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따뜻함 속의 서늘함, 서늘함 속의 따뜻함 〈IM GOOD〉 [공연]

독특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두 아티스트의 공연
글 입력 2017.12.03 22:0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시원하게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그리고 검정색 컨버스 슈즈를 꺼낸 것은 최근 한 일 중 가장 잘못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던 날이었다. 벼락이 떨어지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집에 뛰쳐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아내었다. 홍대 라이브홀에서 ‘진짜’ 인디음악을 듣는 것은 처음이라, 싱숭생숭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대형기획사에 흡수되거나 상업화된 레이블 소속이 아닌, 정말 독자적인 색채를 뽐내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단촐한 공연장에서 즐긴다니 이 얼마나 로맨틱한 이야기가 아닌가.

 
8a7aa7b2cc1c8658726cc7a2df93418f_abwX5qGcITk6lMoIMUOPwuG8Axco.jpg
 

  STUMP 내부는 생각보다 더 협소했다. 사실 그래서 더 좋았다. 무대 거의 바로 앞으로 의자가 놓여있고 자칫 자리를 잘못잡으면 앞자리 사람 때문에 가수가 보이지 않는 참사의 우려도 있었지만, 음악으로 온 몸을 꽉 채우고 아티스트의 표정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 고갱

  앳된 얼굴의 고갱이 먼저 무대로 나왔다.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과 함께 「Truly I Love You」가 시작된 순간,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궂은 날씨에도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부드러운 고갱의 목소리가 그 좁은 공간을 한없이, 편안해지게 했다. 미성인 듯 하면서 중저음도 매력적인 보컬, 애절한 노랫말, 후반부의 코러스 때문에 Damien Rice의 음악이 연상되었다. 노래가 끝나고 수줍어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니 공연 경험이 많지 않은 것도 같지만, 그의 음악과 목소리에 농축된 것들은 결코 소규모라 칭할 것이 아니었다. 음원에서 들었을 때도 음악이 굉장히 완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라이브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KakaoTalk_20171202_200658350.jpg
 

  공연 전 가장 많이 들었던 「우리 그냥 이대로」와 「Tell Me If You Can」은 단연코 음원보다 라이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사운드도 사운드지만, 고갱의 가성과 진성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매력적인 보이스는 무대에서 더 돋보였다. 개인적으로 빵빵한 밴드사운드를 좋아하는 편이라 팡 터져나오는 드럼소리와 기타리프의 적절한 조화가 곡 속에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론」은 피아노와 보이스로만 이루어진 곡으로,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목소리의 따뜻함이 귀를 포근하게 해 주었다. ‘운명이라는 것이 거창한 게 아니라 일상을 함께 보내며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에서 이 곡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고갱은 노래할 때와 달리 천진난만해 보였다. 그는 네이버 뮤지션리그에 올라와 있는 「Gravity」, 「I’m In My Own World」, 「Sacrifice」 역시 흠 잡을 데 없는 라이브를 선보였다. 어떤 곡에서는 Travis와 Nothing But Thieves가, 또 어떤 곡에서는 Angus and Julia와 Arco가 떠올랐다. 사실 고갱의 라이브가 너무 좋아서, 즐겨듣는 아티스트는 다 떠올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멜랑콜리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성이 그의 작품 전체에 깔려있었다.
 


# 히피는 집시였다

KakaoTalk_20171202_200656639.jpg
 

  고갱보다 조금 더 인지도가 있는 히피는 집시였다가 그 다음 무대를 장식했다. 헤어스타일부터 옷 차림새까지 온몸으로 아티스트임을 주장하고 있는 Jflow가 등장하고, 그에 반해 조금은 단정하게 차려입은 Sep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들은 「회색」을 첫 곡으로 선보였다. ‘히피는 집시였다’라는 아티스트 이름을 처음 접하고 스윙재즈 같은 것을 연주하는 팀인 줄 알았으나, 「한국화」의 그 서늘하고 모던한 사운드를 듣고 나서 팀 명에 다른 의미가 있겠거니 생각했었다. 실제로 그들의 음악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공연장을 부유하였고, 비로소‘히피는 집시였다’라는 작명이 이해되었다. 전자음악엔 다소 문외한이라 Jflow가 만지는 것이 신시사이저인지 컨트롤러인지 모르겠지만, 팀의 감각적이고 형식이 정해지지 않은 사운드는 바로 Jflow의 손 아래서 탄생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히피는 집시였다의 빨려들어가는 듯한 사운드보다 더 강렬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각 곡의 가사였다.


“권태는 어두워 버리기 전 낮의 해와 같아 
시나브로 내 곁에 널 품고 있네”
- 어여가자 中

"무릇 점은 끝인데∙∙∙
너는 나에게 작은 점이 되어
결국은 마치게 해
널 안에 두고 더 말할 수도 없게”
- 점 中


  시적인 가사와 Sep의 건조한 목소리가 잘 어울렸고, 거기에 일렉트로닉한 사운드가 얹히며 독특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현대적인 음악과 아름다운 한글 노랫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걸 깨닫는 순간 ‘코리안 얼터너티브’라는 그들의 주장을 갑자기 납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Sep은 이펙터를 자주 사용해 목소리에 변화를 주었는데, 중저음의 담백한 목소리가 전자음으로 출력되어 터져나오며 관객들을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는 듯 했다. 히피는 집시였다의 음악은 그런 매력이 있었다. 귀에 확 꽂히는 트렌디한 음악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게 하는 것도 아니어서 넋놓고 빠져들 수 있게 한다.




 
KakaoTalk_20171202_200656026.jpg
 

  따뜻함 속의 서늘함, 서늘함 속의 따뜻함과 같은 독특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두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어느새 빗물로 흥건해진 발은 어느새 관심 밖의 것이 되었다. 꽁꽁 숨겨져있던 좋은 음악을 찾아낸 듯한 반가움과 동시에 이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서 소규모 공연장과 단촐한 콘서트를 로맨틱하다고 말해놓곤 웃기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만의 철학, 감성이 있다는 것을 직접 두 귀로 느껴보니 조금 더 알려지더라도 그들의 독자적인 색채는 잃지 않을 것 같았다. 좋은 문화는 소통에서 비롯된다는 아트인사이트의 모토를 담아, 이들의 음악이 더 넓은 곳에서 울려퍼지길 바란다.


KakaoTalk_20171202_200655466.jpg

 




KakaoTalk_20171203_221703109.jpg
 

[최예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