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희경 드라마가 '인생 드라마'인 이유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11.2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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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드덕', 드라마 덕후들에게 노희경이라는 작가가 가지는 존재감은 상당하다.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 또 그것을 그려내는 그만의 따뜻한 시선은 독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삶의 미묘한 감정과 틈을 깊이 파고드는 그의 주옥같은 대사들은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에도 '명대사'로 자주 회자되곤 한다.

나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그들이 사는 세상'(2008)을 통해 처음 접했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필두로, 이후 그의 모든 작품들은 나의 '인생 드라마'가 되었다. 이렇듯 나를 포함한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노희경 드라마'라는 말이 일종의 품질보증표가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사는 세상(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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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내용과 형식이 다양해지고, 하루에도 수십 편의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로 남아 있는 작품이다. 방송국의 일상을 사실적이고도 흥미롭게 그려내는 동시에, 인물들이 겪는 만남, 이별, 상처의 속내를 섬세히 묘사하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PD라는 직업과 방송국을 이토록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 거의 없었을 뿐더러, 그 안의 인물들이 정형화되지 않은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주준영(송혜교)은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고,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당찬 여자다. 하지만 동시에 섣불리 남을 판단하기도 하고, 가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송지오(현빈)도 마찬가지다.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에는 삐걱거리기 일쑤다. 그런데 이들은 타인과 부딪히면서 자신의 결함을 인정하고, 성장해나간다. '관계 맺음'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알고 있지만, 용기를 내어 또 다시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울고 웃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이다.

이 드라마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등장인물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며 몇번을 반복해서 볼 때마다, 이들의 모습 속에 우리 삶이 얼마나 잘 녹아들어 있는지 새롭게 깨닫게 됐다. 이 드라마가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임에도 뻔한 러브스토리로 여겨지지 않았던 이유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이유는
저마다 가지가지다.

누군 그게 자격지심의 문제이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문제이고,
성격과 가치관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어떤 것도 헤어짐에
결정적이고 적합한 이유는 될 수 없다.
모두 지금의 나처럼 각자의 한계일 뿐"



괜찮아, 사랑이야(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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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공효진)와 정신증 환자(조인성)의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병'이라는 말은 마치 욕설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누구나 크고 작은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간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정작 그러한 마음의 병 대신, 작은 외상에만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또한, 그런 아픔이 이상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다독인다. 그리고 그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는 힘은 결국 사람과 사랑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미디어에 재현된 '정신병'이라는 소재는 대개 파편적인 이미지로 이용되는데 그쳤다. 주로 코믹이나 공포의 소재이거나, 혹은 어떤 식으로든 '정상'의 범주에는 벗어난 소재였다. 그러나 '괜사'는 대상에 대한 치밀한 탐구를 바탕으로 한다. 정신과 의사, 정신증 환자와 가족, 사회적 편견 등을 심층 취재함으로써 대상을 왜곡하지 않고 우리네 삶과 잘 엮어냈다. 이와 같은 진심어린 접근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인물들에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너도 사랑지상주의니?
사랑은 언제나 행복과 기쁨과 설렘과
용기만을 줄 거라고?"

-"고통과 원망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도 주겠지.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낼 힘도 더불어 주겠지.

그 정돈돼야 사랑이지."



디어 마이 프렌즈(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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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 그 자체를 이렇게 본격적으로 다루는 드라마는 없었다. 그것도 여성 장년층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모성애가 아닌 그녀들의 사랑, 상처, 우정과 같은, 인생 그 자체가 중심이 되는 드라마 말이다.

드라마는 사회를 반영한다. 그들이 주인공이 된 드라마가 그토록 없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한 적이 있었는가라고 자문하게 된다. '디마프'는 그들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독립적인 한 개인이라는 것을, 그것도 누구보다 열정적이며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엄마, 할머니가 아닌 그녀들 한 명 한 명의 인생의 깊이를 헤아려 보면서 그들의 고민과 생각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살면서 세상에 잘한 일보다
잘못한 일이 훨씬 많다고
그러니 우리의 삶은
언제나 남는 장사이며, 넘치는 축복이라고

그러니 지나고 후회말고
살아있는 이 순간을 감사하라고"





이 외에도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2011),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등 많은 명작이 있다. 이러한 드라마를 통해 노희경 작가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매우 일관적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재소자, 시각장애인, 정신질환자, 노년층까지,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특별한 주인공들 같아 보이지만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이들이다.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이 쉽게 판단하고 정의내려버리는 이들, 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삶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사회문제를 다룰 때에도 그의 시선은 문제 자체보다 사람을 향한다. 개인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어떤 드라마는 그 몇 시간을 통해 사람을 좀 더 공감하고, 이해하게 하며, 때로는 몰랐던 이야기에 눈을 뜨게 만든다. 그래서 내게 노희경의 드라마는 항상 '인생 드라마'다. 재밌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보기 전과 후의 내가 조금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사랑과 희망을 말하는 이런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으면 한다.


