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라지는 마음, 사라지는 말들: 랭귀지 아카이브

글 입력 2017.12.0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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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건, 내가 내 이야기를 이렇게나 못했나 싶을만큼 내 작품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번번히 말아먹고 나왔을때였다. 곡을 쓰고 그 곡에 대해서 설명할 자리가 많아지면서, 그 곡에 대한 설명과 비평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잦았다. 그럴때마다 드는 생각,'이걸 꼭 말로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말로 하는 순간 내 생각 원연의 것들이 다 증발되어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은 억울함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 억울함과 답답함때문에 지금에까지 언어가 삶에 중요한 이유, 그리고 언어를 타고 흐르는 많은 학문들이 내 삶에 필요한 이유를 조금씩 깨달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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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랭귀지아카이브] 또한 그런 언어, 우리의 말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편과 아내, 몇년을 같이 살아왔지만 같은 언어로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감정이나 행동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어떠한 벽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포개고 있는 겹을 한겹 한겹 벗겨내어 어떤 언어로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체계를 가지고, 내가 쓰는 이 단어가 저사람에게는 다른 단어로 인식되구나 느끼는 순간이 바로 소통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던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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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또한 신선했다. 언어학자인 남편과 그 아내, 그리고 그 언어학자남편이 연구하는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는 두 노부부의 이야기, 그 곁가지로 있는 여조수의 이야기까지 비할 데 없이 정말 흥미롭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근래에 내가봤던 연극들 중에 가장 기분좋고 아름다운 연극이었다고 자부한다. [랭귀지 아카이브]속에서는 많은 종류의 사랑이 동시에 나타난다. 남과 여, 세대는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며 품어오는 감정의 온도는 명확히 다르다. 온도뿐만 이겠는가, 그들이 생각하는 추억과 장소, 공간에 대한 이야기또한 너무나 다르다. 하나의 쪽지를 보고도 그들은 다르게 해석하며 다르게 반응한다. [랭귀지 아카이브]에서는 언어의 온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언어가 사람들에게 어떤 온도로 다가오는지, 또한 어떻게 멀어지고 가까워지게 만드는 지 그 과정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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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 네 글레살라! 미 아마스 빈!" 언어를 배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말하고 통함에 대한 것들이 얼마나 용기있고 아름다운 일인지 다시금 느끼게 해준 연극. 지금도 어디서는 소멸해가고, 사람들에 의해 생기기도 하는 말. 사람들과 밀접하게 호흡하고 있는 말. 언어. 이야기. 단어. 문장. 연극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이 사라지고 나서 언어가 사라지는 거예요. " 한 마을이 고립되어버리는 순간, 마을언어는 순식간에 절멸한다. 사람이 흐르는 곳에 언어도 흐르는 것. 사랑한다는 것 또한 그 사람의 고유언어를 익히는 것일테다. 언어를 배우는 일이 용기있는 일이듯,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 또한 대단히 용기있고 우리 삶에 기적같은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마음에 들어 온다는 건, 이렇게나 많은 세계를 한꺼번에 품어가는 일이다. 품을 수 있는 사람과 품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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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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