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학교 특집1 : "로베르토 쥬코" - 연세대학교 중앙연극동아리 외솔 [공연예술]

글 입력 2017.12.05 23:46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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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중인 학교 동아리들이 펼쳐주는 문화예술을 주제로 글 몇개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감히 제목에 특집이라는 단어를 적어보았습니다. 첫 글은 학교 연극동아리 '외솔'의 "로베르토 쥬코" 리뷰입니다. 글의 시작에 앞서 좋은 극을 보여준 외솔과 우울한 형사, 우아한 여인 2역에서 너무나 멋진 연기를 보여준 주유신 11기 에디터께 이 글을 통해 감사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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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명인간이 되는 건 오래 전부터 저의 꿈이었어요.”

- 6막 中. 쥬코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람들에게서 숨고 싶어 한다. 한번쯤은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이 몰라주길 바란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은 평범한 것을 바라곤 한다. 눈에 띄지 않는 삶, 특별해 보이지 않는 나의 모습. 그렇게 사람이라는 숲에서 숨바꼭질을 하길 원한다.


2.


“우리아버지와 어머니, 형사한명과 아이 한명을 죽였습니다. 살인자요.”

- 14막 中. 쥬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람. 사람의 자격이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분노한다. 이 분노는 고뇌가 없는 분노이다. 그들의 표면적인 행동 하나만으로도 모두의 분노는 빗발친다. 이 사회적 대통합을 만들어낸 것은 소위 ‘인륜’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우리는 인륜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정의 내리지 못하지만, 어떤 행위가 인륜을 어긴 것이라는 사실에는 모두가 쉽게 분노에 동의한다.

 둘은 상반된 것으로 보인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첫 번째의 경우와 다르게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에게 우리는 공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공감할 수 없음을 이유로 분노한다. 즉 그들의 비정상에 분노한다. 만약 저 둘을 모두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누구보다 투명인간이 되길 바란 사람의 반인륜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까? 우리는 그들에게 분노할까? 공감할까? 아니면 눈물을 흘릴까?

 로베르토 쥬코는 그런 인물이다. 밤이 되어 셔터가 닫혀버린 지하철역 안에서 쥬코는 노인에게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 자신을 표현한다. 가만히 서 있어도 뒤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음을,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음을 표현한다. 소르본 대학에 언어학 강의를 들으러 가 학교의 여타 다른 학생들처럼 앞도 뒤도 아닌 중간의 학생으로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앞뒤에서 그는 살인자이다. 극은 쥬코의 두 모습을 교대로 보여준다. 그렇게 쥬코는 공감과 비공감의 국경에 서 있게 된다.





 우리는 때때로 소위 말하는 ‘비정상적인’ 충동에 휩싸인다. 비일상적이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으며, 동시에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용인할 수, 통제할 수 없는 그런 충동 말이다. 평소에 그런 충동들은 투명인간처럼 생각이라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불현 듯 나타나서 마치 쥬코처럼 생각을 헤집어버린다. 다른 생각들은 쥬코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극중 인물들처럼 충동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버린다. 본성적인 충동? 반사회적 충동? ‘비정상적인’ 충동은 한 단어로 정의되기 어렵다. 하지만 쥬코를 닮은, 그래서 어쩌면 쥬코로 정의될 수 있는 이 충동의 존재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요. 불행을 쫓아내기 위해 노래부른 거예요.” 

- 3막 中. 여자아이

“내 나이의 영감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이지. 뭔지도 모르는 걸 기다리면서. 뭔지는 알고 싶지도 않지. 왜냐하면 내 나이에 이런 새로운 일들이란 견디기 힘들거든.”

- 6막 中. 노인


 대부분의 생각들은 생각의 세계에 있는 쥬코를 두려워한다. 이미 친사회적, 친 윤리적, 친 대중적으로 습관화되어버린 생각들에게 쥬코는 소중한 것을 해치고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맹수와 같다. 생각은 노인처럼 급진적인 변화를 두려워한다. 쥬코 앞에서 일반적인 생각들은 한순간에 소중한 것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변해버리는 불행을 가만히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그저 콧노래만을 부르면서 피할 수 없는 불행 앞에 서 있을 뿐인 초식동물이 되어버린다.


“봐, 벌써들 군침을 삼키고 있잖아. 저 사람들은 그런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지. 난 저런 인간들의 이러쿵저러쿵하는 이야기를 참을 수 없어. 쏴. 저 사람들 이야기하는 걸 듣고 싶지 않아.  듣기 싫어.” 

