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일의 행복,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영화]

담담하기 때문에 비극적이고, 당당했기 때문에 희망적인 영화
글 입력 2017.12.2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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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어떤 영화로 받아들일지 고민했다. 본인의 부당 해고를 막기 위해 동료들을 설득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노동영화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내일을 위한 시간>은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노동영화와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다른 노동영화를 잠시 예로 들자면, 켄 로치의 <빵과 장미>, 부지영의 <카트>를 언급할 수 있겠다. 이 둘은 부당 해고나 불공평한 취급을 당하는 것에 대해 항쟁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내일을 위한 시간> 역시 부당 해고에 대응하고, 이를 설득하기 위해 동료들을 만나는 내용이니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성격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같은 노동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앞서 말한 두 영화는 감정을 토로하고 부당함을 고발하며 그들의 권리를 쟁탈하려 소리친다. 주인공과 동료 모두가 말이다. 하지만 산드라는 위치부터가 사뭇 다르다. 산드라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와 동일한 노동자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반장이 이 영화에서 산드라의 적이지만, 반장은 사실상 마지막에 드러나니 산드라가 만나러 돌아다니는 16명의 사람들 중 산드라의 복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시적인 적대자다. 하지만 적대자들이 적대자라 보기 어렵다.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법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산드라는 그들을 다만 설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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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에 투쟁의 성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산드라가 하는 투쟁은 ‘자기 자신과의 투쟁’이다. 동료들을 만나 설득하며 느끼는 자괴감과 우울감과의 투쟁. 그리고 그 투쟁의 피로는 카메라에 사실적으로 담긴다.

영화에는 외재적 사운드가 거의 쓰이지 않았다. 산드라를 담아내는 시선 역시 극적인 연출보다는 다큐멘터리와 닮아있다. 주인공의 감정을 사운드나 연출로 끌고 와 관객들에게 호소하기 보단, 산드라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적 묘사는 산드라에게 일어난 일들을 더 비극적이고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이런 묘사는 산드라가 안정제 한 통을 한꺼번에 먹는 장면에서 더 와 닿는다. 이 장면은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웅장함이나 진지함, 극적인 연출이 따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약을 손바닥 위에 쏟아붓고 그대로 삼켜내는 산드라의 모습을 담았을 뿐이다. 심지어 미디엄쇼트로 산드라의 표정을 부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기 때문에 더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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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에 등장하는 동료들은, 동료와 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그러나 산드라를 적 취급하는 동료들도, 여전히 적대자라 보기는 어렵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사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갚아야하는 빚이 있거나, 마당 수리를 해야 하거나, 아이를 키워야 한다. 그러나 저마다 다른 사정에도 불구하고 16명이라는 직장 동료들과 산드라는 만날 때마다 비슷한 대사를 나눈다.

1) 천 유로를 뺏고 싶진 않아.
2) 내가 계속 일할 수 있게 나한테 투표해줬으면 해. 월급이 있어야 생계를 꾸려갈 수 있어.
3) 강요하고 싶진 않아. 너도 보너스가 필요할테니까.

이 말들이 주로 산드라가 하는 대사라면, 대부분의 동료들이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4) 보너스 포기한다는 게 몇 명이야?
5) 너를 반대한 게 아니라 보너스를 택한 것 뿐이야.

특히 4)의 말은 보너스를 선택하든, 산드라를 선택하든 공통적으로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마치, “만약 보너스를 택한 사람이 더 많다면 조금은 덜 망설여지겠지.” 혹은 “만약 산드라를 택한 사람이 더 많다면 조금은 덜 망설여지겠지.”라는 태도 같다. 투표라는 제도는 민주주의가 선택된 이래로 계속 진행되어온 시스템이지만, 사실 ‘과반수’라는 이름 아래로 무책임이 흘러 다니고 있다. 4)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이러한 무책임을 무의식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반복 속, 산드라는 설득이라는 자기 투쟁을 계속 해나간다. 그리고 그 투쟁의 기록은 과연 지루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더 담담한 스케치로 더 울컥할만한 무언가를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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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을 위한 시간
내일을 위한 시간


놀랍게도 이 영화의 원제는 <내일을 위한 시간>과 굉장히 멀다. 바로 < Two Days One Night >이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1박 2일’이 되겠다. 과연 산드라가 버텨야만 했던 가장 긴 1박 2일이니 내용과 퍽 어울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동명의 예능 프로그램이 굉장히 유명한 까닭과, 한글이라는 특수한 언어의 신비감을 사용해, 감독들에게 허락을 받은 후 제목을 바꿔 배급했다고 한다. 바로 <내일을 위한 시간>, 그리고 <내 일을 위한 시간>이다. 많은 영화들이 수입 중 제목이 바뀌지만, ‘내일을 위한 시간’은 원제도, 새로운 제목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새로운 제목은 산드라가 복직하기 위해 할애해야 했던 시간의 가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영화를 다 보고 나왔을 때 우리는 ‘내일’이라는 단어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된다. 산드라의 말 - “남을 해고시키고 내가 복직할 순 없어요.”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은 우리에게 자본의 이기주의가 연대의 아름다움에 어떻게 무릎 꿇게 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어떤 결과든, 주말동안의 행적은 산드라에게 내일의 행복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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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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