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트로이의 한(恨), 남겨진 이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트로이의 여인들' [창극]

트로이에 남겨진 여인들의 소리, 한(恨)의 정서를 담다.
글 입력 2017.12.1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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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전쟁은 늘 잔인한 고통을 낳고, 거대한 폭풍처럼 몰려와 한 순간에 너무나 많은 것을 앗아간다. 인간들의 욕망이 앞서 치르게 된 전쟁은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죽음으로 치닫는 그 끝은 참혹한 결말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이들은 또 다른 고통과 절망 속에서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산산이 부서진 삶은 피끓는 분노와 억울함만이 남아 또 다른 전쟁을 사는 것 같다.
 
 삼천년 전, 그리스-스파르타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망한 트로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전쟁 같은 삶에 목 놓아 울부짖지만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폐허가 된 도시, 피바다로 물든 트로이는 이제 남겨진 자들의 한(恨) 서린 울음만이 들려올 뿐이다. 부모, 형제, 남편, 아들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그들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던 트로이의 여인들은 비극적인 자신들의 삶이 한없이 슬프고 아프다.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1350년에서 1100년 사이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트로이 전쟁과 관련한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동명 원작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영웅들의 서사로 남은 전쟁 이야기를, 가장 낮은 위치에서 가장 처절한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야 했던 여인들의 삶에 주목했다.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은에우리피데스의 동명 희곡을 배삼식 작가가 다시 한 번 새롭게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특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싱가포르 출신 연출가 옹켕센이 함께하면서, 창극사에 새로운 획을 그을 트로이의 여인들>이 국립극장의 무대에 다시 올랐다. 국립창극단이 선보이는 트로이의 여인들>은 보통 여인들의 삶을 보통의 소리로, 우리 정서의 한(恨)을 담아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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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전리품으로 착각하여 적군들이 숨어있는 거대 목마를 성 안으로 들인 트로이는 그리스-스파르타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망한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우스의 아름다운 아내 헬레네를 데려온 파리스 왕자로 인해 시작된 전쟁은 그렇게 트로이를 피바다로 물들였다. 트로이의 왕비 헤큐바는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들을 잃어야만 했고, 딸인 카산드라를 적국의 왕에게 첩으로 보내야만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하나 남은 핏줄, 손자 아스티아낙스마저 그리스군에게 빼앗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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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헤큐바를 비롯한 트로이의 여인들이 승전국인 그리스에 노예로 끌려가기 전까지의 상황을 우리의 소리로 표현했다. 분노와 억울함, 절망과 고통에 울부짖는 트로이 여인들의 소리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녀들은 특히 이 모든 전쟁이 헬레네로부터 시작된 것만 같아, 오직 죽음만이 헬레네가 이 전쟁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헬레네는 신들의 장난에 희생된 자신의 삶을 슬퍼하며, 불쌍한 자신의 신세를 메넬라우스가 딱하게 여겨주길 바란다. 결국 헬레네는 죽음을 면하게 되고, 헤큐바와 트로이 여인들은 처참히 망가진 자신들의 삶이 원망스럽고, 고통스럽다. 그렇게 극의 결말은 헤큐바와 여인들의 가장 구슬프고, 처절한 외침으로 마무리되며, 그녀들의 소리는 트로이의 눈물이 되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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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본연의 아름다움으로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한 개 배역에 한 개 악기를 배치해 소리꾼의 목소리와 악기 반주가 극을 함께 이끌어간다. 왕비 헤큐바의 장엄한 목소리는 둔탁하면서도 굵은 소리를 내는 거문고가, 복수심과 분노에 불타오르는 공주 카산드라의 목소리는 구슬픈 소리의 대금이 맡는 등 배역별 목소리와 악기의 특징적인 소리를 절묘하게 매치시켰다.
 
 악기들의 소리에 덧입혀진 배우들의 목소리는 판소리 본연의 아름다움을 잘 끌어내었고, 배우들은 판소리만의 음색과 선율로 복잡한 감정선을 잘 그려내었다. 이렇듯 소리와 악기는 하나가 되어, 어떠한 기교와 꾸밈없이 오직 우리의 소리로 한 서린 여인들의 울부짖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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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서 또 주목할 것은 바로 헬레네의 소리이다. 다른 배역들은 국악기의 소리와 함께 이뤄졌으나, 헬레네의 노래는 판소리에 피아노의 선율을 입혀 이색적인 조화를 이뤘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헬레네는 중성의 모호한 존재로, 극의 참신한 연출 의도가 돋보였는데, 이를 피아노 소리로 표현한 것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헬레네 역에는 창극계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김준수가 맡아 더욱 주목을 끌었다. 그는 곱고 아름다운 자태의 헬레네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그만의 소리로 헬레네의 노래를 판소리의 애절함을 담아 매력적으로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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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을 위한 고혼의 위로


 극의 시작과 마지막은 고혼의 창으로 이어진다. 고혼의 소리는 전쟁으로 죽은 이들의 넋을 기리고, 트로이의 여인들을 위한 노래이다. “우 우여, 매 매여. 우매라, 우매여, 우매로구나. 천지는 무정이요, 목숨은 유정이라. 무정한데 유정하니, 어리석고 어두워라." 고혼의 노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으로 초래된 전쟁의 비극을 꾸짖고, 전쟁이 낳은 고통과 절망 속에 울부짖는 여인들을 달랜다. 고혼은 이승과 저승의 가운데서, 떠나간 이들과 남겨진 이들을 위로하며, 조용하고 차분한 소리로 노래를 이어간다. 고혼의 등장은 극의 시작과 끝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며, 한없이 흐르는 트로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자 한다.
 
 인간의 우매함이 가져온 전쟁의 결말은 남은 이들에게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살게 한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가장 약자로서, 힘없는 여인들이 살았을 전쟁 이후의 삶은 잔인하고 끔찍했을 것이다. 그들은 매일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분노와 억울함에 가득 차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지옥 같은 삶을 겨우 버티며 살아내야 했다. 그녀들은 어떻게 될지 모를 자신들의 미래를 불안해하며, 피로 물든 고향 땅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다. 무엇이 이토록 비참하고, 참혹한 전쟁을 낳았는가? 십년의 기나긴 전쟁이 끝난 뒤의 삶은 너무나 슬프고, 아프고, 서러웠다. 그렇기에 전쟁은 그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비극적인 삶을 살게 하며, 남겨진 이들의 삶을 처참한 죽음으로만 내몰 뿐이다. 전쟁이 끝나고, 트로이에 남겨진 여인들의 소리는 그렇게 피끓는 분노와 울분, 설움이되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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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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