. 청각 장애를 극복하고 인물, 화조, 청록산수, 민화풍의 바보산수, 현대적 풍속도, 추상적 이미지까지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구현한 김기창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센터를 설립하는 등 장애인을 위한 복지사업에도 앞장섰다.


근대 화가에 대해선 잘 몰르기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 어떤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배우게 될 것인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깁니다.
 

[박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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