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누군가의 뮤즈가 아닌, 오직 마리 로랑생으로

글 입력 2017.12.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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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어떤 색깔을 좋아하십니까? 스스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색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흔히 묻는 질문이지만 늘 답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특정 색깔이 내게 주는 느낌과 그것에 대해 타인이 갖는 인식은 저마다 다르기에 더욱 그렇다. 누군가에게 기쁨은 노랑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빨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같은 빨간색을 보고 어떤 이는 분노를 떠올리는 반면, 어떤 이는 섹슈얼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렇듯 색채는 다수가 가진 보편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한 사람의 성향과 기분을 은밀하게 건드리는 힘이 있다. 그래서 세상에 덧입혀진 수많은 색채를 이렇게 저렇게 뭉뚱그려 놓으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정서와 함께 나만 알고 싶은 몽환적이고 은근한 느낌이 동시에 찾아들곤 하는 것이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인 마리 로랑생의 전시에 ‘색채의 황홀’ 이란 타이틀이 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말 그대로 '색채의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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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 1927년 경 / 캔버스에 유채
81.2 x 65.1 / Musee Marie Laurencin Collection
 

 마리 로랑생은 작품에 지적인 관념을 도입하는 것을 극도로 거부했으며 오로지 본능과 직관, 상상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여린 핑크, 옅은 블루, 청록색, 우수가 감도는 회색과 이들이 엉겨붙어 만들어 낸 불분명한 형체가 견고하게 느껴지는 건 그녀의 확고한 예술관 때문은 아니었을까. 한편 색채와 형태를 동원해 자신의 깊숙한 내면을 끄집어내고자 했기에 마리 로랑생의 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 속을 차분히 어루어만지고 왠지 모를 편안함과 멜랑꼴리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전남대학교 미술사학과 정금희 교수는 마리 로랑생에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리 로랑생은 윤곽선을 없앤
1차원적 평면성과
부드럽게 녹아드는 듯 한 파스텔 색채만으로
평안함을 주는 형태를 완성했다."


 마리 로랑생에게 강한 애정과 공감이 일었던 지점이 바로 감정의 문제였다. 물의 표면에 떨어뜨려 놓은 물감처럼, 스치는 바람에도 흐뜨러져 버릴 것만 같은 그녀의 작품은 남성 작가들의 그림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모종의 따듯함과 위태로움을 품고 있었다. 그림에서 풍기는 마리 로랑생만의 분위기와 향기는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며 여성 화가로서 묵묵히 활약했던 그녀의 생애와 무관하지 않다. 때문에 <마리 로랑생 展 - 색채의 황홀>은 그녀가 무명작가로 활동하던 시기부터 죽기 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인생의 막바지까지 그 발자취를 뒤밟아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Section 1
벨에포크 시대로의 초대
 
 20세기 초 아름다웠던 파리의 벨에포크 시절을 대표하는 작가, 마리 로랑생이 담긴 사진들을 통해 벨에포크 시대의 파리 속으로 되돌아가본다.


Section 2
청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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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 1908년


 1,2차 세계대전이라는 유럽 역사의 암흑기를 거쳤던 마리 로랑생은 여성 화가가 드물던 100여 년 전 미술교육기관인 아카데미 앙베르에서 입체파의 창시자로 불리는 조르주 브라크에게 재능을 인정받고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 파블로 피카소의 작업실이자 전 세계에서 파리로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세탁선(Bateau-Lavoir)을 드나들며 기욤 아폴리네르, 막스 자코브, 앙리 루소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일궈나갔는데, 당시 ‘입체파의 소녀’ ‘몽마르뜨의 뮤즈’로 불렸다고 한다. Section 2 <청춘시대>에서는 무명화가였던 마리 로랑생의 초기 작품과 입체파 화가로 변모하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Section 3
열애시대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1913, 캔버스에 유채, 112x144, Musee Marie Laurencin.jpg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1913 / 캔버스에 유채
112x144 / Musee Marie Laurencin Collection


 입체파와 야수파의 경향성을 작품에 두드러지게 드러내며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활약하던 그녀는 피카소의 소개로 모더니즘의 선구자이자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5년간의 열애를 하게 된다. 하지만 1911년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아폴리네르가 연루되면서 둘 사이도 끝이 난다.(이에 1912년 아폴리네르는 실연의 아픔을 담아 오늘날 명시로 인정받는 ‘미라보 다리’를 발표한다) 아폴리네르와의 뜨거웠던 사랑 속에서 회색과 갈색 위주의 초기작에서 벗어나 서서히 녹색과 파랑, 핑크에 이르는 자신만의 책을 찾아가기 시작한 마리 로랑생의 작품에는 강한 입체파의 경향이 드러난다.