- 10막 中. 우아한 부인


 하지만 우아한 부인은 다르다. 극에서 우아한 부인은 쥬코에게 잡혀있는 그 순간에 비로소 진심을 보여준다. 생각의 세계에도 우아한 부인과 같은 생각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보이고자 일부분이 감춰져버린 생각의 다발이나, 자신이 보기에는 옳더라도 겉으로 드러낼 수 없어 애써 죽인 생각들 등등 쥬코가 아님에도 일반, 정상이라는 틀 안에 갇혀버린 생각들이 있다. 이들은 쥬코를 만날 때에야 일반과 정상의 억압에서 벗어난다. 바로 이 순간에 우리는 ‘솔직함’을 가질 수 있다.


“멍청한 사람. 그럼 당신 이름은? 지금 나에게 당신 이름을 말할 수나 있어요? 당신을 위해 누가 그 이름을 기억해주죠? 당신은 벌써 잊어버렸어요. 난 확신해요. 이젠 당신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건 나 혼자 뿐이에요 . 당신은 자기 자신의 기억 없이 떠나는 거예요.”

- 12막 中. 우아한 부인


 그리고 그 솔직함이 모든 생각을 보존해준다. 극 중에서 쥬코는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린다. 그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쥬코 대신 되뇌어주는 것은 우아한 부인이다. 생각 역시 그렇지 않을까. 생각 속의 쥬코는 단기간적인 충동이기에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그 흔적을 가져 기억 속에 남겨주는 것은 우아한 부인과 같은 생각들이다. 그렇게 우리는 솔직해지고, 그 솔직함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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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건 꽁꽁 언 호수 위로 떨어지는 아프리카의 눈이야.” 

- 3막 中. 쥬코

“위로. 벽을 통해서는 찾지도 말아야 해. 벽을 넘어서는 또 다른 벽이 있고, 감옥이 있으니까. 지붕을 통해서 태양을 향해 빠져 나와야 해. 태양과 땅 사이에는 벽을 만들 수 없으니까.”

- 15막 中. 쥬코


 극에서 쥬코가 눈 덮인 아프리카에 가지 못했듯이, 생각의 쥬코도 스스로가 추구하는 평화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 극의 쥬코처럼 일반과 정상이라는 틀에 체포되고 만다. 하지만 서술했듯이 쥬코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솔직해질 수 있다. 생각에서 쥬코가 날뛸 때 우리는 일반과 정상의 억압이 없는 나의 생각을 바라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쥬코가 필요한지 모른다. 아니 쥬코는 우리에게 필요하다. 솔직해지기 위해서는 이미 잡혀버린 우리의 쥬코가 감옥 꼭대기에서 뛰어내릴 때, 통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위로 올라가 감옥을 탈출해버릴 때를 기다려야 한다.


[김찬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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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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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dyJ
    • 보러 와줘서, 이렇게 멋진 글 써줘서 정말 고맙다 찬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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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찬규
    • 2017.12.06 12: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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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dyJㅎㅎ 좋게 읽어주셨다니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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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셜스튜핏
    • 안녕하세요. 12기 에디터 손진주입니다. 두레를 위해서 글을 천천히 읽어봤습니다.

