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책 < 우아함의 기술 >, 무엇이든 관심을 주면 빛난다 [문학]

'우아함'은 얼마나 많은 오명을 안고 살아왔던가
글 입력 2017.12.1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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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은 아름다움에 온기를 부여해 저항할 수 없게 만든다. 왜냐하면 우아함은 개방되어 있고, 쾌락을 추구하며, 너그럽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관능적이기 때문이다. 우아한 사람은 우리에게 뭔가를 내주는 느낌, 진정한 인간적 결속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느낌을 준다. 비록 그것이 우리의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해도." - p. 48.



 올해에도 학교 연극 동아리에서 올리는 정기공연에 캐스트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우울한 형사'와 '우아한 부인'이라는 두 역을 맡게 되었다. 우울한 형사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배역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우아한 부인은 조연이지만 극에서 비중이 꽤 큰 배역이었다. 그래서 극을 준비하면서 우아한 부인을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이름이 아닌, 굳이 '우아한'이라는 형용사로 표현된 배역이었기에 더 부담이 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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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우리 대학 중앙연극동아리의
가을정기공연 < 로베르토 쥬코 >의 무대


 < 로베르토 쥬코 >라는, 불친절한 이 대본은 감정이나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문이 결여되어있다. 때문에 난해하지만 연출과 배우에게 그 해석의 여지를 많이 열어주는 극본이었다. 그래서 극의 내용과 감정선을 생각하면서도 '우아한'이라는 의도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를 더 고민했던 것 같다. 거의 본공연 날짜에 다다라서야,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한창 '우아함'이라는 표현에 예민했던 나는 별 고민 없이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저자는 우아함을 주제로, 그녀가 우아하다고 느꼈던 인물들과 상황을 중심으로 우아함의 가능성과 그 중요성에 대해 서술한다. 책에서 주로 언급되는 인물은 한 시대를 풍미한 무용수와 배우 같은, 신체적 아름다움을 지닌 인물들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읽으면서 집중이 안되는 대목이 많았다. 해외 연예계를 잘 모르는 한국인으로서는 본문에서 언급되는 여러 유명인들과 작품들(특히 1900년대의)의 예시들을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몇몇 부분에서는 흐름이 툭툭 끊기기도 했다.

 아무튼,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해 우아함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조금은 친숙하지 않은 예시들이 있었을지 몰라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이해가 됐으며, 덕분에 우아함이라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도 바뀌었다. 우아함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던 바와는 달리 인위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에 가깝다. 무용수의 단련된 몸과 그 몸짓, 몸에 딱 맞게 조여진 의상, 상류층의 매너와 같은 것들은 우리가 우아함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소재들이다. 이런 것들은 보통 인위적이고, 딱딱하고, 심지어는 차갑게까지 느껴지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런 이미지들은 '우아함'이라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다. 물론 저자 역시 여러 유명인사들의 예시를 들어 우아함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훈련도나 지위, 기술과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우아한 인물을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런 딱딱하고 인위적인 것들이 아니다. 우아함을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너그러움과 배려심,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 시선을 들어 주변을 보살피는 여유와 관심과 같은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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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단순히 상류층의 예의범절 교육에서 받는 종류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우아함이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런 우아함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있으며, 스스로 의식하고 훈련한다면 긍정적인 에너지로써 발산될 수 있다. 진정한 우아함이란 '부드러움'과 '온화함'에 가깝다. 그러므로 어려운 기술에만 집착하는 무용수나 표정에만 집착하는 배우에겐 우아함을 느낄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손님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종업원의 태도와 오랑우탄의 유연한 자세에서 우아함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우아한'이라는 수식어를 참 편협하고 인위적인 개념으로 해석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도 내가 준비하던 극의 흐름에는 내가 해석한 방향이 어긋나지 않았지만, '우아함'이라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건방지고 인위적이고 콧대높고 자기보다 지위가 낮아보이는 사람을 무시하는 등의 이미지로 그려낸 것을 회상하니 볼이 화끈거린다. 물론 같은 단어를 놓고도 사람마다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아함'을 부정적인 선입견에 가둬두고 살아왔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우아함이라는 것은 충분히 삶의 지향점으로 삼고 훈련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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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덮은 후, 나 자신과 내 주변의 것들에 조금 더 온기를 불어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나 나를 책망해왔고, 나의 부족한 점만 보려고 했다. 이 또한 목적 자체는 나를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기가 죽고 우울해지기만 했던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은 주변에 대해서도 문을 닫게 만들어서, 최근의 나는 주변인들에게 관심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신경이 온통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몰려 있으니 누굴 만나도 피곤해했으며, 그래놓고는 혼자 외로워하기를 반복했다. '무엇이든지 관심을 주면 빛난다'는 말은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자주 상기하지는 않는다.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새삼 느꼈다. ' 우아함의 기술 '이라는 것은 실은 저 문장으로 모두 설명된다. 내 몸, 내 정신, 내 주변 사물과 사람, 나를 둘러싼 환경, 그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생각하고 관심을 주어야만 한다.





P. S. 학교 연극 동아리에서 올린
이번 가을 정기극은 < 로베르토 쥬코 >이다.
12기 에디터 김찬규군이 극 관람 후 직접 작성한
글의 링크를 첨부한다.


[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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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김찬규
    • 링크 부끄럽군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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