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드로잉의 세계 [문화예술교육]

글 입력 2017.12.1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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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을 배우기 시작한 지 7주가 됐다. 엄청나게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자신의 머리속에 있는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눈앞에 있는 것을 다른 기기가 아니라 오롯이 자신만의 눈, 자신만의 손으로 담아내는 것을 막연히 동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지금이 아니면 시작할 수 있는 시기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말 아침 무작정 취미 미술 학원으로 향했다.

총 12주의 커리큘럼을 소화해야 하는 것은 괜찮았지만, 사실 한 수업당 3시간이 기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부담감이 느껴진 것이 사실이었다. '3시간이라니. 한 가지 일에 30분 집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과연 3시간씩이나 집중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안고 첫 수업에 들어갔고, 나는 그 걱정들이 정말 쓸모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열심히 선을 그었다.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옅게, 조금 더 진하게, 아주 진하게. 정말 놀랍게도 주변에 있는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손에 달고 살던 핸드폰조차 신경쓰지 않고 그 선 하나하나를 긋는 것에 빠져들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평소에는 쓰지 않던 근육들을 이용해 선을 긋다 보니 점점 등과 어깨가 쑤셨지만, 연필이 종이의 표면을 긁는 소리와 그 전해오는 촉감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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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첫 수업의 결과물은 내가 봐도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선을 긋기 위해 쓰지 않던 근육들을 움직이다 보니 팔이 뻣뻣해졌고 그라데이션을 넣어야 하는데 근육에서 힘이 빠지지 않아 도통 옅은 선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근육이 그림을 그리는 것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려서 몇 주는 더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됐다. 생각해보면 지금도 옅은 선을 잘 쓰는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려놓은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완전히 새로 그릴 수도 없었고, 수정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더 절망적이었다.

우울함에 '어떡하죠?'하고 묻는 내 말에, 선생님은 괜찮다고, 이 상태에서 잘 만들면 된다는 말을 해주셨고 그 말이 마음에 굉장히 깊게 남았다. 그 날 처음 그린 그 원기둥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하면서 항상 나는 도망치기 급급한 사람이었다. 일이 잘 안 되면 일을 진행하려고 노력하기보다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해봤자 의미가 없음을 증명하는 이유를 찾기 바빴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정말 다시 시작할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고, 무엇 하나 고칠 수도 없는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들은 그 한 마디가 참 나를 돌아보게 했다. 왜 이제야 그걸 알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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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첫 그림을 완성하고 나니 마음이 참 편안하고, 뿌듯했다. 그동안은 이걸로 정말 된걸까? 이게 맞는 걸까? 전전긍긍하며 초조하게 살아왔는데. 그냥 내 손에서 나온 그 그림을 보고 있으니 '그래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어찌 됐건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7주 동안 생각보다 많은 것을 그렸고, 처음보다 점점 발전해가는 것이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을 때 그 성취감과 만족감은 아마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현대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런 수업일지도 모른다. 경쟁과 끝이 없는 마라톤에 지친 모든 사람에게 이 수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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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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