      저는 <로베르트 쥬코> 라는 작품을 모르는데, 왠지 <이방인>이 생각나는 연극이네요. 이방인의 주인공도 살인을 저지르고 실존과 규정에 관해서 고민했죠. 쥬코는 '이름'을 잃어버리면서 끝나는 것과 다르게, 뫼르소는 감옥의 창틀 사이에 내리쬐는 빛에 삶을 찬양했습니다. 읽은지 오래되어서 잊을만도 한데, 왠지 글을 읽으면서 계속 그 장면이 생각났네요. 그 둘 간의 차이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따로 연극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연극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글 이었고, 많은 사색을 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두레 소개글에서 이 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신 느낌을 받았는데, 맞나요? 독자로서 충분히 훌륭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연극을 많이 소개 받았으면 좋겠네요. 에디터님의 글 기대하겠습니다^^
      다만 두레의 취지에 맞게 몇 가지 점을 지적한다면, 사실 연극이 어떤 내용인지 잘 와닿지 않는 것 같아요. 어렴풋이 쥬코가 살인을 저질렀고, 익명성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점이나, 우아한 여인만이 '쥬코'라는 이름을 기억했다는 점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간단한 줄거리 설명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독자로서 읽었을 때 흐름이 군중의 익명 속에서 익명을 갈구하고 고독한 쥬코- 동시에 이해받을 수 없는 살인자인 쥬코- 쥬코의 충동과 고통을 이해하는 우아한 부인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데, 내용의 전개나 분배는 훌륭하지만 연결고리를 좀 더 세밀하게 썼다면 더 이해하기 쉬운 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필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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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매나무
    • 안녕하세요. 두레 참가 중인 김소원입니다.
      연극 <로베르토 쥬코>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 특히 처음 도입부분에 '투명인간이 되려 한 사람의 반인륜'이라는 소재 자체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서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문단이 짧고 중간 중간 등장인물의 대사가 들어 있어서 단조롭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글을 다 읽고나니 이 연극을 실제로 보고싶어졌습니다. 
      다만 한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두레 신청하실 때 가독성 얘기를 하셨는데요, 문장이 거슬린다기보다는 추상적인 내용을 다루려다 보니 글이 살짝 모호해진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도입부와 쥬코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부분은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는데 그 뒷부분부터는 연극을 관람하지 않은 사람이 읽기에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분명 쥬코는 실체가 있는 인물로 소개되는데 뒷부분에서는 생각이나 충동같은 것들과 함께 관념적인 존재로 묘사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쥬코가 누구이고 연극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다면 더 이해하기 쉬운 글이 될 듯합니다. 만약 연극 자체가 관념적인 연극이라면 그런 부분을 앞서 명시해 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두레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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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
    • 에디터 강범석입니다.

      예전에 막 이 글을 쓰셨을 때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 기회로 댓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물론 막혀 있는 건 아니지만 쑥스러운 마음에...ㅎ) 우선은 학교 연극을 관심 있게 보고 글로 남기시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정기적으로 연극 공연을 하곤 하는데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제가 떠올랐습니다. 아는 선배가 출연했다고 하여 한 번 응원차 들른 것을 제외하곤 이 년 동안 한 번도 학교 연극을 보지 못한 것에 민망하고 쑥쓰러운 감정이 드네요. 찬규 님을 보며 진정한 문화 애호가 무엇인지, 공연 무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 자체도 훌륭하여 다시 한 번 반성했습니다. 왜 저는 이런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면서 자신을 타박하기도 했네요. 줄거리를 제거하고 인물과 감상만으로 글을 전개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찬규 님의 의견과 조화를 이루어 어렵지 않게 읽힌다는 것에도 감탄했습니다. 특히 쥬코의 이중성을 제시해준 서론과 생각 속의 쥬코를 이야기한 본론의 앞 부분은 몹시 매력적이어서 발췌하여 두고두고 읽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생각 속의 쥬코가 지니는 폭력성과 반인륜성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연극을 꼭 한 번 보고 싶은 마음도 드네요. 적어주신 대사들도 아름답고 문학적이라는 평을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정확히 우아한 부인이 등장한 지점부터 글이 너무 관념적으로 흘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읽어내려가다 문득 막혔기 때문입니다. 우아한 부인에 대한 설명을 추가해주어야 했을 부분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줄거리를 제거하다보니 글 자체의 기둥이 없어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부분들로 글이 시적 혹은 연극적으로 보여 저에게는 긍정적으로 읽혔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너무도 근사한 글을 읽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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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sonnnah
    • 안녕하세요 두레 참여하는 12기 에디터 손은아입니다.
      답글 남기기 전에 기한을 엄수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연극 <로베르트 쥬코>를 처음 들어봅니다 쥬코의 이중성을 다루는 연극이라니 정말 흥미로워요
      덕분에 좋은 연극 하나 알아갑니다! 에디터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 연극은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글에서  '만약 저 둘을 모두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누구보다 투명인간이 되길 바란 사람의 반인륜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까? 우리는 그들에게 분노할까? 공감할까? 아니면 눈물을 흘릴까?' 독자에게 물어보는 문장이 좋았습니다. 저에게 말을 거는 느낌을 받아서일까요 이런 사람이 있다는 가정 하에 고민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글 중반부에 '우아한 부인'이 갑자기 등장하는데 그녀가 쥬코와 어떤 관계인지 그 둘은 어떻게해서 처음에 만났는 지가 나와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덕분에 우아한 부인이 누군지 정말 궁금해서 저 연극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줄거리가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쥬코의 이중성을 대하는 우아한 부인을 중심으로만 써주셨는데 줄거리도 무척이나 궁금해지네요 글 문장력도 좋으세요 앞으로도 연극 관련 글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네요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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