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렇지 않은’ 따뜻함의 소중함: 퀀틴 블레이크 展 [시각예술]

글 입력 2017.11.2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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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의 오후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아늑하고, 따뜻했다. 햇살은 커다란 창문을 투과해 서고며 책상, 의자, 마룻바닥을 환히 비췄다. 따스하지만 따갑지는 않은 오후의 햇살이 내 피부를 건드리는 것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그런 도서관의 따뜻함이 좋아서, 책 꽤나 읽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책들은 외국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일종의 ‘어린이 동화’ 같은 책들이었는데, 예를 들면 ‘느릅나무 거리의 개구쟁이들’, ‘삐삐 롱스타킹’, ‘마틸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같은 작품들이었다.

 이번에 퀀틴 블레이크의 전시를 보러 가게 된 기회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바로 그 예전, 도서관에서의 기억과 느낌이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그리고 ‘마틸다’에서 접했던 그 특유의 그림체가 나의 아지트였던 도서관의 햇살과 무척 잘 어울렸던 기억이 문득 머릿 속을 스쳤던 것이다. 그만큼 그의 삽화는 나의 뇌리에 특별하게 박혀 있었다. 나는 과연 그 때 그 기분을 지금도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하며 아주 조금의 기대만 가방 한 구석에 챙겨 담은 후 전시가 열리는 상상마당 갤러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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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근래에 본 동화 컨셉트의 전시들이 전시 본연에 집중하기 보다는 관람객의 사진을 건지기 위한 ‘포토존’에 더 가까운 공간으로 전락해 버린 경우를 몇 번 봐왔던 지라, 이번 전시 또한 그렇지 않을까 어느 정도 걱정 또한 함께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퀀틴 블레이크 원화전은 그렇지 않았다. 정말 ‘갤러리’ 그 자체, 별 다른 특별한 것이 없는 깔끔하고 간결한 전시인 데다가, 관람 시간이 다른 전시들에 비해 길어서 내가 방문했던 금요일 저녁 시간대의 경우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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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시의 구성은 총 일곱 파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퀀틴의 작품 세계를 시간 순서대로 나눠 각각 초기 작업, 고전 문학, 저자들과의 협업, 퀀틴 블레이크의 책들, 병원 프로젝트, 책 외의 작업들, 한국에서 사랑받는 책들 순으로 배치해 놓았는데, 전시장의 화살표가 이끄는 대로 충실하게 따라가며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그의 작품 세계를 초기부터 최근까지 자연스럽게 따라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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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화’ 전시답게, 책에 실리기 전 무수한 수정과 크고 작은 얼룩, 그린 이의 메모가 그대로 액자 속에 담겨 있었다. 그건 ‘날 것 그대로’를 보는 것인 동시에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면서 마주했을 무수한 생각들과 고뇌 같은 것을 여과 없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얇디 얇은 기름종이 같은 재질에 그려진 삽화들은 무척 주름져 있기도 했고, 부분 부분은 따로 그려서 덧붙인 흔적이 그대로 있기도 했다. 마치 퀀틴이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함께 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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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 삽화가 주를 이루는 네 번째 파트까지 전시된 작품들은 순서대로 그림만 보더라도 제법 동화의 내용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각각의 삽화들은 분명 크게 다른 그림체가 아님에도, 다채로운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때로는 우울하고 단조롭다가도, 때로는 화사하고 재치 넘쳤다. 같은 색채로 채색되어 보일지라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다양한 색이 더 숨어 있었다. 색은 꼭 선 안에만 갇혀 있지 않았고, 또 그것은 그것대로 조화롭고 자연스러웠다. 이어지는 책 외의 작업들에 관한 섹션에 전시된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에 맞게, 주제에 맞게 자연스럽게 녹아 드는 것이 퀀틴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 가진 강력한 힘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그의 작품을 보며 신기했던 것은 각각의 그림이 어떤 감정을 표현한 것이든 간에 하나같이 다 귀엽고, 따뜻한 느낌이 함께 들었다는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의 도서관 마룻바닥에 앉아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우울하거나 슬픈 상황을 표현한 그림들 또한 마냥 심각하지 않다. 그렇다고 또 가볍지는 않았다. 만약 이것이 퀀틴이 가진, 올곧은 그의 시선이라면 나는 그 시선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동심’이라는 이름의 따뜻함인 듯 싶었다. 최초의 순수함, 그 밀도를 그대로 간직한,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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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에 대한 전시 섹션이 끝나는 전시의 끝 즈음에는 퀀틴이 직접 알려주는 작품 창작법에 대한 10분 정도의 영상과, 그의 작업실을 작게나마 재현해 놓은 (사실 재현이라기 보단 그러한 컨셉을 구현했다 정도의 말이 더 맞겠다) 공간이 있다. 작품 밖, 실제 작가가 어떤 방법으로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지에 대한 일종의 ‘맛보기’로 그렇게 이 전시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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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적으로 나는 이 날, 오래된 어느 날의 따뜻함을 조금은 마주하는 데에 성공했다. 퀀틴 블레이크의 전시가 내게 던져준 것은 ‘아무렇지 않게’, 어쩌면 사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따뜻함이었지만 그건 점점 더 어른이 되어 갈수록 느끼기 힘든 소중함이자, ‘동심’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작은 손난로와 같은 감정이었던 셈이다. 문득 이 사소함이 그리워지는 어느 날, 나는 다시 퀀틴의 삽화가 담긴 동화들을 자꾸만 펼쳐보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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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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