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연습이다. [비문학]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글 입력 2017.12.0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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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연습이다
글렌 커츠



연습을 통해서 우리는 성장한다. 이 책에서는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연습을 소용없는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연습을 남을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은 음악가가 되려면 나는 음악을 향한 내 사랑에 포함된 상실감마저 껴안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과 상실감에 관한 이야기를 연습이라는 형태로 자신에게 들려주는 법을 배워가면서 자신에 대한 실망을 극복해야 한다.
 
 연습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불안, 무기력, 열등감을 느낀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연습을 하면서 느끼는 수치심, 상실감을 외면하지 말고 끌어안아야 한다. 나보다 재능 있는 사람을 보고는 지금의 연습이 무의미 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연습뿐이다. 우리는 연습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남에게 열등감을 느끼면서 남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부족해 보이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어떤 음악가든 마음 한 구석에는 구체적인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연습은 단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그저 거장을 흉내 내는 사람일 뿐이라는 두려움 말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한 문장이었다. 나도 작가와 같이 재능 없는 사람은 절대로 재능 있는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천재적인 사람의 들러리밖에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설픈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서 그 이상은 아니라고 느낄 때 가장 비참했다. 이 정도는 연습으로 발전할 수 있지만, 이 이상은 나의 한계라고, 이미 끝은 정해져 있다고. 이런 강박 관념에 무기력해지고 결국은 무너져 내리는 것은 오직 자신이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천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파멸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살리에리를 비롯해 모든 예술가들 즉, 위대해 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모두가 짊어져야 할 짐은 (훗날 명백해질 사실을) 당시에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든 용기를 그러모아 절벽에서 뛰어내려야만 한다. 하지만 당신이 비상할지 추락할지는 당신에게 달린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수저 계급론’. 우리는 이제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노력으로는 재능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그리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글쓴이도 계속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물론 나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재능이 있었더라면.’ 재능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시도하지도 않고 포기한다. 모든 예술가, 예술가가 아니라도 모든 사람들이 하는 고민일 것이다. 이에 무기력해진다. 이런 생각은 자신을 파멸로 이끌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아픔까지도 끌어안고 연습을 통해 아픔마저도 끌어안아야 한다. 위대해지기 위해 우리는 이런 것마저 감수하고 고통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끝이 정해지거나 말거나 우리는 그것을 어찌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저 용기를 낼 뿐이다.
 
 
우리는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항상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중략)… 음악가든 화가든 누구든 사람은 이런 좌절을 피해갈 수 없다. 요요마조차 떄로는 더 발전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만 눈앞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명멸하는 찰나의 뉘앙스를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계속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넘어서서 능력의 경계를 더 확장시키려면 계속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연습하느냐에 달렸다.

작가는 말한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좌절하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연습을 멈추지 말고 계속해야한다. 연습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우리가 비상할지, 아니면 추락할지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연습을 통해서 다시 일어서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떤 음악가든 마음 한 구석에는 구체적인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연습은 단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그저 거장을 흉내 내는 사람이 뿐이라는 두려움 말이다. (18p)
 
어쩌면 내 재능이 부족한 탓이었을지 모른다. 더 열심히 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원인이 뭐든 포기는 재앙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나는 내 손과 몸에 베인 습관들이, 다시 말해서 평생 내가 써내려간 연주에 대한 이야기가 음악에 대한 장애물처럼 보였다. 나는 나를 앞으로 이끄는 연습의 힘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 고문이 되었다. 그것은 내 삶에서 일어난 무시무시한 상실이었다. (25p)
   
나는 열심히 연습을 했다. 하지만 내 손놀림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 무엇도 깨어진 환상의 무게를 덜어줄 수 없었다. (25p)
 
연습은 고독하다. 당신이 관계를 맺을 대상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33p)
 
매일 당신은 환상과 결점·불협화음인 목소리들이 일으킨 혼돈을 가득 안고 연습을 하기 위해 앉는다. 남들이 듣기에 당신의 연주는 감미롭고 사랑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연습실에 홀로 자리한 당신은 마찰음과 불협화음에 싸워야 한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이렇게 연습의 힘든 점도 들어가야 한다. 당신이 이상을 가슴에 품고 앉았을 때 경험하는 모든 것을 받아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어느 하루는 음악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는 생각에 순수한 기쁨만 느낄 수 있지만 때로는 연습을 하는 내내 어설픈 손놀림이나 예술 자체의 무익함 때문에 분노에 휩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35p)
 
