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테드 창 SF단편 <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 [문학]

글 입력 2017.12.0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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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 다큐멘터리
Liking What You See: A Documentary
 

테드 창 단편 걸작선
<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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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자들의 도시”에도 외모 지상주의가 있을까


 인간이 아름다움을 선호하고 추구하는 이유가 생존과 관련한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자신의 유전자를 전승하여 오래도록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번식 상대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했고, ‘건강’해 보이는 외모는 아주 좋은 판단 기준이 되어 주었다. 이처럼 외모 지상주의라는 말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더 아름다운 것에 끌리도록 진화해왔다. 하지만 ‘외모를 인생을 살아가거나 성공하는 데 제일 주요한 것으로 보는 사고방식’이라는 외모 지상주의의 사전적 정의처럼, 현대 사회는 아름다움에 대해 보여주는 선호는 단순히 생존과 관련된 문제를 넘어 거의 광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다.
 
 외모 지상주의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이유는, 아름다움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사회적 경향 자체보다도 그 성향이 야기하는 사회적 차별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치 블라인드 채용처럼, 무의식 중에 차별을 일으킬 수 있는 소인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방법이 외모 지상주의에도 가능하다면 사회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아예 물리적으로 외모 지상주의가 불가능하다면, 미(美)에 한해서만 우리의 눈을 멀게 할 수 있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더 평등하고 공정해질 수 있을까? 테드 창의 단편 소설,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 다큐멘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해 다각도에서 답을 살펴보고 있다.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고실험


 최근 개봉한 영화 “컨택트”의 원작 소설 작가로도 알려진 테드 창은 21세기 최고의 단편 소설 작가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공상과학소설 작가이다. 그는 1990년 단편 “바빌론의 탑”으로 데뷔한 이래, 발표한 모든 중단편이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비롯한 주요 문학상의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거나 후보에 오르며 현 시대를 대표하는 SF소설 작가로 자리잡았다.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 다큐멘터리(Liking What You See: A Documentary)”는 이 단편선에 실린 작품 중 하나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단편소설이다. 테드 창 소설의 특징은 멀지 않은 미래에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을 만한 가상 사회를 매우 치밀하게 설계해 놓은 후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논쟁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일종의 사고 실험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 단편 또한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는 실미증(失美症)을 뜻하는 단어이자 그러한 인지적 상태를 인간에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장치인 “칼리그노시아(Callignosia)”를 소재로 전개된다. 실미증, 즉 칼리그노시아는 미(美)나 선(善)을 뜻하는 접두사 ‘calli’와 실인증(失認症)*을 의미하는 ‘agnosia’를 결합한 조어로 사람의 얼굴에 한하여 인지하는 시각적 특징들에 대한 심미적 반응을 경험하지 못하는 증세를 말한다. 즉, 사람의 외모에 한해서만은 ‘아름답다’, ‘잘 생겼다’, ‘귀엽다’, ‘못 생겼다’ 등의 심미적 판단이 아예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실미증이란 상태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뇌의 신경회로에 국소적으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약제가 개발되었다고 가정한다. “뉴로스테트(Neurostat)”라고 불리는 이 약물은 일종의 극히 선택적인 마취제라고 할 수 있다. 본래는 간질 환자의 발작을 제어하고 고통을 완화시킬 치료제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사람의 뇌에는 얼굴의 시각적 정보처리를 전담하는 특수한 회로가 있는데, 이 회로에 뉴로스테트를 작용하게 되면 실미증 상태가 가능해진다. 이처럼 실미증을 유발하는 과정을 소설에서는 “칼리 조치를 받는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마치 스위치를 껐다 켜는 것만큼 간단한 이 조치는 다시 해제할 때까지 영구적으로 지속된다.
 
 소설의 주요 줄거리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벌어지는 칼리 조치 의무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찬반 토론이다. 미국 펨블턴 대학의 ‘철저한 평등을 요구하는 학생회의(SEE)’ 측은 기술로 스스로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이 가능해진 지금, 보다 평등하고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재학생들이 칼리 조치를 의무적으로 받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펨블턴대 학생, 신경학자, 성형외과 의사, 종교학 교수 등 다양한 사람들은 칼리 의무화를 법제화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소설은 ‘다큐멘터리’라는 부제에 걸맞게 서술자 없이 이들의 인터뷰를 엮은 형식으로 진행된다.
 
 
 
결국 “인간다운 것”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


 비록 가상적 설정을 기반으로 하여 진행되는 찬반토론이지만, 외모 지상주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설 속의 논쟁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낯선 것이 아니다. 각계 각층의 인물이 말하는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외모 지상주의에 의한 사회적 차별은 정당한 것인가’ 라든가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 중 인간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익숙한 논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말하는 것 중에서 그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미(美)가 남용되고 있는 현실을 “시각적 마약의 포화 상태”에 빗대어 지적하고 있는 점이다. 다음은 소설 속에서 칼리 의무화에 찬성하는 측의 인물이 발언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천연 형태의 코카 잎을 섭취할 경우 쾌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보통 그 정도로는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정제하고 순화하면 여러분의 쾌락 수용기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강렬하게 자극하는 코카인으로 변신합니다. (중략) 진화는 우리들에게 잘생긴 외모에 반응하는 신경 경로를 부여했고, 이것은 자연적인 환경에서는 유용한 자질입니다. 그렇지만 백만 명에 한 명밖에는 없는 피부와 골상을 가진 사람에게 전문적인 메이크업과 수정을 가한다면, 여러분이 보게 되는 것은 더 이상 자연적인 상태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제된 약제급의 아름다움이고, 미모의 코카인입니다. 생물학자들은 이것을 ‘초자극’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미적 수용기는 우리가 진화로 얻은 처리 용량을 초과하는 자극을 끊임없이 받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런 아름다움은 우리의 삶을 천천히 파괴하고 있습니다. 모든 마약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현실세계의 관계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죠……

 
 아름다움을 코카인에 빗대는 위의 비유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끔 한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기에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미디어가 만들어낸 초자극에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주체적” 선택을 내리기 위해 칼리 조치를 받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소설의 후반부에는 또 다른 초자극과 그 초자극에 대한 실인증을 유발하는 장치가 생겨나게 된다. 마치 항생제와 슈퍼 박테리아의 탄생처럼, 점점 더 많은 초자극과 그에 대한 실인증이 벌이는 변증법은 “인간다운 것”으로 회기하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기술의 힘을 빌려야 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본질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까지 이르게 하는 작가의 상상력은,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이 되어 다가올 사회에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 실인증: 지각 기능이 온전함에도 불구하고 뇌의 통합 기능의 손상으로 인해 시각이나 청각 자극을 인지하지 못하는 증세. 이중 시각 실인증은 시력, 색채나 운동 지각 등 기본적인 시각 기능은 정상이지만 대상 물체의 모양을 인식하지 못하는 통각성 시각 실인증(apperceptive visual agnosia)과 물체를 정상적으로 지각할 수는 있으나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장애인 연합성 시각 실인증(associative visual agnosia)으로 나뉘는데 소설에서의 실미증의 경우 후자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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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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