Section 4
망명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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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무렵, 마드리드에서, 1916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마리 로랑생은 독일 오토 폰 바예쳰 남작과 결혼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스페인에서 망명생활을 하게 되고 남편의 알콜 중독과 방탕한 생활로 불행한 시기를 보낸다. 이 때 마리 로랑생은 고야의 영향을 받아 관능적인 지중해 남부 여성들을 그리는 데 열중하며 역경을 이겨낸다.


Section 5
열광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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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城)안에서의 생활 / 1925 / 캔버스에 유채
114.4x162.3 / Musee Marie Laurencin Collection
 

 남편과 이혼 후 프랑스 예술가들의 탄원덕분에 프랑스 국적을 회복해 파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마리 로랑생은 비로소 작품에 완전히 몰입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꽃피운다. 특유의 색채감과 윤곽선을 흐릿하게 그리는 스타일이 완성되고 코코 샤넬, 헬레나 루빈스타인 등 많은 명사들의 초상화 주문이 잇다른다.


Section 6
콜라보레이션

 앙드레 지드의 소설 '사랑의 시도'를 비롯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캐서린 맨스필드의 '원유회' 등 도서 일러스트 작업과 의상과 무대 디자인, 잡지 표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Section 7
성숙의 시대

세명의 젊은 여인들, 1953년경, 캔버스에 유채, 97.3x131, Musee Marie Laurencin.jpg
세명의 젊은 여인 / 1953년경 / 캔버스에 유채
97.3x131 / Musee Marie Laurencin Collection


 한층 강렬해진 색채 속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한 대가로서의 작품 세계가 느껴지는 작가 말년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10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 '세 명의 여인들'은 한국 전시만을 위해 관람객들에게 특별히 촬영이 허용되었다.


Section 8
밤의 수첩

 시집 '밤의 수첩'을 발간한 시인이기도 한 마리 로랑생의 시와 연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를 읽어 보고, 그들의 시를 직접 필사해본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다리> 中


지리 하다고 하기보다 슬퍼요
슬프다기 보다
불행해요
불행하기보다
병들었어요.
병들었다기보다
버림받았어요.

버림받았다기 보다
나홀로.
나 홀로라기 보다
쫓겨났어요.
쫓겨났다기 보다
죽어 있어요.
죽었다기 보다
잊혀졌어요.

마리 로랑생, <진정제>





 12월 9일부터 3월 1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마리 로랑생展 은 Musee Marie Laurencin Collection의 마지막 월드 투어 전시다. Musee Marie Laurenchin은 1983년 마리 로랑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일본 나가노에 설립되었는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리뉴얼 공사를 하게 되면서 그녀의 고향인 프랑스 마르모탄 모네를 시작으로 순회전시를 진행해왔다. 이번 한국에서의 전시로 길고 긴 여정을 마무리 짓고 작품들은 도쿄의 새 미술관에 정착하게 된다. 2016년 기준 약 5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여 단일 화가의 컬렉션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번 회고전에서는 그 중 16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아주 드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70이 넘어서까지 마리 로랑생은 매일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죽기 며칠 전까지도 “내게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더 있었더라면!” 이라고 탄식할 정도로 미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 로랑생은 사실 기욤 아폴리네르의 뮤즈로, 매력적인 여성으로 더욱 유명했다. 그녀는 평생에 걸쳐 남성이 아닌 여성의 시각으로 있는 그대로의 여성을 그리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여성성을 감추고 남성 화가들에 대응하려 했으나 정작 본인은 이제껏 철저히 여성으로서 규정당해왔던 것이다. 그러니 마리 로랑생이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전 세계에서 전시를 펼 수 있게 된 지금이, 그녀가 그린 색채와 형상, 본능과 직관을 누군가의 뮤즈가 아닌 오직 마리 로랑생의 것으로 바라봐줄 수 있는 타이밍이다. 하여 스물세살의 끝자락에, 여성이 아닌 한 명의 관객으로서 여성이 아닌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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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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