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왜 피로할까?, '피로사회' [문학]

글 입력 2017.12.2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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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질병이 있다'고 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질병의 원인을 탐구한다. 여러 철학적 개념을 담고 있기에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내게 어떠한 자기계발서, 에세이보다 더 큰 위로를 주었다.





저자는 현재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것이 '신경증적 질병'이라고 말한다. 박테리아 혹은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성 질병과는 다른,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같은 병 말이다. 우울증은 '현대인의 질병'이라고도 한다. 전염병으로 수십만 명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대신 시작과 끝이 불명확한 크고 작은 정신질환을 앓게 된 것이다.

전염성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 속에 침투하려는 바이러스, 즉 '나쁜 것'을 구분하고 제거하는 것이다. 이는 곧 '나'와 '타자'를 이분화하고, 부정하려는 당대의 사회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나쁜 것'에 대한 억압과 부정 대신, '긍정성'이 세상을 지배한다. 쉽게 말해, '~해서는 안 된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성공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연구한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네게는 그럴 만한 잠재력이 충분히 있다고,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나태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과도한 긍정성, '할 수 있음'은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지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끝없는 목표를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주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부를 소홀히 하고, 자기계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가 처벌을 가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행동하지만,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자발적인 자기 착취'라고 부른다. 가장 공감되었던 부분이다.

이런 경향은 한국 대학생들에게 특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더 나은 사람(생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자신을 계발하고, 모든 일에서 주체적이고 주도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된다. 자격증, 대외활동, 공모전, 인턴 등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리고 성과에는 완결이 없기 때문에 완벽히 만족할 수도 없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할 수 있는 힘' 대신 '하지 않을 힘'을 강조한다. 인간은 최대의 효율을 내는 기계가 아니다. 잠시 멈춰 사색하고, 엉뚱하고 쓸모 없는 생각을 하며, 심심해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에야 인간은 비판하고 치유할 수 있는 지혜를 갖는 것이다. 필자는 '피로사회'를 통해 끊임 없이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강박이 어떤 역사적, 철학적 맥락을 거쳐 형성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 혼자 불안한 것이 아니며, 잠시 멈추어도 괜찮으며, 오히려 그것이 더 가치있는 일일 수 있다. 바쁜 삶에 뿌듯함을 느끼다가도 종종 문득 지치고, 허탈해진다면 '피로사회'를 통해 '피로'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박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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