[박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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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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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셜스튜핏
    • 12기 에디터 손진주입니다.

      저는 사실 중학교때 봤던 선덕여왕이 제 마지막 드라마일정도로 한국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않는 편입니다. 이런 부족한 지식에 더불어 어떤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한국 드라마는 잘 팔리게 써야한다'라는 냉소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어렴풋이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낮춰보고 있었음을 부끄럽게 고백합니다. 에디터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가 얼마나 큰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알게되었습니다. 정신병리에 대해 또다른 시각을 제공하다니, 이번에 방학을 하고나서는 찾아봐야겠군요! 이런 마음이 생긴 것은 '잘팔리기 위한' 구조 속 강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결론이 저한테 따뜻하게 와닿았기 때문이죠.
      노희경의 드라마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대표적으로 어떤 작품이 있는지 잘 정리되어 있는 글입니다. 드라마에서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대사 중 인상깊은 부분을 추출해서 소개한 것도 해당 드라마에 기대를 하게하는 것 같습니다. 목적과 구조가 확실한 글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라는 개인에게 위와 같은 감상을 하게 만든 것도 에디터님이 확실한 글을 썼기 때문이겠죠.
      다만 아쉬운 점은, 제목에서 나의 '인생'드라마였음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해당 드라마들이 그토록 내 '최애'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꼭 '내'가 아니라 '시청자'더라도 그 마음을 자세히 서술했으면 더 풍부한 내용이 담겼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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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
    • 12기 에디터 강범석입니다.

      저도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진희님께서 얘기해주신 것들 중 하나도 본 것이 없음을 먼저 고백합니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몇 편 보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디어 마이 프렌드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들이 무더기로 나오지만 아직 시도조차 못했습니다. 제 주관적인 문제고, 지구력이 부족한 제 탓임을 또 한 번 고백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 글의 소개와 명대사를 읽으면서 얼른 티비를 틀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가 사람 자체에 대해 포용적인 시선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형태인지 궁금하고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다만 작가임의 드라마를 한 편 한 편 소개하여 정리해주신 것은 좋았으나 제목에서 노희경 드라마를 말하는 만큼 좀더 개괄적인 면에 대한 진희님의 의견이 보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드라마 각각에 쓰신 글에도 진희님만의 의견, 감상이 추가된다면 더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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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북끼리
    • 12기 에디터 유지은입니다.

       엄청 유명한 드라마들이어서 작가님이 대단하다고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글과 얘기만 듣다가, 이제야 속시원히 설명을 들은 좋은 기회였습니다. 작품들의 설명만으로도 작가님을 만난 것처럼, 그 드라마를 본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글들이 핵심적이고 정확히 받아들일 수 있어 더 그런것 같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라는 특성상 아무리 미니시리즈라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시작하기 쉽지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동영상 같은 걸 첨부했다면 더 흥미를 끌어 시작할 용기를 내기 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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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nnabeED
    • 12기 에디터 류승희입니다.
      저도 진희님과 같이 디어마이프렌즈를 온 감정을 실어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노희경 작가님이 모든 등장인물의 삶을 소중히 여겨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는 점에 매우 공감합니다. 진희님이 인상 깊게 보셨던 대사를 직접 선택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각 드라마의 소재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 점이 정말 좋았습니다. 진희님의 관찰력과 예민함이 긍정적으로 잘 드러난 부분이였습니다.
      그렇지만, 드라마의 내용적 측면 뿐만 아니라, 진희님이 작품을 감상하는 시청자로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감을 하고 재시청후 어떻게 느낌이 달라졌는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셨으면 더욱 흥미롭게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설명이 추가된다면 드라마의 내용적 측면과 진희님의 감상이 더욱 잘 조화를 이루어 더욱 풍부한 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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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hbsky
    • 11기 에디터 이현빈입니다.

      먼저 <드라마에 대한 간단한 소개>, <발견할 수 있는 점>, <드라마 속 대사 혹은 구절> 식으로 제시함으로서 매우 글의 구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드라마라는 것의 특징, 현 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점을 직접 가져와 연관을 하며 설명을 하였기에, '인생 드라마'라는 주장의 근거가 더욱 탄탄해지는 것 같습니다.

      다만 노희경 씨의 드라마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나 느낌, 혹은 해당 드라마의 내용이 가져온 파급효과와 같은 것들을 함꼐 제시하였다면 더욱 완성도 있는 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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