당신은 연습 자리에 앉을 때마다 자신의 연습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셈이다. 당신은 그 이야기를 매개체로 자신의 본 모습과 성격을 드러낸다. 그 이야기는 당신의 노력이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고 서로 다투는 소리들을 조화시키는 은유다. (36p)
 
연습은 끊임없이 재평가 하는 과정이다. 반복을 통해 성장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중략)… 더 나은 음악가가 되려면 나는 음악을 향한 내 사랑에 포함된 상실감마저 껴안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과 상실감에 관한 이야기를 연습이라는 형태로 자신에게 들려주는 법을 배워가면서 자신에 대한 실망을 극복해야만 한다. (40p)
 
재능에도 계층이 있을까? 나는 이 정도의 재능을 부여 받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는, 다시말해 이 정도로 훌륭하지만 더 발전하지 못하리라 봇 박아 놓은 천부적인 질서 같은 것 말이다. (109p)
 
실수는 중요하지 않아. 문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실수를 연습하는 거야.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은 살리에리의 귀는 숭고할 정도로 영감이 번뜩이고 압도적이며 완벽한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그를 파멸로 몰고 갔다. 자신이 도저히 붙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과 대면한 살리에리는 고통 속에서 재능과 성공을 망쳐갔다. (210p)
 
내 눈에는 살리에리는 나의 가장 큰 공포가 실체화된 모습이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천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파멸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살리에리를 비롯해 모든 예술가들 즉, 위대해 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모두가 짊어져야 할 짐은 (훗날 명백해질 사실을) 당시에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든 용기를 그러모아 절벽에서 뛰어내려야만 한다. 하지만 당신이 비상할지 추락할지는 당신에게 달린 문제가 아니다. (211p)
 
하지만 이런 평가들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내 연주에서 자유를 구속했다. …(중략)… 흠 잡을 데 없이 잘 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 내 연주의 폭을 제한했다. (218p)
 
우리는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가 가장 훌륭한지 알 길이 없었기에 서로를 비판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각자의 음악적 장점이 무엇이든 이런 평가들의 속내는 대개 이랬다. “내가 너의 실수를 고쳐줄 수 있다면 내 실력이 위라는 거지.” (218p)
 
우리는 대부분 경쟁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음악이 보잘 것 없다고 느낀다. 우리가 들은 음악이 더 보잘것없다고 느낀다. 우리가 들은 음악이 우리를 망치는 것이다. (219p)
 
여전히 내게 위대한 음악가가 될 기회가 있다면 ‘감미로움’의 인생 목표로 삼는 행위는 참을 수 없는 배신이 될 것이다. (225p)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리라. 우리가 그걸 알아차릴 정도로 의식할 때는 드물지만, 결국 매 순간 일어날 일은 일어나길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생도 연습을 하면 연습한대로 살 수 있다는 듯이 항상 계획하고 보호하고 바라고 원하며 산다. (271p)

마치 연습을 하기 위해서라면 이 세상의 모든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매 순간의 초조함을 잊고 느긋하게 발전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매 순간은 다급하다. 그러므로 결국 연습은 거짓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거짓이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혹은 자신이 누구인지 점검하고 숙고할 수 있도록 시간을 잡아두는 허구라는 점에서 말이다. (281p)
 

연주는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첫 연주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다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첫 연주에서 대부분 형편없는 연주를 한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실수를 바로잡으면 좋겠다고 갈망한다. 우리에게 이 갈망만큼 간절한 것이 또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습이라는 허구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허구만으로도 충분히 삶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항상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음악가든 화가든 누구든 사람은 이런 좌절을 피해갈 수 없다. 요요마조차 떄로는 더 발전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만 눈앞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명멸하는 찰나의 뉘앙스를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계속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넘어서서 능력의 경계를 더 확장시키려면 계속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연습하느냐에 달렸다.
 
    
[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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