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몸으로 말해요, 퍼포먼스 아트 [시각예술]

역사를 몸으로 쓰다 展
글 입력 2017.12.19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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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현대 미술에 관한 교양수업을 들었다. 지난 11월, 그 수업의 과제를 위해 찾아간 곳이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역사를 몸으로 쓰다 展>이다. 퍼포먼스 아트에는 크게 흥미가 없기도 했고, 그때 몸도 안 좋아서 얼른 과제나 해치우고 오자는 심산으로 갔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볼거리도, 생각할 것도 많았던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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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볼거리’가 많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흔히들 행위 예술, 혹은 퍼포먼스 아트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지만, 여전히 미술관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분야인 것은 확실하다. ‘일시성’이라는 행위예술의 강력한 특성 때문에 그렇다. 퍼포먼스는 아티스트가 무대에서 시연을 할 때를 딱 맞춰 가야 직접 볼 수 있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만약 비공개적으로 퍼포먼스를 하면 대중은 그것을 사진이나 영상 등의 간접적인 방식으로 체험할 수 밖에 없다. 아쉽게도 이 전시 역시 퍼포먼스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액자 속의 사진으로, 스크린 위의 영상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하면 지루하고 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데, 큰 스크린이 주는 압도감, 흥미롭고 시선을 끄는 내용, 자세하고 친절한 캡션 등으로 큐레이터 분이 영리하게 구성하신 것 같았다. 교수님은 이 전시에 대해 하나의 ‘쇼’ 같다며 비판조의 목소리를 내셨지만, 글쎄, 이 방대한 퍼포먼스 아카이브와 같은 전시가 대중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 전시는 어려울 수는 있으나 재미가 있다. 몸을 움직여 몸짓으로 말하니 확실히 역동적이고 시각적으로 강렬한 효과를 준다.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은 몸짓을 통해 집단의 기억을 재구성하기도 하고, 일상적 몸짓을 다르게 보도록 만들기도 하며, 일시적인 공동체를 실험해보기도 한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마다 재미있었던 작품을 하나씩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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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후안, 가계도, 2000 ⓒZHANG Huan
 

제 1부 “집단 기억과 문화를 퍼포밍하다”

장 후안이라는 중국 아방가르드 대표 작가의 <가계도>라는 작품이다. 일렬로 늘어선 9개의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가는 얼굴에 먹으로 중국의 속담과 소설 속 문장, 작가의 가족과 지인 이름 등을 작은 글씨로 써넣기 시작하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글자들이 얼굴을 완전히 뒤덮어 작가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어딘지 섬뜩한 이 행위는 결국 우리들이 역사적, 문화적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끊임없이 그것에 영향을 받음을 암시한다. 우리가 맺는 관계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배제한 고유하고 독립적인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착각일지 모른다고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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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비그 리브친스키, 탱고, 1980 ⓒZbig RYBCYNSKI
 

제 2부 “일상의 몸짓, 사회적 안무”

같이 갔던 친구와 이구동성으로 재미있었다고 꼽은 작품. 즈비그 리브친스키의 <탱고>라는 작품이다. 8분 정도의 애니메이션 작품인데, 방 안에 사람들이 한둘씩 들어와 일정한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방안이 사람들로 꽉 차 바글바글할 때조차, 각각의 사람들은 서로가 하는 행동 외에 다른 이들에게 관심조차 없으며 기계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반복하며 방을 드나들 뿐이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파편화된 개개인은 그들이 하고 있는 너무나 일상적인 행위 때문에 더욱 보는 이에게 충격을 준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타인을 배제한 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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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폼, 견딜 수 없는 100번의 키-아이, 2015 ⓒ Chim↑Pom
 

제 3부 “공동체를 퍼포밍하다”

도쿄의 예술그룹인 침↑폼의 <견딜 수 없는 100번의 키-아이>는 ‘공동체’를 통해 전지구적 이슈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시도 중 하나이다. 2011년 지진 이후 폐허가 된 후쿠시마에서, 소중한 이들을 잃은 청년들이 둥그렇게 모여 ‘키-아이’를 하고 있는 작업을 담은 영상인데, 여기서 키-아이란 무엇을 공격하기 전에 자신의 내적 에너지를 모으는 무술 용어라고 한다. 청년들이 돌아가면서 한 명씩 “화이팅”과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말들을 외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는데, 그들이 서있는 황폐한 후쿠시마의 모습이 대비되어 묘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청년들은 그저 10분쯤 한데 모여 퍼포먼스를 했을 뿐이지만. 그 짧은 순간 청년들 사이에, 그리고 그것을 보는 관람객 사이에 끈끈한 유대감이 생겨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더라도 ‘공동체’를 만들어 에너지를 모았던 것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퍼포먼스 아트가 연극이나 영화와 차별화되는 점은 그것에 내러티브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서사구조가 없는 연극이나 영화도 있겠지만, 퍼포먼스에서는 ‘언어’를 통한 이야기보다는 몸짓을 통한 이미지의 각인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퍼포먼스를 ‘미술’의 영역으로 부를 수 있는 이유라는 것도. 행위 예술은 관객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그 이미지에서부터 관객이 스스로 어떠한 문제를 상기하도록 한다. 관객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고,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퍼포먼스는 ‘언어로 쓰는 역사’가 포착하지 못하는 지점을 드러낼 수 있다. 그들은 몸으로 말한다. 그것은 새롭고,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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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몸으로 쓰다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기간 2017.09.22.~2018.1.21.



[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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