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셰익스피어, 『햄릿』 [문학]

시간의 관절을 맞추는 자
글 입력 2017.12.16 19: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The time is out of joint.
시간의 관절이 어긋나있다.”

 
 아내가 남편을 배신하고 그의 동생과 결혼하는, 죽마고우였던 친구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그의 연인마저 그를 감시하는 덴마크는 이미 타락해 있었다. 타락한 덴마크 시간의 관절을 맞추기 위해 고뇌하는 햄릿. 그는 불의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불의에 수치심을 느낀 그는 목숨을 걸고 덴마크를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한다.
  

“To be, or not to be.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고뇌 속에서 자신은 몇 번이고 죽었다가, 살기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과, 삼촌과 어머니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햄릿은 우울감에 빠진다. 장례식과 결혼식이 같이 치러지는 곳에서 햄릿은 분노한다. 하지만 분노만으로는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햄릿은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생각만 하고 있었다. 햄릿의 아버지가 혼령으로 찾아와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햄릿은 아버지의 혼령을 만난 이후 분노를 행동으로 옮긴다. 혼령은 햄릿에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알려주었다. 동시에 햄릿이 복수를 함으로써 파멸로 이끈다.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햄릿을 파멸로 이끄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현실 세계에서도 이와 같다.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자신은 파멸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자신이 파멸할 것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것은 인생 스스로가 주인이 되지 못하는 노예적 삶이다. 우리는 노예로 살지 말고 삶의 주인이 되어야한다. 햄릿도 복수가 자신의 삶을 파멸로 이끌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햄릿은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바꾸려고 기꺼이 파멸 속으로 들어갔다. 햄릿은 이것으로 인해 비극 속 영웅이 되었다.

  햄릿이 비록 영웅이 되었지만, 영웅이 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햄릿은 왕을 죽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변명을 하면서 그 기회를 놓쳤다. 햄릿은 아직 완전한 영웅이 되지 못했다. 아직도 자신의 맘을 다잡지 못했다. 계속해서 죽음의 공포와 수치심 사이에서 고민했다. 고민 끝에 햄릿은 결심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복수를 할 것을. 햄릿의 고뇌의 결과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죽음으로 인해 덴마크의 정의가 바로 서게 되었다.


60f3dfc73a5d15bab9acd5c44d339d23_scayIwQ9zWlOJ8enCCbDplvXpq.jpg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의 작품.
1839년 作, 캔버스에 유채


 햄릿이 어떤 마음을 품었길래 그가 목숨을 바쳐가면서 시간의 관절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 것일까. 바로 ‘수치심’이었다.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은 왜 정의롭지 못하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수치심이다. 내가 존재하는 한 이 세상은 정의로워야하고, 정의롭지 못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치심이 저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수치심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굴욕감을 느끼고 있다면 저항으로 이어질 수 없다. 나의 책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책임이니까.


"수치심은 치욕에 대한 공포나 소심함이고 추한 행위를 범하지 않도  록 인간을 억제하는 것이다." (스피노자)


 스피노자는 수치심은 치욕에 대한 공포나 소심함이고 추한 행위를 범하지 않도록 인간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치욕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고, 저항할 수 있도록, 추한 행위를 범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감정이 바로 수치심이다.  우리, 특히 청년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은 굴욕감이 아니라 수치심이다. 자신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모습. 남의 탓이 아닌 내 탓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정의한 사회에 저항할 수 있는 청년들이 필요하다. 그래야 세상은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워진다.

 햄릿이 죽음의 두려움과 수치심 사이에서 고민했던 것처럼, 죽지 않고 격정을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햄릿처럼 죽지도 않으면서 격정을 실현하고픈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노예로 살게 되고, 죽게 된다면 죽음 이전의 것들은 무의미하게 된다. 우리는 항상 죽음과 격정 그 사이를 건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선택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오지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